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진례면 진영농공단지. 지난달 말 오후 2시께 기계 부품을 제조하는 A공장 일대를 둘러봤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 사위는 적막하다. 6천600㎡(약 2천평) 크기의 마당을 지나자 한 편에 제조과정에서 발생한 산업폐기물 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뒷편으로 녹슨 철제 컨테이너 4동이 자리잡고 있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빨간 부탄가스통을 보고 이 곳에 사람이 산다는 걸 짐작한다.
 
몇 걸음을 떼자 한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컨테이너들 사이로 말 소리가 들려온다. 사지스(25·스리랑카) 씨다. 운동복 차림으로 녹슨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는 꽁초를 몇 번이나 발로 비벼댔다. 불이 두려워서라고 했다. 그는 "화재가 나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담배꽁초가 바람에 날리는 일이 잦기 때문에 화재 발생 위험도도 그만큼 높다.
 
비좁고 생활환경 열악해 질병 노출, 화장실·목욕탕마저 없는 곳도

컨테이너 안에서도 불이 두렵긴 마찬가지다. 겨우 3.3㎡(1평) 크기에 불과한 좁은 컨테이너 안에는 2대의 난방기구가 놓여 있다. 그 옆으로는 세탁을 언제했는지 모를 정도로 더럽기 짝이 없는 요가 겹겹이 쌓여 있다. 자칫 전열기구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언제든 대형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방은 춥다. 방안에서 숨을 쉬니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다. 무스타카(27·스리랑카)씨는 "화재위험이 있어도 너무 추워서 난방 기구를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더구나 이 좁고 더러운 공간에 한 컨테이너당 4명씩 16명이 모여 산다. 화장실도 없다. 화장실은 50m 가량 떨어진 공장 안 화장실을 이용한다. 간단하게 몸을 씻을 장치도 없다. "샤워는 그렇다하더라도 급히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컨테이너 주변에서 해결을 한다"고 레홍투(28·베트남) 씨는 말했다.
 
주방이랄 것도 없는 곳엔 온갖 벌레들,

식당 사정은 더하다. 컨테이너를 반으로 잘라서 식당으로 쓰고 있다. 낡은 식탁 하나, 선반 위에 올려진 가스레인지 하나가 전부다. 배수도 제대로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갈색 식탁 위에 까만 파리들이 눌러 앉아 까만색인지 갈색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그 식탁 위엔 뿌연 그릇들과 냄비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바퀴벌레, 쥐들도 자주 나타난다. 식당 앞에 놓인 냉장고는 멀리서도 악취를 풍긴다. 문을 열자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잽싸게 몸을 숨겼다.
 
레홍투씨는 얼마 전 이 곳에서 밥을 먹은 동료가 쯔쯔가무시병에 걸렸다고 전했다. 식당에 쥐가 자주 나타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다행히 그 친구는 10여일 간 병원 치료를 받고 증세가 나아지긴 했지만 우리도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같은 방 친구 누엔(28·베트남) 씨도 "아침에 불을 켜면 느닷없이 쥐가 튀어나와 깜짝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바퀴벌레와 쥐들이 옮기는 병, 병이 두렵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건 '안타까운 사연'이 아니다. 외국인 인구 3만 명(비공식)을 헤아리는 김해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다. 특히 공장이 밀집해 있는 한림, 진례, 주촌 등지에서는 너무나 쉽게 이런 현실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사정은 더욱 안타깝다. 흔한 풍경이라서 사람들이 심각한 일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름엔 찜통 겨울엔 냉장고 방불, 전열기구뿐인 난방시설도 화재 화약고


컨테이너 생활의 가장 큰 적은 '추위'다. 공장 밀집 지대인 한림면 장방리. 매섭게 밀려드는 겨울바람에 컨테이너가 흔들린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로 이어지는 길가에 자리잡은 한 빵공장은 건물 뒷편에 2층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바깥에서는 이 컨테이너가 보이질 않는다. 1층 20피트짜리 컨테이너 위로 10피트짜리 1동이 놓여 있다. 1층에서 문을 열면 2층까지 다 흔들린다.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벌써 4년 째 이 곳에서 살고 있다는 파키스탄인 암자드(25) 씨는 "누가 문을 열 때마다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1층 컨테이너 문은 바람 때문에 잘 열리지도 않는다. 창문에 아무렇게나 붙여놓은 빵가루 포장지는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방 안에서 점퍼까지 걸친 버트(24) 씨는 "한겨울엔 이불을 돌돌 감고 있어도 춥다"고 말했다. 버트씨가 기대고 있는 벽은 비가 새 누렇게 얼룩 져 있다. 그래도 2층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3명이 모여 사는 2층. 침대 1대, 장롱 2개, TV를 놓고 나니 제대로 발 뻗을 공간도 없다. 바닥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전기 판넬은 이들이 누울 공간에만 설치되어 있다. 비어있는 공간만큼 마음도 시리고, 몸도 춥다. 에자드(26) 씨는 "12시간 일하고 돌아와 추운 곳에서 자기 때문인지 피로도 안 풀리고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얼마 전 그만 둔 동료들도 심한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그러나 주촌면에 위치한 단조업체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 2층 컨테이너를 부러워 할 것이다. 이 곳의 컨테이너엔 창문이 없다. 그러니 햇빛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낮이나 밤이나 춥긴 매한가지다. 여기에 9명이 모여 산다. 그래도 전기 히터가 2대 있긴 하다. 하지만 사용한 만큼 돈을 내야 하는데, 이들에겐 비싼 전기세를 낼 돈이 부족하다. 캄보디아에서 온 미첼(28) 씨는 "4년 동안 전기 히터를 써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친구 램(28)씨도 "한여름과 한겨울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전했다.
 
누군가는 '집'이 가장 편하다고 말하지만, 이들에게 집은 두려운 곳이다. 고국에 있는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이 '두려운 집'을 이들은 오늘도 묵묵히 참고 견뎌내고 있다. 다만 그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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