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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하는 순간 미래란 없어… 부단한 노력과 도전이 성장 모멘텀”[3] 노은식 디케이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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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3.23 09:26
  • 호수 265
  • 8면
  • 김예린 기자(beaurin@gimhaenews.co.kr)

   
▲ 노은식 디케이락 대표이사가 디케이락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촌면 골든루트산업단지에 본사가 있는 디케이락㈜은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기업이다. 매년 20~30%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디케이락의 주력 생산품은 계장용 피팅과 밸브(Fittings & Valves)이다. 일반인들은 낯설어 할 법한데, 계장용 피팅은 조선, 발전소, 해외 정유시설 등에서 사용하는 제품이다. 디케이락은 현재 전 세계에 50개의 대리점이 있고, 미국 원자로제작회사인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의 협력업체이기도 하다.

함양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형·누나 대신  어린 나이에 농사
고교 때부터 차 부속품 가게서 일

30세 때 500만 원으로 회사 설립
직원 5명과 함께 밤낮 없이 노력
IMF도 극복 대기업 협력업체로

설비·직원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
스테인리스 피팅·밸브 개발 성공
2000년 이후 세계시장 진출 노력


대표는 노은식(59) 씨다. 그의 고향은 경남 함양이다. 2남 2녀 중 막내인 노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친을 여의었다. 시골 농부의 자식이었던 그는 당시 부산으로 유학 간 형과 누나를 대신해 어린 나이였는데도 농사일을 도왔다. 그러다 열네 살이 되던 해에 형이 살고 있던 부산으로 유학을 갔고, 동아중학교를 거쳐 건국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노 대표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는 대신 1년 간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가 계셔서 감사했고, 중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농사를 지었어도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생활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형님의 말에 따라 부산으로 유학을 갔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를 다녔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야간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노 대표는 고교 시절에는 6촌 형이 운영하던 볼트와 닛불 판매 가게에서 판매 사원으로 일했다.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6촌 형의 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전역을 하고 나니 수입에 의존했던 볼트와 닛불이 국산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부품을 만들어 낸다는 게 신기했죠. 동시에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6촌 형님 회사에서 17년 간 일하면서 볼트와 닛불에 대해 알았고, 이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습니다."

1986년 1월, 노 대표는 30세의 젊은 나이로 '대광닛불상사'를 설립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과 결혼 전에 부인이 모아둔 돈을 합쳐 마련한 500만 원으로 3평 남짓한 작은 가게 겸 공장을 지은 것이다. 그는 "이른바 '창업'을 하면서부터는 볼트와 닛불 대신 피팅과 밸브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공정이 단순하고 가격이 저렴한 볼트보다 피팅과 밸브의 값어치가 더 높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설립한 뒤 5명의 직원들과 함께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3~4시까지 일했다. 처음 1년은 주말도 없이 일을 했다"고 회상했다.

비록 작은 회사였지만 노 대표는 확고한 회사 운영 방침을 갖고 있었다. '빌린 돈은 제 날짜에 정확하게 갚자'였다. 그는 "회사 운영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빌린 돈이 있었다. 빌린 돈은 제 날짜에 정확하게 갚고, 빌려준 돈도 정확하게 받았다. 정확한 자금 운용은 신뢰와 직결된다. 지금도 해외 출장 중이라 하더라도 다른 회사와의 자금 관계는 꼼꼼히 확인하면서 결재를 한다. 신뢰가 없으면 그 누구도 성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광닛불상사는 사업 확장에 따라 1991년에 법인인 '대광닛불㈜'로 바뀌었다. 1995년에는 부산 사상에 공장을 설립했다. 노 대표는 "대광닛불상사를 창업했을 때 아내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1억 원을 벌면 농사를 짓자고 했다. 운 좋게 그 꿈이 빨리 이뤄졌다. 그러자 새로운 꿈이 생겼다. 더 근사한 공장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자라면서 회사도 함께 성장했다"고 말했다.

