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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 거룩한 합장일레라무용가 김태덕과 ‘성주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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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5.25 09:19
  • 호수 274
  • 10면
  • 강보금 기자(amond@gimhaenews.co.kr)

   
▲ 김태덕 무용가가 ‘승무’를 추고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 나빌레라 / 파르나니 깍은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우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 복사꽃 고운뺨에 아롱질듯 두방울이여 세사에 시달려도 / 번뇌는 별빛이라 /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접어 / 뻗는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 합장인양 하고 / (중략)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 부분이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의 하나인 승무에 정서를 담은 시다. 승무의 동작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동작마다 감성을 담아 냈다. 때로 시를 읽으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시가 있다. 실제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시의 한 구절처럼 전통무용을 하는 김태덕 무용가를 만나러 갔다.

건강 위해 진학한 체대에서 만난 무용
박순희 선생 통해 한국춤 알게 돼
교사 발령 뒤 연일 발레·재즈 등 열정

“제자 가르치며 베풀라” 부친 충고에
10년 전 비영리단체 성주무용단 창단

한국무용 원리 과학적 탐구하는 게 꿈
학생들 문화 향상 위해 ‘춤경연대회’도

무용가 김태덕의 연습실은 창원과 김해 두 곳에 있다. 상가의 건물들이 골목을 만들어내는 김해 내동의 한 건물 지하에 그의 연습실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천장 낮은 연습실이 펼쳐져 있었다. 여느 춤 연습실과 마찬가지로 한 쪽 벽면에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맞은편 벽면에는 장구들이 포개져 있었다. 장구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덩기덕 쿵 더러러러' 자진모리, 중중모리 장단이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 연습실의 구석구석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문득 연습실 중앙에 고운 한복차림의 여인 한 명이 서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한복의 치맛자락은 연습실 바닥을 스칠 듯 말듯 하늘거렸고, 한삼이 나풀거리며 연습실 천장을 향해 뻗었다가 허공을 가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쭉 뻗은 두 팔이 향하는 곳을, 시간차를 두고 한삼이 따라 갔다. 얇은 치맛자락이 뱅글뱅글 돌더니 풍선처럼 치마가 부풀어 올랐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던 한삼 한 쌍이 연습실 바닥 깊은 곳까지 내려가 가지런히 누웠다. 조지훈의 시처럼, 고와서 서러운 느낌에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김태덕의 '승무'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기자의 방문을 알아챈 김태덕은 서글퍼 보이는 표정을 거두더니 인사를 건넸다.
 
"사실 이곳은 '승무'를 연습하기엔 천장이 너무 낮아요. 승무는 한삼을 높이 뻗거나 큰 동작들이 많기 때문에 좀 더 높고 넓게 개방된 공간이 필요한 춤이에요." 그는 옷자락을 여미면서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쪽의 소파에 몸을 묻었다.
 
상투적이지만, 어떻게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몸이 매우 약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체육학과로 갔어요. 건강을 생각해서였죠. 어찌 보면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동아대 체대에서 처음으로 무용을 접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체육학과와 무용학과가 나뉘어져 있질 않았어요."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어머니의 권유도 한 몫을 했다. 그는 원래 영문학과를 가고 싶어 했는데 몸을 생각해서 몸을 움직이는 직업을 갖는 게 좋겠다는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체구는 유난히 아담했다.
 
어쨌든 김태덕은 동아대 체대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고, 차석으로 졸업했다. 어떻게 저 작은 체구에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체력은 정신력인 것 같아요. 저는 몸을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픕니다. 잠을 자는 시간도 아까워요. 정신이 깨어 있고, 몸이 깨어 있어야 삶을 유지하는 존재감이 느껴지죠."
 
그는 대학 시절에 무용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체육학과에 다니는 동안 부산사회체육센터 YLC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그러다가 부산의 동래고무 후보자인 박순희 선생을 알게 되었다. "박순희 선생님을 우상처럼 따랐습니다. 그 분을 통해서 한국무용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죠."
 
그는 1988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창원 대산고등학교 체육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나면 교사모임에서 김해 중앙여고의 신주화 선생님, 가야고의 기보혜 선생님 그리고 함께 한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다 기억하질 못하겠네요. 모이면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재즈까지 신나게 춤을 추었지요. 원도 한도 없이 열정을 모두 쏟아 춤을 추었습니다."
 

   
▲ 연습실 한 편에 포개져 있는 장구와 북.
그러던 중 그에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 왔다. "발레, 현대무용 등 다른 춤 분야는 제게 있어서 답이 보이는 장르였지만 한국무용만큼은 물음표가 항상 따라다녔어요. 동작을 풀어가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정립하고 쉽게 설명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춤을 버리고 한국무용에만 매달렸습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한국무용을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야 하나 하는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저를 잡아준 분이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넌 교사가 운명이고 가야할 길이니, 평소에는 제자를 가르치고 춤을 추는 것으로 베풀어라'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 후 춤으로 '베푸는' 활동을 많이 했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무용교실을 2003년부터 열고 있고, 2006년에는 성주무용단을 창단했다. 모두 비영리 단체이다. 성주무용단은 무용전공자들의 모임으로, 박미 훈련장이 지도하고 있다. 어머니 무용단은 임종식 훈련장이 이끌어 가고 있다.
 
김태덕은 이 무용단을 통해서 제자들이 석사학위를 받고 무용인으로서 함께 동행 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한편, 그는 성주무용단의 대표 직 외에도 교사자생연구단체 '우리몸짓연구회'의 회장, 진해국악예술단 이사, 창원 대산고등학교 교사, 아시아 전통춤 연구회 회원, 정민교방춤 김해지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한국국악협회 김해시 7대 지부장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학교 교사 일도 무용가로서의 자리도 모두 매끄럽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무용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해서 학생들에게 쉽게 한국무용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교육의 핵심은 인성과 문화입니다. 무용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문화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해부터 학교에서 '우리 춤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김태덕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육현장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른바 '흥'을 모두가 쉽게 발산하는 원천으로 삼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무용가 답게 웃는 얼굴과 따뜻하고 강렬한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힘찬 기운이 느껴졌다.
 
김해뉴스 /강보금 기자 amond@gimhaenews.co.kr


≫ 김태덕 프로필 / 경남문화예술교육연구소 부소장, 한국무용지도자 자격증 보유, 한국무용(승무)지도자 자격증 보유,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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