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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수묵 매화 그림에서는 무슨 향기가 피어날까”강재 장충호 서예가와 '강재서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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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6.08 09:38
  • 호수 276
  • 8면
  • 강보금 기자(amond@gimhaenews.co.kr)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한 선비가 대숲을 걷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대나무의 허리를 간지럽힌다. 대숲을 지나 얼마를 더 걸어가니 아련하게 매화꽃 향이 난다. 걸음이 걸음을 재촉한다. 선비는 하얀 매화 앞에 섰다. 마음을 다잡고 품에서 붓과 종이를 꺼내 들었다. 종이에 콕, 콕, 콕 여리고 부드러운 꽃잎을 그려 넣는다. 거친 질감으로 꽃나무의 가지를 표현했다. 완성된 수묵화 위에는 부드러운 필체의 한자가 적혔다. 아치고절(雅致高節). 화선지 위에 향긋한 매화를 그리고 서예를 하는 강재 장충호(57)의 '강재서화실'을 찾아 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먹·화선지와 인연
수묵 장인 이종덕 등 여러 대가 찾아가 사사
'모든 학문과 예술은 연관 있다' 생각
정신적·외면적 측면 모두 충족돼야 '죽은 그림' 안 돼
김해에 수묵화 붐 일으켜 뿌듯
늘 '살아 있는 그림'의 의미 천착할 것


강재서화실은 봉황대 유적지 주차장(봉황동 333) 앞에 있다. 오가면서 잘 살피지 않으면, 건축사무소와 식당이 들어선 보통의 상가처럼 보인다. 이 건축사무소 옆에 작은 서화실이 있다.
 
강재서화실은 초여름 더위 때문인지 문이 활짝 열린 채 방충망이 외부와 내부를 나누고 있었다. 방충망을 옆으로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 깊숙한 곳에서 한 사람이 앉은 채 기자를 맞았다. 깔끔한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짧은 머리, 앉아 있었지만 키가 꽤 크리라 짐작되는 풍채를 하고 있었다. '주인은 어디 가고 제자만 홀로 이 곳을 지키고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찰나, 그가 "어서오세요. 앉으시죠" 하면서 자신이 장충호라고 소개했다. 고정관념 때문이었을까? 서예와 수묵을 한다고 하면 개량한복을 입었거나 혹은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이를 만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빌딩 숲에서 숫자 자판을 두드리며 복잡한 그래프를 분석할 듯한 도회적인 모습이라니!
 

   
▲ 강재 장충호 씨가 강재서화실에서 붓을 들고 글씨를 써 내려 가고 있다.

장충호가 작업실 겸 서실로 쓰고 있는 '강재서화실'은 마치 호랑이 굴 같이 폭이 좁고 길었다. 잠시 사냥을 마친 호랑이가 굴속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장충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재의 건축사무소 자리를 서화실 겸 목공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했는데, 어쩌다 건축사무소에 세를 주었고, 작업실을 축소시켰다. 그래서인지 실내는 정리가 덜 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양 옆 벽면에는 서화실을 열 때 선물로 받은 글과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바닥에는 방석과 서예연습을 한 종이들이 간격을 두고 나란히 줄지어 누워있었다.
 
장충호는 경남 고성 출신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묵화를 처음 접했다.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외진 시골에 살았던 그는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자연을 두 눈에 담았고, 손으로 묘사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어린시절부터 손으로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싶은 욕구를 가졌습니다. 본능적으로 평생 자연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삶을 선택했는지도 모르죠. 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커가면서 그는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대가를 찾아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는 중·고등학생 때 전라도 광주로 이른바 '미술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수묵 장인 이종덕 선생의 제자로 지냈다. 이외에도 다양한 계열에 관심을 가졌다. 문인화, 서예, 서각, 전각 등을 섭렵했다. 모두 전국 각지의 대가들을 찾아다니며 배웠다고 한다. "모든 학문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움이란 끝이 없는 것이죠.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한 덕분인지, 수강생들에게 좀 더 깊이 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장충호는 20대 초반인 20여 년 전에 김해에 자리를 잡았다. 강재서화실은 약 15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강재서화실은 매주 수요일에 서예교실을 연다. 수강생들은 일반인들이 주류인데, 대부분 10여 년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이다.
 
   
▲ 서화실에 걸려 있는 붓, 서실 바닥에 놓인 벼루와 먹, 글쓰기에 집중한 장충호 씨, <채근담>의 한 구절을 적은 작품(사진 위쪽부터).
장충호는 지금은 부산 정관신도시에 땅을 구입해 그곳에 갤러리 카페와 작업실을 조성했다. 그가 지금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그 갤러리 카페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과 김해에서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는 김해도서관에서 15년, 노인복지회관에서 10여 년을 강사로 지냈다. "부끄럽지만, 지인들은 저를 두고 김해에 수묵화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강의를 시작한 뒤로 수묵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오랜 세월 김해에서 작가와 강사로 활동 한 점을 높이 사 주는 것 같습니다"
 
한편 장충호의 호 강재는 수묵 장인 이종덕 선생에게서 받은 것이다. 굳셀 강에 집 재 자를 쓴다. 그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올곧은 정신을 강조하고, 부당한 일에 분개했던 스승한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수묵은 자기수양이 중요한 장르"라면서 자신이 대가들을 찾아가 기법과 사상을 전수받은 것처럼 그 또한 많은 이들에게 올곧은 정신과 끈기의 중요성을 전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죽은 그림'을 비판했다. "수묵화는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하면서 그려야 합니다. 첫 째는 정신적 측면이고, 둘 째는 외면적 측면이죠. 예를 들어 매화를 그린다고 했을 때, 매화가 상징하는 철학적 사상을 마음속에 지니는 것이 정신적인 측면입니다. 그리고 직접 매화를 관찰하고, 느끼고서 그리는 것이 외면적인 공부입니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고 나서 그린 매화 그림이 진정 '살아있는 그림'입니다. 즉, 신과 형의 합의일체가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한편으로 대중과 함께, 일상생활 속에 녹아든 예술을 꿈꾸고 있다. 그는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면서 작가들에게 무료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카페의 테이크아웃 잔에 수묵화를 그려 손님들에게 작은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그 공간을 전시, 숙박, 차를 마실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게 수묵화와 서예는 저를 돌아보고 점검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수묵화는 자기수양의 장르라고 했는데, 다른 분들도 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해뉴스 /강보금 기자 amond@gimhaenews.co.kr


>>강재 장충호/경남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미협 회원, 경남서단, 김해미협 회원, 국서련, 금벌미술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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