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반천에서 청둥오리 한 쌍이 연애질에 한창이다. 봄이 다가왔으니 탓할 일도 아니다. 청둥오리들만이 아니다. 잔잔한 물결, 상쾌한 바람 한 점.  한껏 마음을 풀어놓고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해반천은
남녀의 데이트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해반천 옆 구산동 일대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주택가였다. 연지공원이 조성되고 해반천변이 정비되면서 식당, 커피점, 찻집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운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러자 일상의 여유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화가인 김복련이 운영하는 '갤러리茶'가 이곳에 있다. 갤러리茶는 그림 전시를 위한 찻집이다.

가정집 리모델링 찻집 겸한 갤러리
개인 초대전 공간 무료로 제공하며
작품들과 어우러져 색다른 의미 부여

열여섯 살 때부터 산수화 보고 흉내
1988년 <미술인물도록>엔 앳된 소녀로

동양화로 시작해 대학선 서양화 전공
한국화 한 분야인 선묵화로 국전 입선
최근엔 직접 만든 다기에 이야기 수놓아

국립김해박물관 앞에서 해반천을 따라 연지공원 쪽으로 쭉 가다보면 해반천변에 나무 울타리가 예쁜 하얀색 2층 건물이 하나 서 있다. '갤러리茶(구산동 284-6, 055-338-2456)'이다.
 
나무 울타리에는 해반천에서 갓 잡은 듯한 물고기가 조각돼 있다. 입구 앞에 세워져 있는 빨간 우체통에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보내온 햇살 한 움큼이 들어 있다. 대문 옆에는 열네 번 째 개인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空間공간'이라는 주제의 이상원 화가 초대 개인전이다. 현수막을 보니 이곳이 갤러리라는 걸 알겠다. 한 달에 한 번 개인전을 연다고 하니,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는 15개월 정도 됐나 보다.
 

▲ 다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복련 화가.

마당이 예쁘다. 마당은 집 주인의 마음 밭이라고 한다. 찬찬히 살펴본다. 아직 완전한 봄이 오기 전이어서 키 작은 수목들이 맨몸을 드러내고 있다. 단정하게 정돈된 잔디밭에는 지름이 40㎝쯤 되는 둥글고 평평한 돌들이 징검다리처럼 깔려 있다. 통나무 흔들그네는 소나무 옆에서 졸고 있다. 부레옥잠을 품은 돌 수반들도 여럿 앙증맞게 놓여 있다. 네댓 명이 앉아서 수다를 떨기에 적합한 원목탁자는 햇살을 가득 머금은 채 수다를 떨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덧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란 안내문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일반 가정집 단독주택 구조의 공간이 나온다. 온돌난방을 했는지 바닥이 따뜻하다.
 
"원래는 가정집이었습니다. 리모델링을 해서 찻집을 겸한 갤러리로 꾸몄답니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갤러리차(茶)라 부르지요. 저는 갤러리다(茶)라 부릅니다. 밀양 삼랑진의 만어사에서 인연을 맺은 스님들이 여러 가지 좋은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마음이 가진 않더라고요. '내가 하는 게 무얼까' 생각하다 나는 그림도 그리고 차도 끓이는 사람인데, 이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이름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문득 차 마시면 찻집이고, 그림 걸면 갤러리가 되는 그런 이름을 생각해냈죠."
 
그러고 보니 한자 '茶'에도 두 개의 음이 있다. 뜻에는 차이가 없지만  '차'와 '다' 둘로 읽힌다. 그렇다면 찻집과 갤러리가 동시에 있으니 차를 마시면 갤러리 '차'이고, 작품 감상을 하면 그냥 갤러리 '다'인 셈.
 
대개 갤러리를 겸한 복합공간의 주인은 미술 관련 이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 갤러리 한 편에 마련된 작업실.
"열여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렸다기보다는 달력에 있는 산수화를 보고 그림을 흉내 낸 거죠.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다 숯으로 따라 그려봤답니다. 보기에 예뻐서 액자를 하려고 표구사에 맡겼더니 숯 그림 색깔이 특이했던가 봐요. 동양화가인 김용범 선생이 '화실에서 그림을 한 번 그려 봐라'고 제안하더군요. 할아버지들 틈에서 동양화를 시작했어요."
 
