▲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전경. 2차대전후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지은 화력발전소가 1981년 공해 문제로 폐쇄된 뒤 미술관으로 재탄생 했다. 스위스 건축회사 헤르토크 & 드 뫼롱이 리모델링을 맡았다.
2005년 7월 7일 목요일. 출근길의 런던. 행운의 7이 두 번이나 겹친 날이었지만, 런던 시민에겐 결코 행운의 날이 아니었다. 지하철과 버스. 7군데서(다시 7이 겹쳤지만) 동시 다발적 연쇄폭발이 일어났다. 사망한 사람만 30명이 넘었다. 아직 9·11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기억 속으로 또 다시 테러의 공포가 엄습했다. 여행 계획에도 비상이 걸렸다. '포탄 떨어진 자리가 가장 안전한 법이야'라며 애써 스스로에게 위로의 암시를 주입하려 했지만 그보다 너무 일찍 런던행 항공권을 결제한 자신을 자책해야만 했다. 아무튼. 며칠 뒤. 무거운 마음으로 일본항공을 타러 오사카로 갔는데. 그런데 오사카에 도착한 저녁. 아 이런. 또 다시 런던에서 버스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CNN에는 부엌칼로 억지로 따느라 너덜너덜 해지곤 했던 그 옛날 꽁치 통조림 뚜껑처럼 형편없이 지붕이 날아가 버린 런던의 2층 버스 모습이 시간마다 나오고 통제된 도로를 비집고 비명을 지르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앰뷸런스와 경찰차의 모습이 실시간의 중계로 비춰졌다.

템즈강변 폐쇄된 화력발전소 리모델링
기존 외관은 유지한 채 내부만 미술관 개조
3·5층엔 테이트 갤러리 작품 상설전시
4층은 기획전시장으로 활용
미술관 2층은 밀레니엄 브리지와 연결
 
긴급. 간사이공항 내 닛코호텔 스탠다드 더블룸에서 대책없는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안전에 신경 쓰며 신중하게 행동'이 면피용 정치적 담화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실제의 대책일 수는 없고 우리 가족 4명으로 대테러 전쟁을 선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번에 세워둔 '가능하면 런던의 체류 일정을 줄인다'는 원칙만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긴급회의가 긴급으로 끝났다. 아무튼 그리하여.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런던 시내가 아닌 옥스퍼드로 이동. 첫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차를 멀찌감치 북쪽으로 몰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로 향했다. 하지만 결국엔 런던으로 돌아와야 했다. 템스 강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프리다 칼로(1907-1954 ) 특별전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입구.
1925년 9월. 세계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멕시코시티에 살고 있던 한 소녀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또다른 버스 사고가 일어났다. 그날. 독일 이민자 아버지와 인디오 혼혈 멕시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8세 소녀 프리다 칼로를 태운 버스는 산 후앙 시장을 돌아가는 모퉁이에서 급하게 튀어나온 전차와 치명적으로 부딪혔다. 그리고 의학도를 꿈꾸며 그림에도 특별한 재능을 보이던 명문 국립예비학교 학생이자 티티새처럼 명랑하던 프리다 칼로의 몸은 차라리 살아난 게 기적일 정도로 엉망으로 부서져 버렸다. 그녀의 부서진 몸은 훗날 그녀의 남편이자 또 다른 정체성인 멕시코의 국민 화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와 함께 그녀의 지울 수 없는 특별함으로 남겨졌다.
 
런던은 끔찍했던 사건을 모른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공포를 이겨낸 종들만이 살아남아 진화해온 곳이 도시인 탓일까. 지하철도 평온함과 의연함을 가장하는 일에 능숙해진 사람들로 붐볐다. 두려움이 차라리 부끄럽게 느껴졌다. 일상처럼 튜브라는 별명에 걸맞은 길고 납작한 느낌의 지하철을 타고 런던브리지 역으로 갔다.
 
역에서 테이트 모던을 찾아가는 템즈 강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번화한 강의 북쪽과는 달리 낙후된 남쪽 사우스 뱅크 지역을 문화적으로 부흥시키려는 당국의 노력이 2000년도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있었다는데. 런던아이와 밀레니엄 브리지, 그리고 테이트 모던 미술관 등의 건립과 함께 사우스 뱅크 지역을 사람들이 들어가서 생활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 노력의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한다. 미술관을 찾아가는 골목길은 그러나 여전히 낡고 허름해 보였다. 낡은 것들을 헐어내지도, 밀고 새로 짓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최신의 스타벅스조차 마치 오래되어 낡은 듯 변장한 모습으로 골목 귀퉁이에 눈에 띄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정비는 하되 예전의 건물들을 그대로 살려 남겨둔 결과 골목은 오히려 오래된 기억의 즐거움으로 생기가 돌고 있었다. 곳곳에 도시의 시간, 그 기억이 남아 종달새처럼 지저귀고 있었다. 그렇다. 세상의 어떤 기억은 지워지지만 또 어떤 기억은 남아 사람들로 하여금 삶을 의미있게 살아내게 하는 것이리라.
 