새 공장을 설립하고 난 뒤 1년여 만에 IMF 사태가 터졌다. 하지만 IMF는 그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중대형 피팅 업체들이 미수금을 받지 못해 줄줄이 도산하면서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산 기업들로부터 고가의 설비를 저렴하게 인수하면서 설비 투자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었다. 그 결과 1997년에는 동합금 플레어관 이음쇠에 대한 KS마크를 획득했고, 1998년에는 현대중공업㈜ 협력업체가 됐다. 직원은 30명으로 늘었다. 1999년에는 회사명칭을 '대광'의 영어 약자인 '디케이(DK)'를 따 '디케이테크'로 바꿨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노 대표는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철로 만들었던 피팅, 밸브제품을 고압, 고열에 잘 견디는 계장용 스테인리스 제품으로 변경했다. 노 대표는 "스테인리스 계장용 피팅, 밸브는 정밀한 기술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부피는 작지만 값어치는 큰 제품이다. 새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외국에서 기술 고문을 초청해 오는 등 1년 간 제품 개발에 힘썼다"고 말했다.

디케이테크는 2005년 주촌면 내삼리로 공장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9년 12월 말 전 직원 200명이 태국 파타야로 가 비전 발표회를 열었다. 이곳에서 '디케이락(DK-Lok)으로 사명을 바꿨다. 그리고 디케이락은 2010년 11월 12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됐다. 

노 대표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설비와 직원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노 대표는 "계장용 피팅, 밸브 제품은 정밀 가공할 수 있는 기계장치 확보가 필수다. 하지만 정밀 기계장치를 가진다고 해서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계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수반돼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조업은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분야다. 회사 대표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설비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성장 규모가 달라진다.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연 20억 원 규모의 설비투자와 직원 자기계발 프로그램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케이락은 제품을 미국 석유화학회사 엑슨모빌, 미국 종합 화학업체 다우, 현대중공업, 두산엔진 등 국내외 300개 업체에 공급할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 디케이락은 지난해에는 560억 원의 매출 실적을 기록했다.

노 대표는 직원 교육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회사는 사주 혼자 이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목표를 이뤄나가는 것이다. 직원의 성장이 곧 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매년 직원 교육에만 1억 원을 쓴다. 직원들이 아무리 바빠도 교육 현장에는 꼭 참석시킨다"고 말했다.

노 대표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직장생활을 하다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늦은 나이에 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부산디지털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MBA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동의대학교에서 글로벌경영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표는 직원 복지에도 꼼꼼하게 신경을 쓴다. 디케이락으로 사명을 바꾼 2010년부터 직원 자녀의 고등학교 학자금과 1년 간 대학 학자금 4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위해 대학을 다니겠다고 하면 교육비를 회사에서 내 준다. 

노 대표는 "회사는 대표 혼자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성장되는 게 아니다. 도움을 받았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직원, 지역과 함께 어울리며 나누어야 기업이 자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의 신념은 디케이락의 사회 공헌으로 표출되고 있다. 노 대표는 2011년 자신이 졸업한 건국고등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해광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노 대표는 동창회원들과 기금을 모아 지난해에 5천4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올해는 장학금 3천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노 대표는 올해 김해장학재단에 2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디케이락은 국내는 물론 해외 사회공헌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2014년에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엄홍길 휴먼재단이 진행하는 네팔 학교 건립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노 대표의 목표는 디케이락을 1천억 원 단위 매출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는 "올해 매출 목표를 750억 원으로 잡았다. 새로운 인력 유입, 아이템 개발 등을 통해 계장용 피팅, 밸브 분야에서 글로벌 1등, 직원 복지 1등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노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청년들에게 '도전의식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청년들의 꿈이 대부분 공무원이라고 한다. 공무원은 안정된 직업이지만 큰 재미가 없어 보이는 직업이다. 너무 안정만 추구하다보면 꿈도 가질 수 없고 기회도 놓치게 된다"면서 "나는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창업이란 도전을 했기 때문에 실패를 했을 때 다시 일어설 시간이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하지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노은식은 없었을 것이다. 두드려야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노은식 대표이사는… 경남 함양 출생. 동아중-건국고-부산디지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동아대 MBA석사. 동의대학교 글로벌 경영학과 박사과정. 1986년 대광닛불상사 설립. 2010년 1월 디케이락㈜ 상호변경. 2010년 11월 코스닥 상장. 2014년 7월 유체개폐용 볼 밸브 특허 등록. 2014년 12월 3천만 불 수출의 탑 수상. 2015년 중소기업청 월드 클래스 300 기업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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