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최대화>
황유원 시집
민음사·244쪽
9000원

팽팽한 긴장감 주는 전개방식
소설을 읽는 듯 지루하지 않아

2013년, 한 문예지에서 그의 시를 처음 읽었다. 신인문학상 등단작이었다. 전자기타를 싣고 가는 기차에 대해, 풍차의 거대한 육체미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거침이 없었다. 맛있는 말의 향연 속에 깊이 배어 있는 그의 사유를 읽고 또 읽었다. 하루 이틀이 아닌 여러 날이었다. 고백하자면 질투심이었고 동경이었다. 절대 앞질러 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었다. 그때 나는 막 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질 때였다.
 
그가 황유원이다.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2013년 문단에 나온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이번에 첫 번째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발간했다. 뿐만 아니라 이 처녀 시집으로 제34회 김수영문학상까지 수상했다.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그의 무한한 상상력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다.
 
보들레르는 그의 책 <파리의 우울>에서 산문시를 '리듬도 각운도 없이 음악적이며, 혼의 서정적 약동에, 몽상의 파동에, 의식의 소스라침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친, 어떤 시적인 산문'이라고 정의했다. 황유원의 시는 지극히 운문적이며 반복적임에도 불구하고 보들레르의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사소한 낱말 하나하나가 가지는 거대한 산문적 힘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책 제목인 '세상', '모든', '최대화'라는 낱말은 이미 그의 사유가 얼마나 깊어질지 어디까지 뻗어나가고 싶은지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에서는 허기가 느껴진다. 끊임없이 확장시키고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끊임없이 바닥까지 내려가도 도대체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리고 멈추지 않는 혼잣말. 이젠 끝일 거야, 생각하면 거기서 한 발 더 내려가고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곳에서 다시 소곤소곤, 잘 들어 봐, 저기 얼굴이 있지? 저기 우리가 있지? 그래, 내 목소리는 저기 납작 엎드려 있잖아 아니 저 루마니아의 텅 빈 운동장에 있을 지도 몰라 하고 말을 하는. 그래서 황유원은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이고, 우리는 페르시아 왕처럼 무조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시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과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전개방식으로 한 편 한 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 단어들이 부딪히거나 어우러지면서 새롭게 연상되는 무수한 사유와 공간이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 주기까지 한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서동욱은 황유원의 작품들을 얼음의 밑바닥을 흘러가는 물결처럼 적막하고 견고하며 사념적인 요소 역시 날것으로 엉뚱하게 등장하여 시 세계를 망쳐 놓지 않고 낱말 하나하나의 내부로 스며든다고 했다. 몸속에 팽이를 돌려놓고 서서히 거기 빠져들어 보는 것이('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중) 그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너무나 무심한 얼굴로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고 그 돌멩이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미세한 파동과 주위 사물들의 움직임을 나와 세상과 종교로까지 최대한으로 확장시킨다. 나선형으로 선회하기도 하고('새들의 선회연구' 중)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던 소년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크레파스로 그린 세계 열기구 축제' 중) 폐허가 된 마당에서 공룡이 되어보거나('공룡 인형' 중) 엔터 키와 스페이스 바로 반가사유상을 불러들이기도 한다('초겨울에 대한 반가사유' 중).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 새가 되고 소년이 되고 공룡이 되고 반가사유상이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시가 나는 좋다. 머리를 뚫고 나온 손가락처럼(이성복 시인 '무한화서' 중) 몸에서 바로 꺼내야 자신만의 목소리로 파닥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황유원의 모든 시가, 심지어 그가 듣는 빌리 홀리데이의 음색이 그리고 어두운 방안에서 홀로 연주하는 그의 기타 소리가 너무나 매혹적이다.
 
당신에게 그를 소개하고 싶다. 그가 말한 등 푸른 생선같이 차가운 하늘 아래 아니면 키틴질의 밤에 이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한 번 펼쳐보시길. 나는, 나의 사랑은, 나의 외로움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스스로를 최대한으로 열어 놓고 혹은 풀어 놓고.



김해뉴스


서명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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