기억의 골목길을 빠져 나오자 미술관 모습이 보였다. 과거 흉물스럽게 매연을 내뿜었을 발전소 굴뚝이 등대처럼 인상적인 모습으로 템즈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석탄 수레들이 분주하게 오갔을 강 쪽의 비스듬한 경사로는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는 널찍하고 흥미로운 통로가 돼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워털루 브리지와 빨간 공중전화 박스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길버트 스코트의 설계로 뱅크 사이드 화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그러던 것이 공해 문제로 1981년 문을 닫았고, 폐쇄되어 있던 발전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바꾸는 작업이 있었다. 과거 커다란 발전기가 있던 넓고 높은 중앙의 기관실은 터번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또 다른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마침 이 미술관을 리모델링한 헤르초크 & 드 뫼롱의 건축 전시회였다. 그들의 특별한 안목으로 만들어낸 넓고 높게 트인 정말 멋진 공간에서의 전시였다. 현재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국제 건축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스위스 건축회사 헤르초크& 드 뫼롱의 솜씨다. 그들은 과거의 화력발전소 건물을 약 8년여 간의 공사 끝에 기존의 외관은 최대한 손대지 않고 내부는 미술관의 기능에 맞춰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개조했다. 헐고 새로 짓지 않아 훨씬 새로운 미술관이 탄생한 것이다.
 
4층으로 올라갔다. 3층과 5층은 테이트 갤러리의 작품을 분산 수장한 상설전시 공간이고 4층이 기획전시장이다. 기약은 없지만 혹시 멕시코에 간다면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꼭 보고 싶었다. 운이 좋았다. 유럽의 미술 전시회 사이트를 서핑하던 중 프리다 칼로의 특별전 일정을 알게 된 것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프리다 칼로의 초창기 작품부터 말년의 작품까지 책이나 도록에서 보았던 거의 모든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알고 있듯 프리다 칼로 작품의 대부분은 자화상이다. 그녀는 징글징글하게도 자신의 몸을 열심히 그렸다. "나는 나를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내 그림의 주제는 바로 '나'이다"라고 했다. 그러니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는 사람은 프리다 칼로의 몸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녀를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멕시코 원주민인 인디오들의 강한 생명력과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한때 세상이 꿈꾸었던 혁명의 세계도 모두 그녀의 몸을 통해 비로소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거듭되는 수술과 입원. 몸을 옥죄는 끔찍한 철제 코르셋. 그리고 발가락의 절단에 이은 다리의 절단. 평화(프리다)라는 이름을 가진 프리다 칼로의 생은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오죽, 자살 전 그녀의 일기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고.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미술관 2층에서 연결 통로를 통해 템즈 강 위에 놓인 보행자 전용 다리로 나갈 수 있다. 밀레니엄 브리지다. 다리를 건너 번화한 강의 북쪽으로 향한다. 발밑으로 새로운 천년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강물이 새로운 천년에도 여전히 어제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세상에는 아직 평화의 소식이 오지 않았다.


Tip. 한해 400만명 이상이 찾는 런던의 관광명소 ────────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 Museum)
2000년 개관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영국 정부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템즈 강변의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새롭게 리모델링한 곳에 들어섰다. 테이트 모던의 미술품들은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현대미술, 실험미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본관 입구, 2층은 강 쪽으로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고 카페와 세미나룸, 강당, 선물상점, 전시실 등이 있다. 3층과 5층은 상설전시 공간이며 4층에서는 기획 전시가 이루어진다. 미술관 건물 자체만으로도 볼 거리가 된 테이트 모던은 한해 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런던의 새로운 관광명소이다.
 
·주소 - Bankside London
·전화 - 020 7887 8888
·입장료 - 무료(특별전시 제외)
·개관 - 10:00~18:00/금요일 토요일 22:00까지/월요일 휴관
·http://www.tate.org.uk/modern/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멕시코시티 교외의 코요아칸에서 출생했다. 1910년 불붙은 멕시코 혁명 중에 성장했으며 교통사고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초현실적 상징과 멕시코의 토속문화를 결합한 독특한 화풍으로 20세기 멕시코의 대표 화가가 되었다. 공산주의자로 멕시코로 망명 온 트로츠키를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하는 등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며 남미 출신 화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이 소장되기도 했다.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했다.






이영식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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