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 동아대 명예교수.
수렵용 공기총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산짐승 구제가 명분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날아가고 달려가는 야생 짐승을 쓰러뜨린 후의 야성을 맛보고 싶은 욕망에 있었을 것이다.
 
총을 산 이후 한동안 산, 들, 내를 헤집고 다녔다. 물오리, 산토끼, 꿩 따위를 발견했지만 명중시키지 못했다.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놈들은 총구를 조준할 틈도 주지 않고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무렵, 진례 들길로 차를 몰고 가다가 나락 밑동만 남은 겨울 논에서 무리지어 놀고 있는 까치 떼를 보게 되었다. 사냥에 굶주렸던 터라 차를 세우고 살그머니 조수석 창유리를 내렸다. 창틀에 총구를 받히니 아주 안정된 사격 자세가 나왔다. 놈들은 서로 불러대며 날갯짓하느라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방아쇠를 탁, 하며 당긴 순간 한 마리가 포르르 솟구치더니 틱, 꼬꾸라졌다. 퍼뜩 문을 열고 달려갔다. 그런데 왠 일? 정신이 혼미해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지? 놀라 달아나는 까치들과 내 손바닥 위에서 눈을 감는 어린 까치의 남은 체온, 친구들과 노래하고 날갯짓하며 놀다 졸지에 명을 다한 까치의 들리지 않는 비명소리. 내 발걸음은 진흙 펄에서 허우적거리듯 비틀거렸다. 이틀 후, 경찰서에 무상으로 총을 반납하고 말았다. 수렵의 호기심이 초래한 까치의 죽음, 그것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안타까움으로 남게 되었다.
 
모든 살해에는 이유가 있다. 때 아닌 까치 사냥에도 이유가 있듯…. 하물며 사람 사이에 있어서랴! 매일 뉴스를 채우는 끔찍한 살상과 사체 유기 사건에도 개인적, 사회적 이유가 있다. 남이 들을 때에는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가 당사자들에게는 불가피한 사연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한 자에게는 이유도 없고 변명의 기회도 갖기 어렵다. 어린 까치의 죽음처럼….
 
자연재해를 차치하면, 인류에게 가장 위험한 대량살상무기는 핵이다. 북한 핵무기로 인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이즈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2차대전 당시 미군의 원폭 투하지였던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키로 했다고 해서 말들이 많다. 일본은 선진 7개국 정상회의를 기화로, 가해자(?) 미국으로부터 위로를 받고자 대환영이다.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국가들에서는 반성 없는 일본에 재무장의 명분을 줄까, 반대 목소리가 높다.
 
개인적으로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히로시마를 처음 방문하는 오바마의 행보를 환영하고 싶다. 국적을 불문하고, 졸지에 희생된 남녀노소 민간인들에 대한 진정 어린 위로는 인류의 모든 살의를 반성하고 국가 간, 민족 간에 쌓인 불의와 불공평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것이 일본에 대해서도 진정 과거를 반성하게 하고 재무장의 이유를 폐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아가 지구상에 '핵무기 없는 평화' 실천을 촉진하는 걸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과거의 피해 당사국들이 먼저 조그마한 과오라도 인정하는 게 저 염치없는 섬나라가 큰 과오를 반성하게 하는 길이지 낳을까 하는 것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샛강 둑길이 있다. 겨울이면 곳곳에 물오리들이 모여 놀면서 먹이활동도 하는 길이다. 총을 반납해버린 뒤 그 길에서 나름의 새로운 사냥법(?)을 개발했다. 물오리들은 낯선 이가 자기들의 경계지역에 얼씬거리면 가차 없이 자리를 옮기거나 보이지 않는 데까지 날아가 버린다. 새로운 사냥이란 물오리들이 나를 피해 달아나지 않고 내가 평화롭게 곁을 지나가는 것, 내가 지구촌 동료라는 사실을 허락받는 일이다. 어쩌다 성공했을 때, 물오리들과 서로 목을 감고 쿡쿡거리며 노는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새로운 '평화 사냥법'은 총으로 날짐승을 떨어뜨리는 일보다 힘이 든다. 이성의 힘을 앞세워 남의 생명 빼앗기를 쉽게 여기는 오늘의 인간들이 다시 자연의 가족이 되고, 평화 공동체로 편입되기가 멀고도 힘든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려 하기 때문인 듯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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