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댄스는 이슬람 문화권 여성들이 추는 춤이다.
맨발인 채로 허리와 골반을 연속적으로 비틀거나 흔들면서 추는 춤이다.
배꼽을 드러내기 때문에 배꼽춤이라고도 한다.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는 춤, 여성의 존재감과 힘을 표현하는 춤이란 평도 있다.
심한 노출 탓에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다이어트와 몸매 관리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일단 대중화에 성공했다.
'맨발의 디바'를 찾아가 보았다.

▲ 공연단이 올해 선보일 예정인 창작무 '불새'에서 사용할 가면(위 사진). 단원들이 받은 각종 트로피와 상장들.
현대무용 전공… KBS무용단서 활동도
29세 때 찾아온 슬럼프 탓 활동 접어

TV서 본 ‘보아’의 특이한 춤 동작에 매료
운명적 만남 벨리댄스에 빠져들어
남동생 집에 얹혀살며 3년간 서울서 수련

어려운 학생들 위해 공간 내주고 특강
단원이자 제자들 열정과 실력으로 보답
연습실 한편에 트로피와 상장 가득


김해 삼계동 수리공원 일대의 풍경은 낮과 밤이 확연히 다르다. 어둠이 찾아오면 이곳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마무리하려는 도시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말 그대로 불야성을 이룬다. 반면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렁임이 없는 수면처럼 고요하다. 야누스 같은 낮과 밤의 풍경이 교차하는 곳에 문영화의 오리엔탈 퍼포먼스 공연단 연습실이 있다.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벨리댄스의 오리엔탈 리듬이 계단을 타고 올라와 먼저 반긴다. 연습실은 지하에 있다. 벽 한 면을 다 차지한 거울에서 내 모습이 나를 마주하고 있다. 발바닥에 닿는 마루의 감촉이 좋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도 아랑곳 않고 색색의 긴 천을 양손에 든 단원들이 문 단장과 함께 한창 연습을 하고 있다.

"앞 사람만 신경 써. 서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거야."

문 단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지하공간을 가득 메운다. 허리와 골반을 흔드는 것이 벨리댄스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동작들은 박차고 뛰어오르고, 힘껏 달리다 정지하는 현대무용과 닮았다. 그렇게 스무 번의 연습이 더 진행되고 나서야 휴식이 주어진다. 연습이 끝난다는 밤 아홉 시에 약속을 했지만 시간은 벌써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영화 단장은 처음부터 벨리댄스를 전공한 게 아니다. 애초에는 경성대학교 무용학과에 입학해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졸업 후 무용학원 강사로 활동하다가 서울 KBS무용단 정단원으로 입단해 활동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용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 슬럼프에 빠졌다.

"스물아홉 살에 무용을 그만 두었습니다. '삼총사'로 어울리던 친구들이 무용을 그만두고 하나 둘 결혼을 했어요. 혼자 남았다는 외로움이 엄습해 왔죠. 아무리 신나는 음악에도 몸이 움직여 주질 않더라고요."

결국 그 외로움은 친구들처럼 자신을 결혼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김해에 둥지를 틀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육아에만 전념하며 무용을 잊고 살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두 번 다시 무대에 서는 일이 없을 줄만 알았다고 한다.

"TV에서 우연히 가수 보아의 춤을 보다가 특이한 춤동작에 확 끌렸어요. 그 순간 잊고 있었던 무대 위의 감촉이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더라고요. 그 동작이 궁금해 알아보다가 벨리댄스의 '슈미'라는 동작이란 걸 알게 되었죠."

▲ 무용 연습을 하고 있는 오리엔탈 퍼포먼스 공연단 단원들.

문 단장은 운이 좋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벨리댄스를 최초로 도입한 안유진 씨의 첫 제자가 김해YWCA에서 벨리댄스를 가르치고 있었다. 바로 달려가 등록을 했다. 그때 김해에서 벨리댄스를 가르치는 곳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 단장의 벨리댄스에 대한 열정은 남편의 반대란 벽에 부딪혔다.

