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 신비로운 세계명소기행>
장순복·가람과뫼출판·478쪽

문명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시도
다양한 컬러사진으로 생동감 더해

자동차에 연료를 가득 채우는 날이 있다. 그럴 때마다 불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곤 한다. 방향지시등을 한 번도 켜지 않고 직진으로 달리다 연료가 바닥 나 멈추는 곳은 어디일까, 라고 상상하는 일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발은 브레이크를 밟고 있고, 자동차 핸들을 잡은 두 팔은 심장에서 솟아나는 뜨거움을 애써 외면한다. 연료 게이지는 가득 찼다는 뜻의 '풀(FULL)'을 가리키고 있지만,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심정. 허전하다. 결국 내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일상이다.
 
여행 안내서적을 본 적이 없다. 어차피 떠나지 못할 바에야 헛된 꿈은  꾸지 말아야지. TV뉴스는 설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 공항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화면 속에서 출국절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시샘이라도 발동한 탓일까? 자연스럽게 이 책을 집어들었다. 비록 책 속에서였지만,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증이 해소됐고, 위안을 얻었다.
 
이 책에는 '인류 문명의 시작,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단순히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인류가 만든 문명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한 책이다. 2002년에 역사를 조명하는 문화유적 답사 모임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만들어 지난해에 500회 답사의 기록을 달성한 작가의 이력이 그것을 뒷받침 한다.
 
저자 장순복 씨는 부산 대륙항공여행사 대표다. 학창 시절에는 비틀즈의 음악을 좋아했고, 영어를 익히기 위해 AFKN만을 들었다고 한다. 한때 아나운서를 꿈꾸었으나 여행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었고, 36년째 여행객들을 인솔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남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살아가는데, 떠남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얼마나 부러운 존재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 각국을 다닌 베테랑 여행가이드의 입장에서 여행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관점을 대륙별로 나눠 안내하고 있다. 직접 발도장을 꾹꾹 찍었기 때문인지 현장감이 살아 있고, 다양한 컬러사진은 생동감을 더한다.
 

▲ 디즈니랜드의 원형이 된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성.
1부는 유럽문명에 관한 것이다. 스톤헨지를 비롯한 24곳이 소개돼 있다. 2부는 아프리카 대륙이다. 3부는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지역이다. 여행의 대중성이 약하다고 판단했는지 2부와 3부에는 각 5곳씩만 소개돼 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시아 대륙의 문명에 대한 소개는 4부에 놓여 있다. 아시아 지역 23곳을 다루며 중국을 가장 많이 소개한다. 5부는 오세아니아 지역, 6부는 캐나다와 미국 등 북아메리카, 7부는 멕시코와 브라질, 페루 등 남아메리카 지역이다. 인디언문화와 모아이 석상이 지키는 세상의 끝 칠레의 이스트 섬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석상문명의 흔적으로 시작과 끝이 정리돼 있다.
 
저자는, 알고 떠나면 단순히 좋은 것, 멋진 것,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는 여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이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를 치유하는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이룩한 문명의 현장을 경험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시대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며, 역경을 극복한 위대한 영혼을 만나는 일이라고 또한 말한다.
 
책을 덮는 순간 마치 77개국을 직접 돌아다닌 것처럼 다리가 묵직해 진다. 나의 삶은 대체 언제까지 남의 여행답사기를 전해 듣는 데 머물러야 하는가 하는 신세 한탄을 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으며', '아는 만큼 느껴지는' 인류의 문명 속을 기분 좋게 헤엄쳐 다니는 나를 발견했다. 책 속으로 떠난 세계여행이었지만 다 읽고 나니 마치 비행기 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듯. 마지막으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구를 원용한다. '바람이 분다/ 떠나봐야겠다.'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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