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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차 한 잔으로 풀어낸 인생·작품의 의미…“굳이 문답 필요한가?”(15) 인터뷰, 매화로 시작해 매화로 끝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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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2.03 08:55
  • 호수 259
  • 12면
  • 주정이판화가(report@gimhaenews.co.kr)

마지못해 결정한 잡지 인터뷰 약속
지인과 함께 먼길 찾아온 여기자
틀에 박힌 질문에 엇박자 답변 이어져
작품 도록 전달하고 “알아서 쓰세요”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가려는 여기자에게
할멈이 건네 준 매화꽃 유리병 작은 선물
“앞당긴 입춘 호사에 감사” 메일 답변이

작업장에 있으려니 할멈이 전화가 왔다며 수화기를 들고 왔습니다. 낮에는 작업장에 있고 밤에는 움막에서 거처하는 관계로 안채에 있는 전화를 받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설사 안채에 있더라도 집 전화는 안 받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교체하면서 무선전화기로 바꿔 주는 바람에 별 볼일 없는 전화도 더러 받게 됩니다. 또 그런 전화인가 싶어 심드렁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건네받았습니다. 부산의 모 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사의 기자라고 했습니다.
 
무슨 용건이냐고 물었더니, 전화 받는 말투가 퉁명스럽게 들렸는지 전화기 저쪽에서 한순간 머뭇거렸습니다. 이내 이럴 줄 예상하고 준비했다는 듯이 "편집장이 오는 봄 호의 인터뷰를 선생님으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들먹인 편집장은 얼추 40년은 알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그런 터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내키지 않아서 "그 잡지라면 몇 해 전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뭘 또 하느냐"고 넌지시 거절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다른 기획물입니다. 언제 시간이 나십니까"라고 막무가내로 쳐들어 올 기세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옥신각신 겨루기를 할 기력이 약해지는가 봅니다. 그대로 손을 들고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말았습니다.
 

   
▲ 생림면 나전리 주정이 선생 집 앞에 때이른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다.

여기자와 약속한 날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산악인이자 산악시인으로 불리는 권경업 씨가 "지금 형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라고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얼마 안 있어 권 시인이 여성 한 명을 동반하고 도착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온 여성이 인터뷰 약속을 한 여기자였습니다. 권 시인이 우연히 여기자의 방문 소식을 듣고는 병신년(丙申年) 인사차 동행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자리를 움막으로 옮겨 안채에서 내 온 매화차를 마셨습니다. 권 시인은 "아! 철 이른 봄도 마셨고 절절 끓는 아랫목에 몸 좀 지지자"며 벌러덩 드러눕더니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여기자와 인터뷰를 시작하긴 하였으나 권 시인의 코 고는 소리가 훼방을 놓아 그런가, 원래 요식적인 질의응답에는 서툴기도 하지만 질의응답 장단이 엇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예컨대 기자가 "선생님의 작품은 간결하며 여백이 많습니다. 그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면 "그걸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작업 메모를 한 꼭지 복사해 줄 테니 그쪽의 감성으로 느끼고 마음대로 해석해서 쓰는 것이 더 나은 대답이 될 것이다"라고 하는 식이었습니다.메모 내용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내 작업은 그리기와 지우기의 경계를 모색하는 여정이다. 포만의 거북함과 허기의 고통, 그리기의 절제와 사유의 압축. 그 눈금의 설정에 관심을 기울인다. 내 작업에서의 박음 과정은 순전한 손놀림에 의존하는 탁본 방식을 채택하고 목판의 각하기와 한지에 박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작은 점 하나 희미한 선 하나 미세한 농담 같은 사소한 것에 천착하는가 하면, 양각의 일정부분을 누락시키거나 또는 음각의 일정부분을 바탕으로 일부러 문질러 드러나게도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박아낸 화면에 덧칠을 하거나 지우기도 예사이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판목에 새겨진 원판이 단순한 밑그림으로 전락하는 것마저 개의치 않는다. 내 작품의 군데군데에서 드러나는 복제술의 서투른 흔적은 일견 획일적이고 단조로울 수 있는 판화의 속성을 비껴나려 하는 위장이며 더러 나타나는 판화와 일점주의 회화의 경계마저 모호한 화면처리 그 또한 같은 의지의 발현이다. 이러한 과정이 조형적 요건의 영역 안에서 이행되길 노력하지만 최종의 가늠은 기존의 질서나 논리가 배제된 내 개인의 감성의 몫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사유를 조형이라는 잘 빗은 그릇에 담아내야 하는데 그때 그 그릇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그 아름다운 그릇에 담아내는 내용물에서 성찰의 심안이 느껴져야만 비로소 작가가 되고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경구를 항상 같이 하려 애쓴다."
 
