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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울리는 선율 ‘두드림’… 세상과의 소통을 연주하다타악기 연주자 하경륜 씨와 ‘뮤직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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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4.06 09:21
  • 호수 267
  • 11면
  • 조증윤 기자(zopd@gimhaenews.co.kr)

똑똑~. 낯선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우리는 문을 두드린다. 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부딪히는 소리는 소리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소리다. 이 소리는 심장을 자극한다. 그래서 타악기들은 심장이 뛰는 소리를 닮은 경우가 많다. 타악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악기 형태다. 주로 전진을 독려하거나 흥을 돋우는 데 사용된다. 모터싸이클 할리데이비슨의 매력은 엔진 소리가 달리는 말발굽의 그것을 닮았고, 이것이 심장을 두드리는 듯 하기 때문이라지 않던가.

중2 때 교회 드럼 친 것이 첫 인연
고교선 록밴드 ‘대한민국’ 3기로 활동
하고 싶은 음악 위해 대학 3곳 옮겨
졸업 후 시립청소년교향악단 수석단원
마림바·스네어드럼 객원연주가 활동
폐쇄위기 ‘가야음악’ 인수해 운영

구지로 140번길 김해여자중학교 정문 맞은편 3층 건물 2층에 '뮤직 스테이션'이 있다. 타악기 연주자 하경륜(31) 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입구에는 '벌레와 연습하기 싫으면 실내화를 착용하라'는 경고성(?) 안내판이 붙어있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뜬금없이 실내화를 신은 연습벌레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문을 여니 입구에 세워 둔 젬베악기와 여러대의 기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문을, 똑똑, 두들겼지만 반겨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집 구경은 주인이 없을 때가 가장 좋다고 하지 않던가. 복도를 따라 설치된 다섯 개의 방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한걸음 더 들어가자 열린 왼쪽 방문 틈으로 드럼이 놓여 있었다. 두드리고 싶어졌다. 드럼 말고도 뮤직비디오에서 자주 보아온 녹음용 마이크가 서 있었다. 마이크들은 심벌즈, 탐탐, 베이스드럼, 플로어 탐, 스네어 드럼 등 각종 악기들 위에 가지런히 정렬해 있었다.
 

   
▲ '뮤직 스테이션'을 운영하는 하경륜 씨가 자신의 주특기인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드럼 녹음실입니다. 이곳에서의 작업은 주로 오전 10시~오후 3시에 진행합니다. 아무리 방음시설을 해도 드럼 소리는 정말 크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에게 방해가 안 되는 시간에 녹음을 합니다." 언제 들어왔는지 하 대표가 등 뒤에서 설명을 했다.
 
뮤직 스테이션은 모두 13개의 연습실로 구성돼 있었다. 개인 연습실이 여덟 곳, 건반악기 연습실이 네 곳, 레슨실·합주실·녹음실이 각각 하나씩 이었다.
 
"저녁이 돼야 악기들은 제 소리를 냅니다. 지금은 악기들이 쉬는 시간입니다. 오후 다섯 시부터 오후 열한 시까지 흠씬 두들겨 맞았으니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겠죠."
 
하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자마자 김해로 왔다. 초·중·고·대학을 모두 김해에서 다녔다. 그는 그래서 자신을 '김해 토박이'라고 강조했다. 음악은 김해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했다. 교회에 드럼이 있기에 한 번 쳐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책을 보고 혼자서 시작했다. 호기심은 꿈으로 바로 연결됐다. 학교 성적은 떨어졌지만, 거꾸로 드럼 소리는 점점 제 자리를 찾아갔다. 3학년이 됐을 때 음악 과목을 맡은 담임 이경희 교사는 하 대표의 호기심을 꿈으로 굳히게 하는 멘토 역할을 했다.
 
