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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은 나의 목숨과 같은 것이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뚜벅뚜벅…작곡가 박규동과 '수제피아노-작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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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6.15 09:07
  • 호수 277
  • 12면
  • 강보금 기자(amond@gimhaenews.co.kr)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까만 콩나물 대가리 같은 음계들이 오선지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 위로 커다란 손이 하나 나타났다. 그 손은 깃털 달린 만년필로 춤추는 음계들을 오선지에 꾹꾹 눌러 종위 위에 새겼다. 그렇게 해서 한 장의 악보가 완성되었다. 그 악보를 떠올리면서 클래식 작곡가 박규동(52)을 만나러 갔다. 

 

   
▲ 피아노를 연주하는 박규동 작곡가.

누나 따라 피아노 배우면서 재능 발견
 우연한 기회 목사 권유로 작곡세계 입문

 학생 지도 병행하며 창작활동 꾸준히 매진
 지난해 경남마에스트리 오페라단장 맡아
‘헨젤과그레텔' 공연 지휘해 뜨거운 반응

‘정신의 삼각형’ 맨 꼭대기 예술가 되고파
 나은 미래 위해 움직여야 하는 의식 갖고
 대중에게 이해 쉬운 곡 들려주고 싶어

박규동의 작업실은 구산동 이진캐스빌 아파트 인근 김해대로 1962번지에 있다. 앞에서 말한 꿈은 박규동을 만나기 전날 밤에 꾼 것이다. 그래서 평소 즐겨 듣던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튼 채로 차를 몰았다. 빠른 템포의 피아노 소리가 박규동의 작업실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상가 건물 옆으로 난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문이 활짝 열린 집이 하나 나타났다. 문 안쪽을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흰색의 그랜드피아노가 문 앞에 떡 하니 놓여있었다. '잘 찾아 왔구나.' 작업실 안으로 고개를 빼꼼 밀어 넣었더니 박규동이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 박규동 작곡가가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수제피아노-작곡실'은 보통 가정집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었다. 거실 안쪽에는 두 칸으로 된 작은 방이 나란히 양 옆으로 붙어 있었다.
 
자꾸만 거실에 우뚝 서 있는 그랜드피아노에 눈길이 갔다. 뚜껑이 닫힌 그랜드 피아노는 마치 백조가 고개를 날갯죽지에 파묻고 잠을 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기자가 그랜드피아노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걸 눈치 챘던지, 박규동은 음색을 한 번 들어 보겠냐면서 그랜드피아노의 뚜껑을 열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박규동의 두 손은 어느새 건반 위를 가볍게 뛰어 다녔다. 높은 음계에서는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났고, 낮은 음계에서는 무겁고 강한 소리가 났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까지 차례로 건반을 빠르게 두드리자 그에 따라 감정이 고조돼 갔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을 때, 그의 표정도 음색에 따라 변화했다. 마치 연극에 몰입한 배우 같았다. 단 몇 초의 연주였는데도 눈썹이 들썩이거나, 미소를 짓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등 수십 가지 표정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환영곡입니다. 이렇게 찾아왔는데 환영곡이 없으면 섭섭하겠죠? 저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때면 환영곡 삼아 제가 작곡한 곡을 들려드립니다. 이건 누군가를 위해 제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죠. 저는 그래서 난해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곡을 작곡하려 애씁니다. 작곡 철학인 셈이죠."
 
   
▲ 작곡실에 있는 피아노·바이올린.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왔다. 어떻게 해서 작곡을 시작하게 됐지요?
 
"처음엔 누나를 따라서 피아노 학원엘 다녔어요. 점차 누나보다 실력이 좋아졌어요. 그때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죠. 어느 날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오는데 목사님 한 분이 학원 가방을 보더니 말을 걸어왔어요. 그 분은 피아노를 얼마나 쳤는지, 레슨은 받는지 하는 것들을 물어보시더니 작곡을 공부해 보라고 권했어요. 그 때부터 작곡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박규동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1996년에는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음악이론을 배우기도 했다. 1998년에 IMF 사태가 터졌고, 경제적 문제 때문에 귀국을 해야 했지만, 작곡을 놓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작곡으로 먹고 산다는 생각밖에는 못했어요. 작곡은 제 인생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죠.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생업으로 작곡을 가르치는 한편으로 작곡에 대한 연마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2000년부터 매년 큰 음악축제, 연주회, 작곡가협회 등에 곡을 발표하고 앨범을 냈다.
 
그렇다면 그에게 '창작의 고통'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목숨처럼 좋아서 작곡을 한다는 그에게도 창작의 고통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일까.
 
   
▲ 박 작곡가의 노트.
"어떤 분들은 저를 두고 창작의 샘이 마르질 않는다면서 천재가 아니냐고 하십니다. 하지만 오해입니다. 저는 천재가 아니에요. 언제나 느슨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할 뿐이죠."
 
'노력파' 임을 강조하는 박규동은 어느 순간 '왜 작곡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젖어들었다. 그러다 러시아 태생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  한테서 답을 찾았다. 칸딘스키는 '정신의 삼각형'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정신의 삼각형 제일 꼭대기에 예술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박규동은 예술가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계속 움직이는 존재이고, 그래서 자신은 작곡에 매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박규동은 '클래식은 어려운 것'이란 대중의 편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남마에스트리 오페라단의 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2일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오페라 '헨젤과그레텔' 공연(김해뉴스 5월 25일자 11면 보도)에서는 재미있는 해설을 덧붙여 인기를 끌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관객들이 오페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편곡에 신경을 썼고,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워서 가슴 뿌듯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 작곡가로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욕심이 왜 없을까. 그는 말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진정한 나만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 나만의 색깔과 질감으로 이루어진 음악. 계속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그런 색깔과 질감이 나오겠지. 작곡은 나의 목숨 같은 것이니 언젠가는…."

김해뉴스 /강보금 기자 amond@gimhaenews.co.kr


≫박규동/부산 출생. 2010~2011년 기장군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 2000년~ 동의대 예술디자인대학 음악학과 외래교수, 2009년~ 부산경상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2013년 김해예총 사무국장, 현재 부산작곡가협회 사무국장, 부산음악교육연구회 사무국장, 한국작곡가회 이사, 2013년 김해시장 표창, 2014년 부산음악상, 부산진구청 '부산진구의 노래' 선정 심사위원, 경남도민체육대회 개·폐회식 주관방송사 선정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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