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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롭고 애잔한 음색… 재즈로, 클래식으로 열정을 버무려 내다색소폰 연주자 양원용 씨와 ‘양원용 색소폰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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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5.11 09:34
  • 호수 272
  • 8면
  • 조증윤 프리랜서(report@gimhaenws.co.kr)

누구나 한 번 쯤 석양을 배경으로 멋들어지게 색소폰을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을 것이다. 색소폰은 그만큼 특유의 감미로움과 애잔함을 자아내는 악기이다. 황금색 외관 때문에 색소폰을 금관악기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은 '금속으로 된 목관악기'다. 나무로 된 홀 리드(목관악기를 연주할 때 입에 물어 울림을 만들어 내는 도구)를 사용해 소리를 내기 때문에 목관악기로 분류한다. 색소폰으로 자유분방한 재즈와 빠른 템포의 곡을 연주하는 양원용의 공간을 찾아갔다.

   
▲ 양원용 씨가 '색소폰 아카데미'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고교 때 관악부에 들어가 음악과 인연
당시 인기 드라마에 꽂혀 색소폰 시작
실용음악과 없어 클래식음대 진학

‘라온제나’라는 6인조 밴드 만들어
나이 많은 제자들과 함께 봉사활동
요양원 등 요청 땐 언제든 달려가 연주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리리리 라일리랄라 리리 랄리리 라일라♪~'라는 음악으로 시작되는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TV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 차인표는 크고 멋있는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녔다. 게다가 색소폰까지 멋들어지게 연주했으니 숱한 여성들이 맘 설레 한 건 당연지사. 드라마에서 차인표는 '바이크 탄 왕자'였다. 김해에 당시 드라마 속의 차인표한테 반해 색소폰 연주자가 된 사람이 있다.
 
'양원용 색소폰 아카데미'는 삼계동 스타벅스 맞은편 삼계대로 중앙약국 8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 8층에서 내리자 세 명의 중년남성들이 콘트라베이스, 기타,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 큰 창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다 알게 된 것이지만 미술을 전공한 양 원장의 제자가 그려준 그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띈 것은 중앙에 마련돼 있는 작은 무대였다. 그 무대를 중심으로 개인연습실이 마주보고 있었다. 모두 11개의 개인연습실과 1개의 음악 작업실이 있었다.
 
"공연을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실제의 무대를 느껴보란 뜻에서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이곳에서 1차 리허설을 마친 뒤 공연을 갑니다. 마음속에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상상하면서요." 언제 다가왔는지 양원용이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 양원용 씨가 사용하는 다양한 색소폰.

양원용은 고등학교 시절에 관악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관악부에서는 악기를 선택하는 시간이 있었다. 앞서 말한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인기가 한창이던 시절이라 당연히 색소폰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교사는 팔이 길다는 이유로 트럼본을 권유했다. 양원용은 색소폰이 아니면 관악부를 나가겠다고 우겼다. 그것도 색소폰 중에서도 가장 크고 폼이 나는 테너 색소폰을 하겠다며 버텼다. 이런 양원용의 고집에 규율이 엄격했던 관악부의 선배들은 혀를 찼다. 결국 양원용은 색소폰을 품에 안았다. 알토 색소폰이었다.
 
"색소폰을 연주할 줄 알면 차인표 씨처럼 폼 나고, 멋있고, 여학생들도 줄을 서서 쫓아올 줄 알았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관악부는 독주가 아니라 합주형태였고, 색소폰은 관악부의 하나일 뿐이었죠."
 
대학 진학은 힘들었다. 당시만 해도 클라리넷 등 관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색소폰 정도는 부전공으로 연주가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오직 색소폰만 연주해 온 양원용에게 대학진학은 불리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대학이 거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지원자가 대거 몰렸다. 양원용은 하는 수 없이 선택의 폭이 넓은 클래식 관련 음대로 진학했다.
 
"아버지는 막상 음대 진학을 반대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첫 학기 등록금을 대 주고 색소폰 한 대만 사주면 혼자서 대학을 졸업하겠다고 사정사정했습니다.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 이 색소폰이 대학입학 때 부모가 사 준 색소폰입니다. 아직도 이걸로 연주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양원용의 색소폰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여러 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고 녹이 슨 흔적이 많았다. 서른 살 즈음이었다고 했다. 악기가 너무 낡아 바꿀 생각을 하고 중고 악기상에 팔아 버리려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악기상 주인이 만류를 했다. '이제야 제 기능을 하겠는데 이 아까운 걸 왜 팔아? 새 악기라고 다 좋은 게 아냐. 사람이 그렇듯 악기도 단련이 되어야 제 소리를 내는 거야'라는 말에 양원용은 발길을 돌렸다. 그때부터 17년이 된 지금의 색소폰은 양원용의 보물 1호가 되어 버렸다.
 
   
▲ 제자가 그린 그림으로 장식한 아카데미 입구(위 사진)와 리허설용 무대.
양원용은 해군 군악대에서 연주하는 게 꿈이었다.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연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릴 때 사고로 다친 몸 때문에 군대를 갈 수 없었다.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해군 군악대에 지원했는데, 6개월간의 훈련을 견뎌낼 수 있겠느냐며 군의관이 걱정을 했다. 결국 신병교육대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양원용은 색소폰에게 진 신세가 너무 많다고 했다. 색소폰 덕에 지금의 부인도 만났다. "장모가 색소폰 수강생이었습니다. 저의 됨됨이를 파악하고는 행여 들킬새라 다른 사람을 통해 아내를 소개했습니다. 처음 만남에서 느낀 건데, 아내의 웃는 모습이 장모를 너무 많이 닮았더라구요. '혹시 이경희(장모) 선생님을 아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모른다고 딱 잡아뗐습니다."
 
옆에서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부인이 말을 거들었다. "색소폰 연주자라기에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우락부락한 사람이 나와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반듯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은 멀리서 들어도 '아! 이건 오빠가 연주하는 거구나!'라고 알 정도가 됐습니다. 악기가 참 신기해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닮아 있어요."
 
'양원용 색소폰 아카데미'는 라온제나라는 6인조 밴드와 함께 활동을 한다. 나이는 많지만 모두 양원용에게 배운 제자들이다. 양원용은 라온제나와 함께 '생명의 전화'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라이브 연주를 직접 듣기 힘든 요양원의 요청이 있으면 마다않고 찾아가 연주를 한다.
 
"저만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색소폰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7, 8년은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엔 안 되는 걸 억지로 시키는 선생님이 야속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될 때까지 연습시키는 선생님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연습실에서 연습을 마친 라온제나의 청일점 단원 강창숙(55) 씨가 양원용의 지도 스타일을 설명했다.
 
“요즘에는 어르신들이 색소폰 연주를 많이 배웁니다. 아마 미8군이 들려주던 색소폰 연주의 추억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이 모두 참여하는 정통 빅밴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취미든 전업이든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든 분들이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그런 모습을보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라온제나는 '즐거운 우리'란 뜻이다. 기자도 색소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우리'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김해뉴스 /조증윤 프리랜서 report@gimhaenws.co.kr


≫ 양원용 / 2000년 부산예술대학, 2002년 대구예술대학교 졸업, 2011년 대구 전국예술실기대회 중주부문 수상, 2011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세션 활동, 통영국제음악회 프렌지공연 참여, 김해문화의전당 독주 및 공연 다수, 양원용섹소폰아카데미 원장, 라온제나섹소폰 단장,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김해지부 감사, 대구예술대학교 공연음악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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