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이 그대로 드러났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 한 곡이 대통령, 여야 지도부가 모처럼 함께 강조했던 협치와 소통을 뒤흔들어 놓았다.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합창단의 합창은 되지만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부르는 제창은 안 된다고 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국민대통합을 외치던 박근혜 정부가 3년 전 여야 국회의원들이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까지 채택했던 노래 한 곡조차 통합하지 못한다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금지하는 보수 측의 주장은 '노래가 김일성의 지시로 만든 5·18 영화인 <임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편곡됐다. 영화에서 임은 김일성을 뜻한다'는 것이다.
 
작사자인 소설가 황석영 씨가 곡의 가사를 쓴 것은 1981년이다. 북한의 영화는 1989~1991년 제작됐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볼 때 보수 측의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종북가요라고 몰아세우지만 북한에서는 금지곡이다. 1990년대 전대협 출신 대학생들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대학교 학생들에게 남조선 투쟁가요라고 소개하면서 가르쳐 준 적은 있다고 한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연인, 부처, 잃어버린 조국일 수도 있으며, 때론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오늘날의 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임'을 반드시 따져서 찾아내려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임과 상대방의 임이 다르면 철저히 배척하려고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 날 후손들은 임을 어떻게 해석하고 지금의 갈등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하다.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개인의 적당한 스트레스는 자아 발전에, 개발도상국의 적당한 부패는 오히려 관료의 행정절차를 신속하게 만드는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 갈등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아직까지 없다. 오히려 갈등 관리를 10% 증가시키면 국민 1인당 GDP(국내총생산)를 1.75~2.41% 정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은 국가적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한다. 갈등 비용으로 1인당 GDP 27%를 지출하면서도 갈등 관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연구 조사도 있다. 
 
2016년 UN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조사대상 157개국 중 57위다. 1인당 GDP 2천500달러인 부탄의 경우 정부가 국민총생산 대신 국민총행복 지수를 관리하고 있으며, 국민의 90% 이상이 행복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갈등 해소가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만,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나와 다름을 수용하는 태도에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침체된 미국 경제를 극복하는 데에는 뉴딜정책보다 무지개 너머 파랑새가 날고 있다는 내용의 '오버 더 레인보우'라는 노래 한 곡이 더 큰 힘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이렇게 허덕이고 있는 때 희망의 노래는커녕 문제의 노래 한 곡이 우리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찢어 놓아서야 되겠는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천년제국 로마의 멸망 원인 중에서 가장 크게 꼽은 것은 불관용인 포용력 부족이었다. 왕씨만을 고집한 고려 왕조는 475년, 이씨만을 고집한 조선은 518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반면 박씨, 석씨, 김씨의 세 부족이 연맹한 신라는 세계적 장수 국가로 992년의 역사를 자랑하지 않는가. 
 
정부가 갈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갈등관리처'를 과감하게 신설해 갈등 비용을 줄임으로써 저성장의 불황을 극복하고 경제 재도약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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