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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 피눈물 일까… ‘진사자기’ 붉은 빛의 오묘함을 빚어내다도예가 윤종진과 ‘운정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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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4.27 09:07
  • 호수 270
  • 9면
  • 조증윤 기자(zopd@gimhaenews.co.kr)

   
▲ 윤종진 도예가가 자신의 작품을 들어 보이며 진사자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맥없이 나라를 넘기자,
화랑 출신이었던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는 문경새재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 피눈물이 '진사자기'에 붉은 색으로 맺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렇듯 진사자기는 언뜻 보면 그저 붉음이요, 다시 보면 핏빛이요,
또 다시 보면 부활을 꿈꾸는 불꽃이다.
김해에 진사자기를 처음 도입한 운정 윤종진 도예가의 작업 공간을 찾아갔다.

군 제대 후 스물일곱 살 때 도예 입문
지인 부탁으로 글 써준 도자기
한 달 지나도록  마음속에 계속 남아

국립마산도자기시험소 찾아가 본격 수업
여주에서 3년간 현장에 파묻혀 또 공부
할머니 운명 소식 접하고 고향으로

능동마을 장작가마서 도자기 굽기 시작
그 길로 고향에 눌러앉아 흙과 씨름
김해에 처음으로 ‘진사자기’ 소개

윤종진이 운영하는 운정도예는 진영읍 진영로 388-10에 있다. 대문 우측에는 깨진 도자기 파편들이 잔뜩 쌓여 있다. 빚고 굽고 깨뜨리는 도공의 마음은 깨진 사금파리의 날선 예리함과 닮아 있다. 도공이란 불량의 예감이 들면 일반인들의 눈에는 괜찮아 보이는 도자기들도 가차 없이 깨뜨려 버리는 사람 아닌가.

김해의 도자기 공방 대부분은 진례면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운정도예는 조금 떨어진 진영읍에 자리를 잡았다. 윤종진은 1994년에 고향집 마당에 자신의 호 '운정(雲頂)'을 따 가마를 마련했다.

그가 처음부터 도예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군 제대 후 스물일곱 살에 도예에 입문했다. 서예에 관심이 많았던 윤 씨는 도자기에 글을 써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았다가 도자기의 매력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동글동글 달 항아리에 글을 써놓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모양이 한 달이 지나도 마음 밭에서 떠나지를 않더라고. 아무리 써도 변화가 없는데 더 좋은 글씨체를 가지려고 부질없는 화선지를 찢는 일이나, 늘 보면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인데 다른 빛깔을 찾으려고 깨뜨리는 도자기 작업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갑자기 화선지 대신 직접 만든 도자기에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먹을 가는 일이나 물레를 돌리는 일이나 매한가지란 생각을 한 윤종진은 그 길로 국립마산도자기시험소를 찾아가 본격적으로 도자기 수업을 받았다. 기본적인 공부가 끝난 뒤에는 현장 경험을 위해 경기도 여주로 가 3년간 수업을 받았다. 다시 경기도 이천으로 옮기고 나서 1년이 지났을 무렵 할머니의 운명 소식을 접하고 고향으로 잠시 발길을 돌렸다.

   
▲ 마당 한 편에 설치된 기름가마. 성형을 마치고 초벌을 기다리며 건조중인 도자기들. 주인의 선택을 기다리는 다기와 찻잔(사진 위부터)
"할머니는 늘 내게 마음 밭이었어. 그 허전함을 벗어나기가 힘들더라고. 고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진례에 옹기 굽는 곳이 있고, 장유 대청 계동마을과 능동마을에 도자기 굽는 곳이 있는 거야. 능동마을에는 드물게 장작가마가 마련되어 있었어. 어느 날 능동에서 사람이 찾아왔더라고. 장작가마가 오래 쉬었으니 함께 도자기를 구우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라고. 그 길로 이천 행을 접고 고향에서 흙을 만지기 시작했지."