   
▲ 매화꽃잎을 동동 띄운 매화차.
여기자의 다음 질문은 "왜 흑백작품만 하십니까"였습니다. "물감의 색이란 색을 다 혼합하면 흑색이 되고, 빛의 색을 다 혼합하면 백색이 된다. 그러니까, 흰 종이에 검은 먹을 쓰는 것이 오만 색을 다 쓰는 셈"이라며 역시 아리송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뒤로도 그딴 식의 여러 개의 질문과 응답이 오간 후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한마디 하라기에 손을 내저었습니다.
 
"내가 나이 좀 먹은 축에 들 터이니 전체 미술인들 중에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더 많겠다. 하지만 나이가 재물을 쌓아 주던가? 나이가 지식을 쌓아주던가? 나이가 들면 저절로 깨달음에 도달하는가? 아니다. 앞서 건네준 작업 메모에 '나의 작업이 지향하는 바가 뭔지, 뭘 어쩌겠다는 따위는 정해진 것이 없다. 단지, 찾아 나섰을 뿐이고 아직은 어떤 소득도 없이 방황하고 있을 따름이다'라고 쓰여 있듯이 내가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것도 아니고 미학적 성취도마저 볼품없는 터에 조언이니 뭐니 할 말이 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자의 얼굴에 난감하다는 표정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내 딴에는 친절하게 부언하는 심정으로 몇 해 전에 했던 인터뷰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인터뷰를 하러 온 사람은 모 일간지의 문화부장을 지낸 객원기자였어요. 그는 평소에 자주 만나던 사람이었고, 맨 정신이나 취중으로나 많은 대화를 나눈 사이였지요. 그와의 인터뷰는 뭘 묻거나 무슨 대답은 하나도 하지 않고 술로 시작해 술로 끝냈답니다. 그가 목적한 인터뷰와 관련해서 한 말이라고는 돌아가면서 '알아서 쓸 게요'가 전부였지요. 나는 '그러시오' 한 것이 다였소."
 
여기자에게 작품 도록 몇 권을 건네주며 "엇나가기야 하였으나 대화라도 나누었으니 여기 실린 작품을 보고 그걸 재료로 삼아서 기자가 잘 비벼서 알아서 쓰세요." 그러고선 "요식적인 질의응답의 속기록 같은 기사보다는 그러는 게 더 나을거요"라는 어쭙잖은 훈수 한마디를 지껄이고 끝을 내었습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감하고 나서 권 시인과 기자가 돌아가기 위해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창밖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할멈이 언제 준비했는지 매화 꽃가지를 꽂은 작은 유리병을 건네며 "사무실에 가서 책상 위에 두고 향기라도 맡고, 봉우리는 따서 매화차를 끓여 드세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시답잖은 인터뷰 결과에 실망의 빛이 역력하던 여기자의 안색이 단박 유리병의 매화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듯 보였습니다.  
 
그들이 탄 차가 대문을 나가 마을 어귀를 돌 때까지 바라보며 서 있던 나는 할멈에게 '나이 들고선 음식 간 보는 것은 엉망이라도 유리병 매화는 좋았어'라고 칭찬을 한마디 해 줄까 하고 돌아섰습니다. 그새 할멈의 모습은 윗마당 너머 안채 쪽으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날의 인터뷰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낸 몇 해 전처럼 매화로 시작해 매화로 끝낸 셈이었습니다. 다음 날 메일로 보내 주기로 한 보충자료 몇 가지를 보내고 나니 곧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매화 향 가득한 편집실에서 앞당긴 입춘의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해뉴스
주정이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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