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애 관장이 무말랭이를 얹은 돼지고기 한 점을 권하고 있다.

 달고 부드러운 식감에 탄성이 절로
 김치·무말랭이 얹어 먹으면 더 일품

 된장·양파·생강 등 10여 가지 넣어
 돼지고기와 함께 삶아 냄새 싹 없애
 보쌈김치 매일 사장이 직접 담가

 이 관장, 결혼 후 ‘경력 단절’ 경험
“여성들 취미·강좌 등 자기 생활 찾아야”


김해여성인력개발센터 이영애(44) 관장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회사생활을 그만 둔 경력단절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관장의 활동 상황도 살펴볼 겸 점심을 함께 하자고 했더니, 삼계동 수리공원 인근에 있는 '황금해물문어보쌈'에서 만나자고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수리공원 일대는 취중진담을 나누는 사람들이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로 왁자지껄하다. 반면, 해가 머리 위로 높이 뜨는 시간이 되면 수리공원 일대는 적막강산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전날 밤과 새벽 사람들의 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수리공원 일대의 식당들은 대부분 생선회, 육류, 양곱창 등 술 안주를 파는 곳인데, 점심식사를 위한 괜찮은 곳이 있을까?
 

▲ '황금해물문어보쌈'의 점심특선 보쌈정식 상차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황금해물문어보쌈에 도착했더니, 먼저 와 있던 이 관장이 반가워하며 기자를 맞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이미 다른 손님들이 연신 젓가락질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서로의 안부를 물은 다음, 이 관장이 김해여성인력개발센터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이 관장은 2001년에 김해YWCA에서 근무했는데, 결혼을 하면서 YWCA를 떠나게 됐다. 남들처럼 첫 아이를 낳고 4년 동안 육아에만 매진했다. 전업주부였던 것이다.
 
▲ 비계와 살이 적절히 섞인 돼지고기
"아이를 낳고 나서 4년 정도 일을 쉬다보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육아에 지친 탓인지 그때는 우울증도 찾아왔던 것 같아요. 첫째가 내게  많이 혼난 시기가 3~4세 때였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별거 아닌 일로 혼을 냈을 만큼 예민해져 있었던 거죠. 그런 저를 보고 남편은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무슨 일이라도 해보라'고 조언했죠. 마침 김해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습니다."
 
 센터의 일은 그에게 삶의 활력소가 됐다. 센터에서 직업교육, 행정업무 등을 처리하며 업무 능력을 쌓아온 끝에 2014년에는 관장 직을 맡게 됐다.
 
어느새 식탁에 음식이 차려졌다. 에메랄드빛 접시 위에는 뽀얀 속살을 드러낸 돼지고기와 무말랭이, 쌈무, 빨간 보쌈김치가 수북이 얹혀있었다. 이어서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흰 쌀밥이 등장했다.
 
돼지고기에는 숭덩숭덩 썬 비계가 붙어있었다. 먼저 촉촉한 고깃덩어리를 입안에 넣었다. 듣기에, 러시아 같은 곳에서는 돼지, 소 같은 육류를 먹을 때 특유의 냄새를 즐긴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고기의 냄새를 잡아야 '고기를 잘 삶는다'는 칭찬을 듣는다. 황금해물문어보쌈의 돼지고기한테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 보쌈정식 세트
보쌈에 딸려 나오는 고기는 자고로 김치 한 점, 무말랭이 하나를 같이 얹어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돼지고기는 부드럽고 달았고, 김치와 무말랭이의 아삭함은 즐거움을 더해줬다.
 
 8년 전에 황금해물문어보쌈을 시작했다는 양정란(58·여) 사장은 보쌈에서 고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양 사장은 "우리는 보쌈 고기로 식감이 부드러운 지방과 살이 적절히 섞여있는 삼겹살을 쓴다"고 말했다. 이 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관장은 "이 집의 고기는 잡냄새가 전혀 없고 살점이 부드럽다. 두께도 적당해서 먹기에 좋다. 손님들이 고기를 따뜻한 상태로 먹을 수 있도록 접시 아래에 양초를 놓아둔다. 양 사장의 배려가 고맙다"고 말했다.
 
양 사장은 "어떤 집에서는 돼지고기를 삶을 때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한약재를 넣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약재는 임산부나 아이들에게 안 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약재를 일체 넣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양 사장은 대신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된장과 양파, 생강 등 야채 10여 가지를 넣어 고기와 함께 삶아낸다고 했다. 야채의 수분이 고기에 다 배어 나와 돼지고기가 촉촉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보쌈김치는 양 사장이 매일 10~15포기를 직접 담가 손님상에 낸다. 배추의 숨을 죽이고 매일 시뻘건 양념을 배추에 치대는 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다. 양 사장은 "보쌈은 매일 고기를 삶고 김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만큼 정성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원래 굴 보쌈김치 전문이었다. 손님들이 '더 맛있는 것 없냐'고 해서 2014년부터 문어보쌈을 개발했다. 다음엔 문어보쌈을 먹으러 와라"라고 말했다.
 
▲ 황금해물문어보쌈 전경.
다시 이 관장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 관장은 그 역시 경력단절 여성이었기 때문에 경력단절 여성의 아픔과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경력단절 기간이 오래되면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존감이 낮아진다. '다시 일을 시작해 볼까?'하고 마음을 먹더라도 육아만 하다가 세상에 나서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와 자신의 인생의 균형을 맞춰야 삶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5일 간 전문 상담, 취업 설계 등을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 갈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센터에서는 매월 프리마켓도 하고 있다. 판매자는 대부분 주부다. 유아용품, 양초 등 손재주가 많은 주부들이 자신이 만든 것을 판매하면서 자신감과 자아를 회복한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에게 내 아이, 가정만 보고 살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많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맛있는 밥 든든히 챙겨 먹고 힘을 내서 가정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황금해물문어보쌈/해반천로144번길 17-13(삼계동 1473-8번지). 수리공원 옆 별미복집 골목. 055-339-9289. 점심특선 보쌈정식 1인 8천 원. 전통보쌈 소 2만 8천 원. 중 3만 4천 원. 대 4만 원. 문어보쌈 소 4만 2천 원. 중 4만 8천 원. 대 5만 4천 원. 문어해물보쌈 6만 원.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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