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특유의 퀴퀴한 냄새 나지 않고
곰삭은 발효 맛 그대로 입안에 맴돌아

김 가루·겉절이무침 담은 큰 그릇에
무나물·배추나물·콩나물 함께 넣고
밥과 함께 비비면 다른 찬 필요 없어

단독주택형 식당 앞 작은 마당 친근
아담한 야자나무·향나무 눈길

"맛집도 소개할 겸 언제 밥 한 번 먹자!"
 
그 '언제'라는 단어가 실현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언제'라는 단어가 지닌 무한성과 유한성의 의미는 바쁜 현대인에게는 애매모호한 시간의 길이다. '언제'라는 시간은 지금 당장이라도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가까운 기일 내 또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어느 날로 해석된다. 하지만 '언제'라는 단어만 믿다가는 언제 만날지 모를 요원한 시간의 굴레 속에 빠져 정처 없는 기약이 되기도 한다.
 
구산동 현대병원 옆 이좋은치과로 향하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낮게 깔린 구름 탓인지 가까이 두고도 자주 만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발걸음이 무겁다. 치과에 들어서니 막 진료를 마친 류원향 원장이 반긴다. 류 원장과 기자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지만 여전한 모습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믿지 않지만,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고프지? 청국장을 괜찮게 하는 집이 병원 근처에 있다. 거기로 가자!"
 

▲ 류원향 원장이 자신의 그릇에 청국장을 옮겨 담고 있다.

기자는 류 원장의 이끌림대로 순순히 응한다. 돌이켜보면 그에게 밥을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행여 '눈먼' 돈이 있어 밥값을 치르겠다고 하면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계산대 앞에서 '벌이가 괜찮다'라는 말과 함께 밥값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거스름으로 돌아왔다.
 
류 원장이 찾은 곳은 '옹달샘 청국장'이다. 이좋은치과 바로 뒤편에 있다. 걸음으로 따지면 50보 정도다.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형 건물이다. 입구 양쪽에 시멘트로 원목나무 모양을 낸 둥근 탁자와 벤치가 놓여 있다. 벤치 옆에는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날에 필요할 것 같은 파라솔이 우두커니 서 있다. 식당 창가 앞 오른쪽에는 키 작은 향나무 예닐곱 그루가 나란히 서 있고 반대편에는 철쭉나무가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당 한쪽 끝에는 키 큰 야자나무가 불쑥 솟아있다. 식사 후 잠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주인장이 배려한 휴식공간인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청국장 집에서 풍기는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질 않는다. 청국장은 콩의 발효과정에서 생긴 바실루스 균이 단백질을 분해하면서 냄새가 발생한다. 발 냄새를 닮은 듯한 암모니아 냄새 때문에 청국장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엇갈린다. 그 향이 좋아 즐겨 찾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냄새가 걸림돌이 되어 발길을 돌리는 식객들도 많다. 옹달샘청국장은 후자의 입맛까지 고려해 냄새를 잡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구석 자리에 앉자마자 뜨끈한 숭늉이 나온다. 숭늉처럼 구수한 옛이야기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쉴 새 없이 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서른 살 즈음에 류 원장은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김해에 안착했다. 처음에는 고향 근처인 한림면에서 치과를 열었다. 서른둘에 결혼을 하면서 치과를 어방동으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구산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좋은치과'라는 상호는 어방동으로 옮길 때 기자가 지어준 이름이다. 지나간 세월의 농익은 이야기가 오고가는데, 주문한 식단이 차려졌다.
 
옹달샘청국장의 식사메뉴는 여섯 가지다. 청국장, 돌솥청국장, 돌솥비빔밥, 멸치쌈밥, 동태탕, 청국장 두루치기 등이다. 애주가들을 위해 해물파전, 통한마리 명태전, 다슬기 부추전 등의 안주메뉴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 식당의 대표음식인 청국장과 돌솥청국장을 시킨다. 두 가지 다 맛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 옹달샘청국장의 기본 상차림.