"학교 축제를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공부보다 드럼에 빠져있는 저를 보시고는 대뜸 '밴드 하나 만들자'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다른 학급에서 기타 연주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생애 첫 밴드를 만들어 첫 공연을 했습니다. 재학생들로 구성돼 이름도 없는 밴드였지만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축제를 마친 뒤에는 정식밴드로 결성했습니다."
 
   
▲ 젬베와 여러 가지 기타, 마림바.
이 교사는 하 대표의 고교 진학에도 도움을 줬다. 하 대표가 진학할 당시 김해고등학교는 선발제였다. 드럼 소리에 놀라 곤두박질친 성적으로는 김해고에 진학하기가 어려웠다. 이 교사는 제자 몰래 김해고에 원서를 접수시켰다. 모두가 낙방을 예상했지만, 그는 얼떨결에 합격을 했다. 입학하자마자 김해고 록밴드 '대한민국' 제3기로 활동을 이어갔다. "아마 선생님은 김해고에 밴드부가 있다는 걸 알고 계셨던가 봐요."
 
다시 공간을 둘러보는데 낯선 악기가 보였다. '마림바'다. 아프리카에서 실로폰을 일컫는 여러 이름들 중 하나라고 했다. 이걸 배우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가끔 오케스트라에 마림바 객원단원으로 참여하는 일이 있어서 연습을 위해 갖다 놓았다고 했다. 가끔 대학입시를 위해 속성으로 배우는 학생들이 있지만, 사실상 마림바는 자신의 전유물이라는 것이었다.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하 대표가 클래식 타악기 연주자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망설이다 어머니에게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김해시립합창단에서 활동했습니다. 반대를 예상했지만, 바닥을 친 학교 성적 때문에 어머니도 달리 방법이 없었던가 봐요. '해 볼래?'라고 하더군요. 대신 제가 원했던 실용음악이 아니라 음대 입시를 위한 클래식 악기를 배우는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하 대표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공부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했지만 목표는 서울에 있는 음대 진학으로 잡았다. 일단 서울로 가 밴드 활동을 계속 해 보려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벽은 높았다. 그는 결국 부산에 있는 신라대학교 음악학과에 진학했다.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규율이 심한 음대의 특성상 선배들로부터 받는 제약이 많았다. 하고 싶은 걸 하기보다 선배들이 시키는 것만 해야 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선배들의 명령에 로봇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염증을 느껴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활동하는 아들의 모습을 꿈꾸던 어머니의 바람이 깨져 버린 순간이었다.
 
다음해에 하 대표는 공주영상대학교 실용음악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한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김해로 내려왔다. 막막했다. 음악을 하고 싶은데 자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느낌이었다.
 
"넘어지면 빨리 털고 일어서면 됩니다. 다시 넘어질까 두려워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이 문제죠.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가 다시 한 번 해보자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부모의 얼굴을 봐서라도 허튼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녹음용 마이크. 악기회사 포스터
하 대표는 그해에 인제대학교 음악학과에 수시전형으로 다시 입학했다. 우여곡절 많았던 대학생활을 클래식타악 전공으로 마쳤다. 그는 졸업 직후 김해시립청소년교향악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했다.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사라졌다.
 
지금 하 대표가 운영하는 뮤직 스테이션은 한때 '가야음악'이라는 이름의 공간이었다. 그는 '가야음악'에서 강사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아야겠다는 원장의 말을 듣고 자신이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음악을 하다 자신처럼 돌부리에 채여 넘어진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2013년부터 이 곳은 하 대표의 공간이 되었다.
 
하 대표에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음악이요? 소통이죠. 특히 제가 하는 타악기는 두드려서 소리를 내잖아요. 누군가와 소통을 하려면 두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소리를 낼 수 있죠. 언젠가는 모두의 마음에 '똑똑' 하고 노크하는 음악을 만들 겁니다." 


>>하경륜/동광초-김해중-김해고-인제대 음악학과 졸업. 양산시립관악단 객원연주자, '후' 브라스콰이어 타악기 수석연주자, 부산 네오필 하모닉 정단원. 동주대학 실용음악학과 외래교수.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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