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손가락으로 붓 모를 쓸어 모았다. 붓 모는 처녀의 기다란 머릿결 같았다. 붓 끝을 살며시 벼루 위로 내리자 칠흑 같은 먹물이 붓 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설원 같은 하얀 한지 위로 붓을 옮겼다. 한 방울 검은 먹물이 떨어졌다. 먹물을 머금은 종이는 온몸으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뿜었다. 정재 최현규(61)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떠올랐다. 서예가 최현규가 있는 '동국서예'를 찾아갔다. 

함축된 시에 시각적 생명 불어 넣어
작품마다 쓴 ‘사람’ 냄새 달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서예 취미생활 
30세 넘어 늦깎이에 본격 묵향의 길로
1997년 ‘가락서예’ 창단 후 이끌어
매년 정기적으로 회원들 작품 모아 전시

“예술은 장난 칠때 독창적 작품 나와”
나무·돌·그릇 등 다양한 재료에 시도

▲ 서예가 최현규 씨가 자신만의 냄새로 글씨를 써 내려 가고 있다(위 사진). 동국서예에서 서예를 배우는 문하생들의 모습.
'동국서예'는 삼방동 삼안로 동원아파트 상가 3층에 있다. 계단을 올라가 문 앞에 서자 묵향이 코 속 깊숙이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한참을 향기에 취해 있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상가의 회색빛 시멘트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전통마을의 고가로 순간이동을 한 듯한 느낌이었다. 한쪽 벽에서는 누렇게 농익은 한자들이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이 한자들은 최현규가 25년 전 이 공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쓴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여러 개의 책상과 탁보, 서예도구, 전각도구, 벽에 걸린 서예작품 등 많은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어느 곳에 고정시켜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창가의 책상에 앉아 있던 최현규가 붓을 든 채 인사를 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한마디 부탁을 하더니 그는 작업을 이어갔다. 붓에서 나온 부드러운 먹물이 종이를 적셨다. 종이는 백과 흑으로 공간이 갈렸다. "먹물을 한 번 종이에 묻히면 끊을 수가 없어요. 처음 쓴 글자와 끝 글자의 느낌을 끝까지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죠. 서예는 공간예술입니다. 종이 위에 적힌 검은 글자는 물론, 흰 여백과의 조화 또한 작품의 일부입니다."
 
최현규는 서예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는, 시인이 일상적인 말을 조리 있게 함축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 함축적인 말에 시각적인 생명을 불어 넣는 게 바로 서예입니다. 서예가의 내면에서 나오는 감정과 분위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지요."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서예를 취미 삼아 가까이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자동차관리 일과 건설업에 종사해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30세가 되던 해에 문득 '재밌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삼진기업이란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그는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나무를 가장 심기 좋은 시기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입니다. 20년의 세월을 풍파를 견디고 자란 나무는 현재 몸통이 굵고 웅장한 모습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나무를 심기 좋은 시기는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심은 나무는 또 다시 20년 후면 현재의 시도가 과거가 되어 높게 하늘과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도전은 시기를 따지지 않고,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나무를 심는 시기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30년 서예가로서의 인생이 스쳐지나갔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1991년에 김해에 터를 잡았다. 부산은 임차료가 비싸서, 통근을 할 수 있는 거리의 마땅한 장소를 찾다 보니 김해로 오게 됐다고 한다.
 
1997년에는 '가락서예'라는 이름으로 창단돼 현재 '김해서학회'로 개명한 단체를 이끌었다. '김해서학회'는 서예가로 활동하거나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일반 동호인들이 모여 서예를 연구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모임이다. 11년 전부터는 매년 정기적으로 회원들의 작품을 김해박물관, 김해도서관, 김해문화의전당 등에서 전시한다고 한다. 지금의 그는 회장 직을 내려놓고 자신의 작품을 쓰고 학원 문하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에게서 서예를 배우는 문하생은 20여 명이다. 대부분 9년에서 10년의 세월을 그와 함께 했으니, 문하생이란 말이 왠지 겸연쩍게 다가온다.
 
