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영화 '오블리비언'을 아십니까? 지구 바깥의 우주 공간에 거대한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이 인공지능은 인간을 복제해서 위험한 일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전투용 드론도 있습니다. 드론은 얼굴에 심술보가 가득하고 이죽거리는 듯하기도 해서 보기에 매우 불쾌합니다. 드론은 마지막 남은 인류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최첨단 장비가 등장하는데도 음침하고 서늘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자주 전율이 일곤 합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아십니까? 지능을 보유한 기계가 인류를 제압하고 절멸을 시도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영화 '아이로봇'을 아십니까? 로봇 '써니'는 영혼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불쌍하기도 하고 또한 무섭기도 합니다. 
 
분위기가 차분해졌습니다만, 한동안은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시합으로 설왕설래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돌을 놓던 아자 황 박사의 무표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오블리비언'에서처럼 알파고가 아자 황 박사를 조종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국을 계기로 인간의 가치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루는 학문 즉, '인문학'에 대한 교육이 한층 강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문학 교육을 통해서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키우고, 영혼을 고상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차피 인공지능의 세상은 오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의 세상은 아예 기계가 스스로 학습해서 판단하는 것 즉, '딥 러닝' 단계에까지 와 있다고 하니, '영혼을 가진 로봇' 같은 공상과학(SF) 류의 설정이 황당한 것도 아니란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다면 슬쩍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국·영·수 배울 시간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인공지능 시대의 사회적 시스템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을 깊이 탐구해 보는 게 훨씬 바람직하리란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어 공부는 얼마 안 가 무의미해 질 것 같습니다. 예컨대, 시계의 기능에 실시간 통·번역 기능이 가미된 제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미 초보적인 단계는 넘어섰다고 합니다. 인공지능 연구자인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아예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10대 이하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국·영·수를 배운다는 것은 (앞으로는 기계가 우리보다 국·영·수를 잘할 것이기 때문에) 불도저가 등장하는 시대에 열심히 삽질 잘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금 이 친구들한테 기계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도 안 가르쳐 주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도,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알파고는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닙니다. 일선 학교들은 해오던 대로 하고 있고, 교육 당국과 대학들은 취업 문제를 들어 인문학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해의 도서관들이 인문학을 안고 시민들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진영한빛도서관, 김해도서관, 칠암도서관 등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길 위의 인문학' 강좌를 열기로 했습니다. (오늘자 <김해뉴스> 2면 참조) 강좌를 보니 인문학의 기본인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이 다양하게 다루어질 예정입니다.
 
이 참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유치원 나이 때 배운 것처럼, 내 방 청소는 내가 하고,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돕고, 물건을 훔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나아가 불의 앞에서 분노하고,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리하여 어느 날 '딥 러닝'을 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좋은 점만을 따라하게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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