김복련이 낡은 화보집을 꺼내 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서 만든 <미술인물도록>. 앳된 단발머리 소녀가 교복을 입고 있다. 대략 경력을 계산해 봐도 30년을 훌쩍 넘는다.
 
그녀는 동양화로 그림을 시작했지만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나중에 다시 한국화의 한 분야인 선묵화로 국전에 입선했다.
 
"화가들이 개인전을 열려면 재정적 부담이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을 무작정 작가 혼자서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저도 난감했습니다. 뽀얗게 먼지만 쌓여 가는 그림들…. 작품 활동만으론 생계가 해결되질 않고…."
 
김복련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가 갤러리茶를 운영하는 이유는 작품 활동을 위한 방편이라는 것.
 
예술가의 생계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가끔 예술가들은 생계 해결도 안 되는 그딴 짓을 왜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예술가들은 머쓱해 진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 어떻게 예술을 논할 수 있겠냐고 둘러대지만, 그 세계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야속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듯한 삶의 갈증' 때문이다.
 
김복련은 그래서 갤러리茶에 전시되는 그림에 '초대개인전'이란 타이틀을 붙이고, 작품 전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 도록도 제작해 준다.
 
▲ 김복련 화가의 손길을 거친 다기작품들.
다시 살펴보니 갤러리茶의 공간은 상당히 특이하다. 일반 가정집의 거실, 주방, 베란다를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은 갤러리다. 볕이 잘 들어 차를 마시고 있으면 실루엣 상이 맺히면서 한 편의 그림이 된다. 다실을 겸한 작은 방 세 개 가운데 하나는 김복련이 작업실로 사용한다. 볕이 잘 드는 작업실에는 'ㄱ'자 모양의 탁자와 다탁이 놓여 있다. 탁자 위에는 초벌구이를 마친 다기들이 채색을 기다리고 있다. 김복련은 요즘 직접 만든 다기에 이야기를 입히고 있다.
 
"김해에 정착한 지 20년 됐습니다. 서울에서 지도책을 펴놓고 보다 김해에 이끌렸습니다. 제가 김해김씨인 점도 한 몫 했겠죠. 외동에서 '갤러리 차'를 운영하다 해반천과 연지공원에 이끌려 이곳에 갤러리를 마련했어요. 제가 다인인지, 화가인지, 찻집주인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오랜 경력은 화가입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작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표현해 보는 거죠."
 
김복련의 말처럼 갤러리 곳곳에는 그녀가 직접 표현한 흔적들이 많다. 각종 다구를 전시해 둔 형태만 보아도 마치 공예품전시 갤러리 같다. 찻잔 진열대 칸마다 막사발, 다완, 숙우 등 다양한 다기들이 배열되어 있다. 구석, 벽면, 모서리마다 도자기, 솟대, 드라이플라워 소품들을 적절히 배치해 초대 작가들의 그림들을 돋보이게 한다. 이 공간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된다.
 
가장 광활한 공간인 벽은 초대작가들의 몫이다. 초대전을 열고 있는 이상원 씨의 작품들은 고풍스러움을 풍기는 다구와 잘 어울린다. 가장 넓은 거실 천장에는 연꽃 그림이 걸려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사용했던 다포다. 김복련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화장실 표지판이 특이하다. 남녀 성별 기호가 엉켜 있는 게 이색적이면서 야릇하다. 그녀의 남편이 직접 만든 것이다.
 
▲ 색다르게 표현한 화장실 표지판.
"한 달에 한 번씩 다른 화가들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마련합니다. 그렇게 전시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연말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제공받아 경매에 부칩니다. 판매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합니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밤에는 알고 지내던 예인들과 한 자리에 모여 축제를 벌입니다. 그날만은 찻값도 무료랍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마중물'이라는 예술동호회 모임을 만들어 창립전도 열었다고 한다.
 
"화가들은 찻값도 아쉬울 때가 있어요. 갤러리茶에서 행사를 하면 찻값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잘 사는 것보다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는 게 더 재미있더라고요. 저는 이곳이 화가들에게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갈증을 해갈로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김복련/경남 사천 출생. 한·중·일 예술교류전 참가, 미리벌 초대작가, 경남100인초대전·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가야다회·김해미술협회 회원.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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