▲ 붓걸이에 걸려 있는 서예용 붓들.
"악동!, 최 선생의 별명은 악동입니다." 옆에서 묵묵히 수양을 하듯 글을 써 내려가던 문하생 한 명이 고발하듯 소리쳤다. 최 선생은 "예술은 장난입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장난을 치듯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재밌는 시도를 하는 중에 비로소 독창적인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종이에만 써 내려가는 서예에서 탈피해 여러 가지 재료와 방법을 시도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무, 돌, 타일, 밥상, 그릇 등에도 글을 쓴다고 했다. 재료를 두고도 다양한 '장난'을 친다. 서양화 물감을 쓰기도 하고, 천 조각을 직접 천연 염색제로 염색하거나 쑥, 치자 등 자연에서 얻어 온 재료로 염색 한 뒤 그 위에 작업을 하기도 하며, 물감이 번지듯 먹물을 일부러 번지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문득 '동국서예'의 창가 쪽을 보니 화선지들을 차곡차곡 쌓아둔 서랍이 보였다. 서랍 위에는 각양각색의 붓들이 자신의 모양과 길이를 서로 경쟁하며 붓걸이에 매달려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작은 소나무 분재와 이름 모를 화분들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서서 고가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최현규는 "종이는 보통 중국에서 수입한 걸 사용합니다. 종이의 질에 따라 작품의 결과도 천차만별인데, 우리나라에는 서예용 종이를 만드는 곳이 거의 없어요.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닥종이의 품질이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서예용으로 쓰기엔 너무 거칠어 출판용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서예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명태를 두드리듯 닥종이를 두드려서 얇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굉장히 수고로운 일이죠"라고 말했다. 재료에 대한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붓 모는 보통 염소나 양의 털로 만들어요. 즉 천연모를 쓰죠. 현재는 중국 사막지역에 서식하는 염소과의 동물 털을 많이 이용합니다. 그마저도 개체 수가 많이 줄어 칫솔모를 만드는데 쓰이는 플라스틱 공법을 이용해 천연모와 플라스틱모를 혼합한 붓을 대부분 사용합니다."
 
최현규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재료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글을 쓰더라도 그것을 쓴 사람의 냄새는 다 다르다고 말했다. 최현규는 어떨까? 그의 작품을 아는 사람들은 이름이 안 붙어있어도 그의 작품임을 단박에 알아차린다고 한다. 일정한 경지에 와 있는 것이다.
 
▲ 화선지를 쌓아둔 서랍(위), 최현규 씨가 25년 전 벽면에 직접 쓴 작품.
최현규에 의하면, 작가의 과거 경험 또는 현재 그날의 기분과, 날씨, 분위기, 목적 혹은 마음가짐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쓴 작품에서도 매번 다른 느낌이 배어나온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붓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라고 한다. 그럴 때는 붓을 놓고 정처 없이 바깥을 돌아다니거나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러다 또 장난이 치고 싶어지면 그 때 또 다시 붓을 손에 쥔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는 서예를 생업이 아니라 생활로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예는 자신감이 없으면 힘듭니다. 내 작업에 자신을 가지고 한 획 한 획을 그어야 붓 끝에서 그리고 물든 종이 위에서도 글이 빛납니다. 또한 서예는 몰입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예술입니다. 한 번 집중하면 땅거미가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작업을 하게 됩니다."
 
어느덧 우리의 시간도 뉘엿뉘엿 일몰 속에 들어와 있었다. 놀이 '동국서예'의 창을 통해 묵직한 농담으로 스며들어와 작업실을 붉게 물들였다. 최현규는 "날은 어두워졌지만 작업실에서 계속 검은 먹의 농담을 가지고 장난을 치겠다"고 농담을 했다.   

▶ 최현규 / 부산. 경남미술대전 대상 및 초대작가, 부산미술대전 특별상 수상. 전국사경대회 우수상. 중국 상숙시 시립미술관에서 초대전 개최. 김해서학회 회장직, 상문서회 회장, 김해미술협회 부지부장, 김해예총 사무국장 역임.


김해뉴스 /강보금 인턴기자 amon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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