"아마 남편은 속살이 드러나는 벨리댄스의 의상에 신경이 쓰였던가 봐요. 육아를 핑계로 반대했던 거죠. 서울에 가서 배우고 싶다며 남편을 졸랐어요. 남편은 제가 안쓰러웠나 봐요. 마침내 '저러다 말겠지' 하는 심정으로 허락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두 아이와 함께 한의사인 서울 남동생 집에서 얹혀살며 3년 동안 벨리댄스를 수련했다. 서울에서의 배움이 끝나자  다시 김해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벨리댄스 연습실을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은 "당신이 무용을 하는 게 싫은 게 아니다. 당신은 세상을 잘 모른다. 무용을 다시 한다는 건 세상과 부딪히는 일이다. 세상이 당신을 힘들게 할까봐 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연습실을 마련하고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을 때 남편의 우려대로 일부에서는 정규 무용학과를 졸업한 사람이 왜 저런 춤을 추느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문 단장 스스로도 벨리댄스의 의상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춤은 마음에 드는데 의상이 너무 야하고 천박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살색타이즈를 입은 채 의상을 착용했죠. 그 관념을 뚫고 나오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습니다."

오랜 휴식이 지루했던지 단원들이 다시 연습을 시작한다. 시범을 보이는 문 단장의 동작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몸을 젖힌 상태에서 팔을 뻗어내는 동작이 매끄럽고 유연하다. 손끝의 모양을 보니 단원들의 동작과 달리 형태가 그대로 살아 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준 형태다. 그러고 보니 무용동작의 힘은 관절을 제어할 줄 아는 데서 나온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것 같다. 두 팔을 머리 위로 크게 뻗어 다시 가슴 앞으로 가져와 합장하는 동작에서 문 단장의 간절한 어떤 염원이 느껴진다.

"그냥 손을 모으지 말고 바람을 담아서 손을 모으라고. 동작이 곧 언어로 전달될 때 비로소 무용이 되는 거야. 그냥 흔든다고 해서 춤이 되는 게 아니야."

문 단장은 운영 경비 정도만 수강료를 받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집안은 어려웠다. 학원비가 밀리기 일쑤였고 밀린 학원비를 깎아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특강을 들어야 하는데 낼 돈이 없어 숨어서 몰래 엿보며 배웠다고 한다. 그녀는 학원비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마음껏 뛰고 춤출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엿본 특강수업을 머릿속으로 외워서 혼자 불 꺼진 학원에 들어가 연습했습니다. 행여 들킬까봐 불을 끈 채로 가로등 불빛을 벗 삼아 연습했죠. 그때의 저처럼 아직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무용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문 단장은 정규 무용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한국무용에서부터 현대무용, 발레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가르칠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특강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벨리댄스는 동작이 관능적이긴 하지만 야한 춤이 아닙니다. 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싶습니다. 벨리댄스도 예술성, 주제, 스토리가 풍부합니다. 얼마든지 창작무용으로 가능한 작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열정은 '5천년 시간 속 여행', '불새', '물랑루즈', 세월호의 아픔을 다룬 '천개의 바람' 등의 창작무용을 낳았다. 특히 '물랑루즈'는 벨리댄스와 실용무용을 접목시킨 뮤지컬 식 퍼포먼스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 문영화(가운데) 단장이 단원들에게 무용동작 시범을 펼쳐 보이고 있다.

"무책임하게 팔을 흔들면 안 돼."

문 단장은 다시 동작이 부자연스런 단원들에게 다가가 동작을 수정해 준다. 더 있다간 단원들의 연습시간을 뺏을 것 같아 서둘러 연습실을 나선다. 계단을 오르는데, 들어올 때 마중나왔던 오리엔탈 리듬이 다정하게 배웅을 하고 있다.

≫ 문영화 /부산 출생.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무용 시작.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무용학과에서 현대무용 전공. KBS무용단에서 활동. 인제대·경성대 평생교육원 벨리댄스 강사 역임. 삼계초·외동초·북부동사무소 출강. 한국 오리엔탈 퍼포먼스 공연단 대표.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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