풋고추 두 개와 강된장, 동치미와 총각김치, 멸치볶음과 오이무침, 호박부침과 고등어자반이 상 위에 차려진다. 청국장에 어울리는 단출한 상차림이다. 겨울에 만나는 오이무침의 싱그러움과 고등어자반의 달짝지근함이 입맛을 돋운다.
 
이어서 청국장이 상 한 가운데에 놓인다. 한 술 떠 맛을 본다. 퀴퀴한 냄새는 나지 않는데 곰삭은 발효의 맛은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 청국장에는 밥과 무나물, 배추나물, 콩나물 등이 함께 나온다. 김 가루와 겉절이무침이 담긴 큰 그릇이 하나 더 제공된다. 나물을 취향대로 넣은 뒤 밥과 청국장을 비벼서 먹으라는 뜻이다. 청국장을 넣어 비빈 밥을 먹어보니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나물과 청국장의 조화가 절묘하다.
 
돌솥청국장은 뜨거운 돌솥밥 위에 세 가지 나물과 계란부침이 미리 얹혀 있다. 이 돌솥 안에 청국장을 적당히 넣어서 비벼 먹거나 그냥 비빈 뒤 청국장을 찌개로 먹으면 된다고 종업원이 일러준다.
 
친구 앞에 놓인 돌솥청국장을 한술 떠 맛을 본다. 돌솥의 온도 때문인지 일반 그릇에 담긴 청국장보다 더 짙은 향기가 맴돈다. 돌솥청국장이 겨울 음식으로 제격이라면, 일반 청국장은 여름음식으로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느긋한 점심시간이라면 돌솥을, 빨리 먹고 일어서야 한다면 그냥 청국장을 들면 되겠다 싶다. 청국장을 직접 띄워서 쓰느냐고 물으니 전문적으로 띄우는 곳에서 가져 와 쓴다고 한다.
 
"어떻게 지내?"
 
"여전하지 뭐."
 
▲ 옹달샘청국장 전경(위 사진).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숭늉.
밥을 먹는 와중에 누가 질문을 하고 답을 했는지 분간이 안 되는 공통의 대화가 오간다. 지천명(50세)을 목전에 둔 나이를 들먹이다가 건강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요즘 자신이 취미로 즐기는 '화타오금희' 이야기를 꺼냈다. 화타오금희는 중국 후한시대의 명의로 알려진 화타 선생이 창시했다고 한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원리를 감안해, 인체 생리에 의술의 이치를 결합시킨 기체조의 일종이다. 자연 속에서 유유히 살아가는 다섯 동물 즉, 호랑이, 곰, 원숭이, 사슴, 새 등의 운동 형태와 특징을 인체 생리에 절묘하게 적용해 만든 일종의 도인술이다. 이 기체조는 인체의 자가 치유 능력을 배양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그 효과가 입증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아층이 제법 많이 늘었다고 한다.
 
"열심히 운동해야 건강하게 살지 않겠어? 그래야 이렇게 밥상을 마주 할 수 있고."
 
"밥이 보약이다. 잘 먹어주는 것도 건강의 비결이지."
 
부지런히 움직이던 수저가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다. 식사가 끝난 걸 안 사장이 후식으로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식혜를 내어 놓는다.
 
"언제 같이 밥 먹자!"
 
"그래. 그러자."
 
또 '언제'라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해버린다. 살면서 무에 그리 바쁜지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청국장은 제대로 발효가 되어야 제 맛이듯, 친구사이도 세월을 두고 부대끼며 익어야 제 맛이다. 친구와 함께 한 밥상은 후식으로 나온 식혜처럼 달고 시원하다.
 
계산을 하는 그에게 '내가 언제 밥 한 번 살게'라는 말을 건넨다. 밥값은 걱정하지 말라는 언제나 똑같은 말이 계산대 앞에서 거스름으로 돌아온다.  

▶옹달샘 청국장/구산동 1068-12번지. 현대병원 뒤쪽. 055-331-0280. 청국장 7천 원. 돌솥청국장 8천 원. 돌솥비빔밥 7천 원. 멸치쌈밥 6천 원. 동태탕 6천 원. 청국장두루치기(2인 이상 주문) 1만 원.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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