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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반 차이 없다고?… ‘엄청난 차이’ 은폐·변명 하려는 말장난<4> 오십보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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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4.27 09:28
  • 호수 270
  • 8면
  • 소진기 수필가(report@gimhaenws.co.kr)

때론 차이 아닌 차원이 다른 문제
정신 줄 놓고 도주·투항하는 자와
조금이라도 맞서는 자는 차원이 달라

오십 보는 인간의 용인되는 거리지만
백 보는 ‘임계점’ 넘는 배신의 단계
모든 단어에 ‘조금’을 붙이면 행복

'오십보백보'라는 말이 있다. <맹자> 양혜왕 상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전쟁에서 오십 보 도망 간 병사가 백보 도망 간 병사를 보고 비웃는다는 내용이다.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음을 이르는 말로, 숯이나 검댕이나, 도찐개찐(도긴개긴-윷놀이에서 도나 개나 거기서 거기라는 뜻)과 비슷한 뜻이다. 

일견 그럴듯한 이야기 같지만 그러나 오십과 백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차이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차원이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일단 농구경기에서 더블스코어는 프로와 아마의 차이로, 차 포 떼고 두는 장기와 같다. 국가대표로서 A매치에 백번을 뛰면 '센츄리클럽'에 가입하는데, 오십 번에서 다시 백번을 채우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일 년에 오십 번 술 먹는 사람은 주당이 아니지만, 백번 먹는 사람은 주당 중에서도 술꾼이다. 그리고 백년이란 세월은 인생의 시간이 더 지속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인내와 번영의 시간이다. 그 너머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오십 보가 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데모가 심했던 90년대, 전경대 초짜 소대장 시절, 경남대 뒤쪽에서 데모를 막다 기습을 당했다. 아차, 예상치 못한 좌측 고지대 언덕에서는 수박통만한 돌이 무차별적으로 날아왔고, 전면에선 코앞까지 학생들이 몰려와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아득한 공포와 거친 호흡이 쓰나미처럼 우리 소대를 덮쳤다. 돌 무리 위에 있어 퇴각도 쉽지 않았다. 한바탕 일전이 벌어진 후 주위를 둘러보니 소대장인 나를 끝까지 지킨 대원은 방호조 단 두 명, 나머지는 오십 보쯤 먼저 후퇴해 있었다. 자칫하면 내가 납치 될 뻔한 상황, 아! 그때의 배신감이란! 멀리서 딱 눈길이 마주친 어느 고참은 평소의 자신만만하던 표정과 달리 작은 눈에 어색한 상황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 고참은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 "소대장님! 제가 마 데모 막는데는 선수 아입니까! 소대장님은 아무 걱정 하지 마십쇼!"라고 큰 소리를 뻥 쳤었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 정신 줄 놓고 도망가거나 투항하는 자와 두려움에 조금이라도 맞서는 자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오십 보는 인간이기에 용인되거나 이해될 수 있는 상징적이자 심리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으나, 백보는 임계점을 넘는 배신과 어처구니없음, 비인간적인 단계로의 전락인 것이다. 따라서 오십 보 도망간 병사는 백보 도망간 병사를 보고 비웃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분히 인문학적인 관점이지만, 오십 보만 도망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두려움에 맞선 병사들로 인해 진지는 함락되지 않을 수 있으며, 장수를 보호할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오십 보의 진전이며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공간이야 말로 역사에 용해된 콘텐츠였으며, 역사를 살아 낸 자들이 공명했던 보편타당성이다. 따라서 '오십보백보'란 말은 어떤 행위의 부정적인 면을 희석시키는 고도의 심리적 은폐술이거나 무원칙주의자의 자기변명, 또는 타당한 비판을 막는 데 쓰이는 기제에 불과하다.

