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존 센터장이 오리야채불고기를 쌈에 얹고 있다.

부추·미나리·애호박 등 야채 듬뿍
텁텁함 없고 식감 좋아 남녀노소 만족
4~5년 요리법 연구… 특허등록도

공기밥 무한공급 후한 인심 자랑
입가심 빨간냉면 한 그릇에 입안 개운
정 센터장 "몸에도 좋은 보양음식"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센터 정경존(54) 센터장은 외모만 봐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쉽게 감을 잡기 힘들다. 직업도 다양해서, 노인복지센터 센터장에다 회현동 주민협의체 간사, '미투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가정교회 목사직을 맡고 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것 같은 정 센터장을 한마디로 요약해 소개하자면, 가장 정확한 표현은 '회현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 센터장에게 "회현동의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그는 단번에 "'오야불'에 가자"고 답했다. 회현동을 손바닥 꿰듯 훤히 알고 있는 그이기에 자신 있게 추천한 '오야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이름부터 생소한 오야불은 서상동 범환맨션 맞은편에 있었다.
 

▲ 오리야채불고기, 빨간냉면, 볶음밥(위에서부터)
식당에 가자 정 센터장은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탁이 6개 남짓한 아담한 가게였다. 정 센터장은 "회현동 주민 모임을 하러 자주 오는 곳이다. 문을 연 지 1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잘 알려진 맛집"이라고 말했다. 오야불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는 좌식이어서 가정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오리 야채 불고기!' 가게 안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메뉴를 보고 나서야 오야불이라는 이름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정 센터장은 "여기는 오리고기로 만든 음식 중에서도 특별한 곳"이라고 말했다. 알쏭달쏭했다. 이윽고 오야불이 식탁에 나왔다. 오야불의 오리고기는 덩어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얇게 저며져 있어 흡사 고추장양념 소불고기 같았다. "이게 오리고기 맞느냐"라고 묻자 정 센터장은 "이게 바로 오야불의 특징"이라며 웃었다.
 
오야불의 서보수(37) 사장은 달궈진 철판에 오야불을 올렸다. 가운데에는 저며진 오리양념, 그 주위를 야채가 동그랗게 감쌌다. 통상 오리불고기는 부추에다 기껏 해봐야 마늘, 양파가 들어가면 끝이지만 오야불은 그 이름에 걸맞게 부추, 미나리, 배추, 애호박, 숙주나물, 팽이버섯 등 올라가는 야채가 다양했다. 서 사장은 "정해진 야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몸에 좋은 제철 야채를 넣는다"고 설명했다.
 
얇게 저며진 고기는 철판 위에서 금세 익었다. 깻잎 한 장에다 고기와 야채를 듬뿍 얹은 다음 쌈을 싸서 입에 넣었다. 고기는 워낙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금방 사라졌다. 오리고기 특유의 텁텁함이 없어 식감도 좋았고 매콤한 양념은 고기 안에 촉촉하게 배어 있었다. 정 센터장은 "정말 남녀노소 모두 먹기 좋다. 맛까지 좋아 안 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젓가락은 절로 춤을 추었다. 식사로도, 안주로도 그만일 음식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시작은 아내의 입맛에서 비롯됐다. 식품 관련 학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몸에 좋은 오리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서 사장은 아내가 오리고기의 질기고 텁텁한 맛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새로운 형태의 오리고기를 고민했다. 구상과 연구에만 4~5년이 걸렸다.
 
그만의 비법은 오리고기를 영하 30도에 급속 동결한 후 영하 5도까지 해동을 한 다음 약 1㎜ 두께로 얇게 썰어낸 뒤 양념에 치대는 데에 있었다. 이런 방법 덕분에 오리고기 특유의 텁텁함이 사라지고 소고기 같은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특히 오리 양념에는 서 사장의 처가에서 직접 재배하는 사천 배를 넣어 자연의 단맛이 나도록 했다. 오야불은 특허 등록도 돼 있는 요리였다.
 
▲ 오야불 전경.
오야불을 다 먹은 뒤 철판 볶음밥을 주문했다. 볶음밥에는 모짜렐라 치즈가 듬뿍 들어가 있어서 요즘 세대들의 입에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오야불을 가볍게 먹고 싶은 사람들은 7천 원짜리 오야불 덮밥을 즐길 수도 있었다. 특히 오야불 덮밥은 초·중·고 학생들과 8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5천 원으로 가격이 저렴했다. 공기밥 역시 무한 공급돼 인심이 후했다. 서 사장은 "회현동은 과거에는 김해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구도심이다. 다른 가게와 똑같다면 굳이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독특한 메뉴를 푸짐하게 드리려고 한다. 또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곳이니 조금이나마 저렴한 가격에 드실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입가심을 위한 빨간냉면도 나왔다. 빨간 살얼음에 훈제오리고기가 올라간 냉면은 여름 별미였다. 서 사장은 "빨간냉면의 육수에도 사천 배가 들어갔다. 많이 맵지 않고 새콤달콤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오야불에 볶음밥까지 먹었지만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맛에 냉면 그릇도 금세 비워졌다.
 
신나게 음식을 먹고 난 후 정 센터장은 "여기에 오면 몸보신을 한 것 같다. 대접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음식이 모두 먹기에 좋게 준비된데다 맛도 좋아 보양음식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정 센터장의 말을 듣고 보니 먹은 게 다 보양음식이었다! 입에 쓴 게 몸에 좋다고 하지만 오야불은 입에도 달았고 몸에도 좋았다.
 
매일매일 바쁜 정 센터장의 건강 비결이 보양식에 있나 했더니 사실 그의 가장 큰 건강 비결은 봉사에 있었다. 정 센터장은 "지금은 건강해보이지만 15년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수술을 했다. 병원 문을 나서며 언제까지 살 수 있을 진 모르지만 남은 삶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자고 다짐했다"고 아픈 과거를 회상했다.
 
대수술을 받은 그는 요양을 위해 공기가 좋다는 김해로 이사를 왔고, 그때부터 회현동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자신의 경험을 살려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센터의 전신이었던 탁노소에서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호스피스 봉사활동 1년 만에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소장을 맡았다. 자원봉사자에서 소장으로 갑자기 직급이 올라갔지만 소장 역시 임금이 없는 봉사직이었다. 이후 그는 늦깎이 학생으로 인제대학원에 들어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이후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생기면서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센터가 생겼고 정식으로 센터장이 됐다. 동시에 회현동 통장으로도 10년간 봉사했다. 최근에는 회현동 주민협의체가 구성되고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면서 마을을 살리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너무 즐겁고 힘이 넘친다. 봉사하고 섬길수록 건강해진다는 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어르신들과, 회현동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회현동은 내 집 앞마당'이라는 정 센터장은 마을이야기에 더욱 힘이 넘쳤다. 바쁜 삶 속에서도 구김살이 전혀 없는 정 센터장과의 활기찬 식사는 몸과 마음에 힘찬 기운을 전해 주었다. 


▶오야불/가락로 63번길 14(서상동 269-1번지) 범환맨션 맞은편. 055-334-8006. 오야불 덮밥 7천 원, 오야불 소 2만 원· 중 3만 원· 대 4만 원, 빨간냉면 6천 원.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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