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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격려가 ‘존재’에게 보내는 경이로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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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3.16 09:53
  • 호수 264
  • 14면
  • 정진영 구봉초 학부모 독서동아리 '책품' 회장(report@gimhaenews.co.kr)

   
 
<노도새>
김하루 지음
김동성 그림
우리아이들·48쪽

노도 떨치고 날아오른 나무새
언젠가 떠날 자녀들의 이야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부분)
 
대학 새내기 때 처음 접한 <문학개론>이라는 무거운 학문은 존재가 어떻게 존재가 되느냐는 심오한 주제로 첫 중간고사 때까지 나를 밤잠 설치게 했다.
 
나는 아득바득 외우고 쓰며 존재를 논했던 그 시절을 지나고, 어느덧 애 둘 낳고 불혹의 나이가 되어 거울에 비친 거뭇거뭇한 기미 오른 얼굴을 보면서 씁쓸해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도새 한 마리가 가만히 나의 방 창 밖에 내려앉았다.
 
'안녕, 노도새. 파랑이는 나를 노도새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울새나 박새나 딱새처럼 따로 이름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파랑이가 지어 준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박물관에 견학 온 파랑이라는 아이는 구석에 있는 '노도'의 맨 꼭대기에 앉아있던 나무새에게 '노도새'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국악기 '노도'는 조선 세종 때부터 사용된 타악기의 하나로 북의 양 귀퉁이에 이어진 끈을 빙글빙글 돌리면 끈 끝에 달려 있는 볼이 북에 부딪혀 딱딱딱딱 소리를 낸다. 아기를 어를 때 쓰는 장난감과 원리가 비슷하다.
 
파랑이는 노도 위에 날아갈 듯이 장식된 나무새에게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노도새'인 '나'가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하는 그림책이다.
 
나는 파랑이가 노도 위 나무새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에서 외로움을 깨고 존재의 의미가 시작된다는 내용의 시 '꽃'을 떠올렸다.
 
'노도새, 하고 속으로 가만히 내 이름을 불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날개 끝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자신의 날개가 하늘이 부여한 본연의 역할인 난다는 데 쓰인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나무새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준 파랑이의 순수한 마음을 엿보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밤이나 낮이나 자는 게 일이었던 나무새는 발만 빠져나오면 곧 날겠다는 파랑이의 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장대 끝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보니 장대가 흔들린다. 그러자 장대의 맨 아래쪽에서 장대를 지키기 위해 모여 있던 호랑이 네 마리는 나무새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이라며 잠이나 자라고 호통을 친다. 나무새는 의기소침해 진다.
 
파랑이의 동생 사랑이까지 와서 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자, 나무새는 날갯죽지에 힘을 넣어보지만 오히려 온몸이 뻣뻣해져 버린다. 나무새는 좌절을 겪는다.
 

   
 
새벽녘까지 멈추지 않고 두 발을 비빈 탓에 발목은 끊어질 것처럼 뜨겁고 아파온다. 나무새는 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힘없이 고개를 젓는다. 그때 노도새의 꿈을 알아차린 장대 가운데의 북이 휙휙 돌며 퉁퉁퉁퉁 소리를 냈고, 노도새는 북소리에 맞춰 죽을힘을 다해 수도 없이 발을 굴렸고, 마침내 뻑뻑한 진흙에서 빠져나오듯 두 발을 장대 밖으로 쑥 빼냈다.
 
여기서 나는 생각했다. 한 아이는 세상에 나와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이후 노년으로 넘어가기까지 온갖 굴곡진 삶을 겪는다. 그 과정에는 매 순간 도전과 좌절, 또는 성공의 경험이 반복된다는 것.
 
노도새의 모습에 내 아이의 모습이 겹쳐지고, 파랑이와 사랑이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은 내 아이도 더 넓고 높은 하늘을 날고 싶어 할 날이 올 것이고, 그 때 자유롭게 창공을 날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 된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를 인정해주고 위로와 격려로 함께 해주는 것이 나라는 '존재'에게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을 갖게 하는가 하는 것은 곧 노도새가 처음 본 박물관 밖 세상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이 책은 김동성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 김동성 작가가 그려 넣은 그림 중 날고 있는 새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의 주택가는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비탈진 골목길에서 숨을 돌리며 내려다본 내 기억 속의 마을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했다.
 
저녁놀에 물든 주택과 아파트, 나무와 나지막한 산은 '이렇게 아름다운'이라는 김하루 작가의 표현을 평온한 미소를 띠며 떠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라는 가사로 환희의 절정을 표현한 가수 윤도현의 노래 나비가 귓가에 맴돈다. 마치 내가 은은하게 바람을 가르는 노도새가 된 듯한 느낌을 불러오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자유롭게 세상을 날게 되어 파랑이네 집 창틀에서 아이들이 나누는 별자리 이야기를 듣게 된 노도새는 밤이 되자 수많은 별들 사이를 유영한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왜 우리 조상들이 노도의 끝에 새를 장식해 두었을까?' 하는 데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노도는 제례 의식 때 사용되는 악기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제사라는 의식에서 땅에 사는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매개체로 노도새를 이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책 속에서 사랑이는 휠체어를 타야 하는 아픔이 있다. 사랑이의 두 발로 걷고 싶다는 희망이 노도새에 의해 실현되어 하늘의 별에 닿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으로 그 답을 유추해 보았다.
 
존재가 실존하기 위해서는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고, 지지와 격려를 받은 생명의 도전과 좌절 그리고 극복의 과정은 그 자체가 충분히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이처럼 쉽고 따뜻하게 아이들에게 풀어내는 책이 또 있을까.
 
세상의 풍파 속에서 겨우 건져낸 존재와 관계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전달하기에는 그들 스스로 걸어가야 할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긴 여행길을 떠났다가 어느 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올 때, 노도새 이야기를 들려준 엄마의 목소리가 함께 떠올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김해뉴스

   
 



정진영
구봉초 학부모 독서동아리 '책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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