   
▲ 일러스트=이지산

특히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에 '오십보백보'의 책임을 엄중히 묻는 문화적 합의가 정립되지 않으면 모두 보트피플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안보법제를 변경했고 북한에 중대변화가 있을 경우 중국 군대가 들어 올 수 있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나도는 국제상황이라면, 단 일보의 후퇴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심리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 먹고 사는 일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중요한 담론일 것이다. 한국전쟁 때 신성모 국방장관이 여차하면 일본으로 도망가기 위해 부산항에 배를 준비해놓고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이미 대전으로 피난하고도 거짓말 방송을 했다는 사실은 요즘 아이들 말로 "헐~"이다. 거슬러 올라가 명나라로 도망가기 위해 아홉 번이나 망명을 구걸한 선조의 역사는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런 임금이 이순신 장군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매질까지 했다. 내가 하면 '오십보백보'고 네가 하면 단 일보도 죽일 놈이 된다. 모든 백성의 웃음거리가 된 임금,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바로 조선에 있었던 것이다.      

요즘 '조금'이란 말이 참 좋다. 조금은 조석의 간만차가 가장 작을 때를 말하고 사리는 가장 큰 경우다. 이 세상에 조금 이하가 없으므로 완벽이 있을 수 없다. 우리 별 지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질투하고 조금 게으르고 조금 잘못하고 조금 배신해도 인간으로서 허용될 수 있는 공간 내에 있으며 과히 비난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로 설 수 있다. '인간적이다'는 말을 듣는 사람치고 대체로 완벽한 사람이 없는 이치다.

그런데 이 조금을 넘지 않기 위해, 오십 보를 넘지 않기 위해 기울여야 할 노력은 때로 눈물겹다.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어야 하고 큰 배신을 하지 않기 위해 욕망과 싸워야 하고 조금 덜 먹기 위해 식욕과 싸워야 하며 반대로 '사리'의 잘못을 저지르고도 조금으로 위장하기 위한 은폐술을 개발하는 데 또 머리를 굴려야 한다. '조일전쟁'이어야 할 명칭이 '임진왜란'으로 격하된 이유다. 달과 태양의 인력이 만들어내는 조금과 사리의 중간에서 인간은 가끔 길을 잃는다. 그래서 고해성사가 있고 후회가 있으며 감옥이 있다. 오십 보와 백보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기쁨과 슬픔의 파노라마, 그 자체가 인생이고 역사가 된다. 

세상에 뭔가 어마어마한 것이 있는 줄 알던 때가 있었다. 다 가지지 못하면 던져버렸고 다 잃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던 청춘의 시절이었다. '조금'이라는 것은 치사하고 시시했다. 그런데 그 '조금'이 지금 나의 토대요 조각조각 진실이었음을 차츰 깨닫는다. 모든 단어에 '조금'을 붙이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진다. 조금의 배려, 조금의 친절, 조금의 베풂, 조금의 고생과 인내, 조금의 효도와 충성, 이 정도면 멋지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라고 읊었다. 조금도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완벽해지려니 이렇게 괴로운 것이다. 물론 완벽을 지향했던 순국선열로 인해 청소년은 꿈을 키우고 위로를 받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조금의 여유와 용서를 선사할 필요가 있다. 오늘 조금 놀고 내일 조금 더 하면 되는 것이고 몇 점 부끄럼이 있는 존재가 사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쫌'도 조금이라는 말의 경상도 사투리다. "잘 봐줘라"는 말보다 "쫌 봐주라"는 말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 이유가 있었나 보다. 

좋은 소식보다는 안 좋은 소식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여기 저기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린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 있는 분들은 부디 조금 더 버틸 수 있기를 조금 더 버텨주기를 기도하고 기대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을 담는 나라는 너희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나라이며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터전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허물이 컸으되 오십 보의 아량을 베풀어 주신 많은 제위들이 있었다. 마지막 한마디를 삼켜 준 지나간 사랑에게도 이 아름다운 봄날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소진기/ 경찰대 졸업. 총경. 수필가. <수필세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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