윤종진은 김해에 처음으로 진사자기를 소개했다. 진사자기 작업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불의 변화에 따라 색이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불에 의한 색 변화의 우연성이 진사자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진사유약은 산화동을 원료로 한다. 산화동이 불길과 만나 산화하면서 붉은 색을 띤다. 도예가의 취향에 따라 우혈(牛血)진사와 팥죽진사로 색깔이 나뉘기도 한다. 요즘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약을 파는 곳이 생겼지만, 진사는 도예가마다 나름의 비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다른 자기는 깨짐이나 성형의 모습이 잘못되었을 때 불량이라고 하지만 진사자기는 색으로 불량을 따져. 도자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흙과 불이야. 성형은 기능일 뿐이지. 불이 너무 세면 색이 날아가 버리고, 너무 약하면 색깔이 어두워. 나는 초벌 10시간, 재벌 12시간 정도 불을 지펴. 남들은 8시간이면 된다지만 나는 불 욕심이 누구보다 많아. 1천285℃에서 승패가 가려지는 진사자기는 한 두 개만 건져도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나는 맑고 밝고 영롱한 선혈색을 추구하지."

작품 보관 장소로 들어가니 붉은색의 도자기들이 강렬한 시선을 보낸다. 큰 항아리와 소품 도자기들이 보인다. 모두가 진사작품들이다. 진열장 한편으로는 지난 도자기 축제 때 전시한 생활자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앙증맞은 에스프레소 커피 잔과 일반 머그컵들이 보인다. 모두가 진사의 색깔을 입고 있다. 국그릇 밥그릇으로 사용할 생활자기들도 쌓여있다.

윤종진은 작업장과 자신이 사용하는 기름가마를 보여줬다. 작업장에 들어서자마자 점토 흙이 둥근 원목처럼 쌓여 있는 게 보인다. 이미 성형을 끝내고 건조중인 작품들이 수분을 내뿜기 때문인지 피부가 촉촉하게 느껴진다. 물레 앞에 벗어 놓은 흰 고무신 한 짝이 눈에 들어온다.

"작업할 때는 흰 고무신을 신고 물레를 돌려. 오랜 습관이지. 운동화나 슬리퍼를 신고 작업을 해봤지만 물레가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어. 늘 흙을 묻히고 사는 농부들은 수륙양용식 고무신을 신고 다니잖아. 도자기도 흙 만지는 일이야. 그러니 고무신이 편할 수밖에." 그의 웃음이 흰 고무신을 닮았다.

   
▲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될 점토더미(위 사진). 운정도예 입구.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기름가마를 열어 보였다. 가마 양옆으로 풍로 세 개가 가마를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불의 세기를 조절한다. 둔탁한 가마의 문이 열리자 작고 아늑한 도자기만의 사랑방이 드러난다. 여기서 흙이 익어가고 색이 맺어진다. 한꺼번에 항아리 스무 점을 구울 수 있다고 윤종진은 설명했다.

"진례도자기축제가 생기면서 축제기간 동안에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그래서인지 자신만의 작품보다 축제장을 찾는 사람들의 선호도를 쫓아가더라고. 쫓아가면 이룰 수 없어. 다가가야 해. 아닌 게 아니라 평소에 가마를 찾는 도자기 애호가들의 발길이 뜸해졌어. 다가 갈 기회가 사라진 거지. 도자기도 사람들 속으로 다가가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어야 해. 도공은 깨뜨리는 도자기가 많을 때 행복해 지는 법이야."

대문 앞에서 배웅을 하는 그의 눈빛이 깨어진 사금파리의 반짝거리는 빛 조각과 닮아 있었다.  

≫윤종진/김해 출생. 운정도예 운영, 1990년 현대미술대상전 특선, 1991년 한국미술대상전 동상, 1993년 한국국제미술대상전 특선, 1994년 한국현대미술전 동상, 1997년 경남공예품경진대회 동상, 2005년 김해시공예품경진대회 장려상, 2006년 같은 대회 입선, 2012년 한중일 우수작가 특별전 장려상.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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