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의 기업체 간부인 K 씨가 상담실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부인을 떠나 보낸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지 못해 밥을 먹고, 할 수 없이 일을 하고 지냅니다. 제가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투병 중일 때도 저는 회사 일이 바쁘다며 지방출장을 다니느라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습니다. 왜 그때 함께 있어 주질 못했는지 지금은 너무 후회가 됩니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목소리에도 회한이 가득했습니다.
 
"선생님, 혹시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알고 계신지요?"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고통에도 의미가 있나요?" 삶에 의욕이 없었던 K 씨는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만약 거꾸로 선생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부인이 지금 살아 있다면 선생님은 부인이 어떻게 지내기를 원하실까요?"
 
"힘들겠지만…. 아마 슬픔을 딛고 잘 지내길 원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아, 이제 알겠습니다. 같이 갈 수 없다면, 먼저 보낸 후 그녀를 추억하며 남은 일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게 제 몫이라는 걸요!" 그의 얼굴은 아까보다는 조금 편안해 보였습니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나치에 의해 3년간 강제 수용소에 갇혀 지내는 동안 부인과 부모형제를 잃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잃고,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훔친 종이에 몰래 원고를 쓰는 것으로 연약한 삶을 지탱했습니다. 프랭클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미란 뜻인 '로고테라피'라는 심리이론을 만들어 유명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잘 찾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삶의 의미는 나에게 있는데도 타인의 태도에서 내 삶의 기쁨과 고통을 결정하려 합니다. '가족들 때문에 힘든 일을 묵묵히 견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보다는 좋은 아빠나 능력 있는 남편이 되고 싶은 것, 즉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게 먼저입니다. 가족이 조금만 내 기대에 맞지 않으면 힘든 삶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게 됩니다.
 
2년간 불면과 좌절 속에 힘들어했던 K 씨는 조금씩 일상생활을 되찾으며 회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통과 슬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감당하게 됐습니다. 어쩌면 허무하게 마감했을지도 모르는 삶을 다시 일으켰고, 자신의 남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내담자들은 자신의 삶과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며 비로소 회복을 해 나갑니다. 그러면서 점차 역지사지의 힘을 발휘합니다.
 
역지사지는 타인과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보는 것이지요. 즉 서로 신발을 바꾸어 신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면 왜곡되었던 대인관계가 점차 정상적으로 돌아옵니다.
 
K 씨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못 찾고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면서 역지사지의 힘을 회복하였던 것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자신에게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를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것이 고통의 의미입니다.

김해뉴스
박미현
한국통합 TA연구소
관계심리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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