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강수 작가가 조각칼을 들고 작업을 하고 있다.

낙동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삼각주가 펼쳐져 있다. 대동면의 길을 달리다가 문득 꼬불꼬불한 좁은 길목을 지나니, 불교조각가 안강수(56)의 작업실 '보광불교조각연구소'가 나타났다. 삼각주처럼 대동면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강수의 작업실은 대동면 동북로 31번길에 있었다.

연꽃·거대한 불상 등 사찰 신상 조각
전시실 양쪽 벽면에 서각작품 눈길
지리산 불자 집안서 태어나 불교와 인연
조각가로 출발 결혼 후 불교 조각 입문
전시회만 국·내외 통틀어 250여 회나
대한민국서각대전 대상 등 다수 수상

안강수의 작업실은 여러 조각의 퍼즐이 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듯했다. 작업실로 난 길 오른편에는 무화과, 사과, 살구 등을 키우는 밭이 있었고, 그 위로 5미터를 올라가니 작업실과 가정집이 기역자 형태로 붙어 있었다. 집 앞에는 잔디가 고르게 깔린 앞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주차장 한편에는 굵고 큼직한 나무토막들이 목재소를 연상시키듯 눕혀져 있었다.
 
"작업실을 보여드려야죠." 작업실 주변 전경에 눈이 팔려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는데, 안강수가 자신의 작업실로 기자를 불러들였다.
 
안강수의 작업실은 넓었다. 총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첫 번째 문을 열자 투박한 기계들이 고요하고 낮은 자세로 잠을 자고 있었다. 톱과 도끼 뭉툭한 망치 등 연장들이 한 쪽 벽면에 걸려있었다. 혹여 침입자가 있다면 첫 관문에서 바로 오금을 저리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제1공간은 나무를 가공하는 곳이었다. "나무는 목재소에서 구해 옵니다.  원형 그대로의 나무를 사와서 작품의 크기에 맞게 자르고 다듬는 일이 작품을 만드는 첫 단계입니다."
 

▲ '보광불교조각연구소' 안에 있는 전시관.

작업실 안은 봄철 미세먼지와 황사가 응집돼 있는 곳 같았다. 나무 가루가 희뿌옇게 운무를 만들고 있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대동면 산자락의 맑은 공기는 온데간데없어졌고, 나무 톱밥을 그대로 코 속에 밀어 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업실의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천장이 높다는 것이었다. 작업실은 원래 창고를 개조해 만든 공간이었다.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첫 번째 공간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작업실이 나왔다. 문 바로 맞은편엔 작업책상이 길게 벽을 따라 둘러 서 있었고, 책상 위에는 초등학생 크기 만한 불상이 인자한 미소를 띤 채로 앉아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자 그가 현재 작업 중인 대작이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우뚝 솟아 있었다. "이 공간은 실제로 조각을 하는 작업실입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연꽃에서부터 거대한 불상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 생명을 얻어 탄생합니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약 1~2년 정도가 걸립니다."
 
그는 주로 사찰에서 사용하는 신상을 조각한다. 불교미술은 문화재와 직결되는 부분이 많아 더욱 정과 성을 다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단순한 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는 "커다란 불상을 조각한다고 해 보자. 그냥 듬성듬성 큼직한 모양을 만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신의 모습을 시각화해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세밀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작업실 문 옆에는 미닫이문이 설치된 마지막 공간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업실이 아니라 전시실이 펼쳐졌다. 들어섰을 때  바로 보이는 불상은 법당을 연상시켰고, 양쪽 벽면에는 서각작품이 서로를 마주보며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서각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강수는 "원래 조각을 하던 사람이 서각을 하면 3~4년이면 금방 배울 수 있다. 조각은 3차원의 작품을 만드는 것인데 반해 서각은 2차원 평면에 각을 새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불경을 조각하기도 하지만 세밀한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감각을 키우기에는 서각이 좋다"라면서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았다.
 
이곳에서 정식으로 전시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정식으로 전시를 하지는 않지만 지인들이나 조각을 하는 분들이 찾아와 구경을 하고 간다. 손님치레를 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도 있다. 매번 맛있는 고기를 내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시 바깥으로 나와서 보니 안강수의 작업실은 자연과 공존하고 있었다. 작업실 바로 옆에는 하천이 있었고, 넓은 텃밭에서 곤충이 날고 있었고, 주변은 널따란 농지가 에워싸고 있었다.
 
▲ 보광불교조각연구소 전경, 연꽃 모양 조각품과 불상 및 해태(사진 위쪽부터).
안강수는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의 불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연 속에서 풀과 나무와 작은 생명들과 벗하며 자랐던 그는 그래서 불교와의 인연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런저런 사업을 하며 평범하게 살았는데, 일반 공예를 시작으로 조각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8년 결혼 후 일본에서 조각 연수를 통해 불교 조각에 눈을 떴다. 불교조각회 이상철 회장과의 인연으로 불교조각에 본격적으로 입문했으며 여진 이진형 문하에서 10여 년간 수업도 했다. 나아가 체계적인 불교 활동을 위해 불교청년회 활동도 했다. 사회봉사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대표적으로 부산 대각사의 청년회 회장으로 있었을 때 용두산 공원에서 매월 2천여 명분의 국수를 나눠주는 무료 국수공양 봉사활동을 20여 년간 지속했다. 이 봉사활동으로 부산시 봉사상도 수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각가로서도 많은 일을 했다. 전시회만 해도 국내외를 통틀어 250여 회를 열었다. 1992년 제15회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 은상, 2008년 제5회 대한민국문화유산상, 2009년 제27회 대한민국미술대상전 대상, 2010년 제7회 대한민국서각대전 대상, 제8회 대한민국공예대전 대상, 2010년 역사문화축전 은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도 갖고 있다.
 
"지금은 인간문화재 등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 '보광불교조각연구소'를 불교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대동에 터를 잡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안강수는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불교 조각으로 승화시켜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강물의 물줄기가 얇든 굵든 그는 계속해서 흘러서 대동에 삼각주 같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그 삼각주와 강 사이에 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들을 초대 하려 하고 있었다.
 
김해뉴스 /강보금 기자 amon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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