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시리아의 앗슈르바니팔 왕은 니네베에 인류 최초의 체계적인 도서관을 세웠다. 장서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목록을 만든 도서관이었다. 왕은 다른 나라로 장사를 떠나는 상인들에게 "나의 도서관에 없는 점토판(책)을 보면 반드시 구입해 오라"고 명령했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책을 지극히 사랑했던 왕이었다. 왕의 도서관, 그 안에서 왕이 가장 아꼈던 점토판이 꽂힌 서가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그들의 서재에는 무슨 책들이 꽂혀 있고, 어떤 책을 가슴에 품었을까'라는 호기심을 가진 작가가 있다. 스토리가 있는 삶을 만나고 싶어 방송작가의 길을 걸어온 한정원 씨가 우리시대 지식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깃든 서재의 풍경을 '지식인의 서재'라는 한 권의 책에 담아 냈다.
 
법학자 조국, 자연과학자 최재천, 한국 최초의 북디자이너 정병규, 사진작가 배병우 등 각기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 15명. 그들은 한결같이 오늘날의 자신을 세운 것이 책이라고 말한다.
 
인터넷 안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와 지식이 넘쳐 난다. 굳이 책을 사서 읽지 않아도 쉽게 원하는 내용의 지식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최적화된 검색어로 찾아낸 그 단편적인 지식이 어디에서 온 것이며, 무엇과 연결되어 어떻게 쓰이는지 짐작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책은 여전히 새로운 세상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가장 유익한 매체이다. 형태가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간에 말이다.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전문가들에게 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요한 책을 한 권 한 권 읽고 곁에 두다 보면 점점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에겐 서재라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저자는 그 서재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의 서재는 멋지고 화려한 물리적인 의미의 서재가 아니다. 그들의 청춘과 인생과 생각이 녹아 있는 하나의 삶의 공간이며 사유의 세계다. 그들이 들려 주는 독서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분의 지적 욕구를 깨워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 씨의 서재를 들여다 보자. 어릴 때부터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읽었다는 배 씨의 별명은 '북 콜렉터'이다. 그의 집에는 5천 권 정도의 책이 곳곳에 놓여 있다. 침실, 복도, 주방, 아이들 방 심지어 화장실 겸 샤워실에도 서가가 있다. 온 집안이 서재인 셈이다. 주방의 서가에는 요리책이 있다. 한 곳을 정해 놓고 '여기가 서재'라는 식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골라 편한 곳에서 바로 읽는다. 배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책을 보기 위해 서재를 만든 게 아니에요. 이 안에서 즐겁게 놀고 맛있게 먹으려는 거지. 나는 자연과 노는 게 직업이라서 노는 게 싫증나면 책을 봐요. 나는 학자가 아니라서 책 보는 게 너무 즐거워."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책을 정리해 두는 방식도, 보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잘 정리된 서재가 있는가 하면, 손닿는 곳마다 책을 두는 형태도 있다. 책을 보다가 중요한 페이지마다 책갈피를 꽂아두는 이도, 온통 밑줄을 그어 두는 이도 있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책을 사랑하고, 그 책에서 지식을 구해 지혜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서재를 소개할 때마다 그가 추천하는 도서 목록과 내용도 함께 실었다. 저자가 이 책을 기획했던 이유,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한 지식인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책의 목록을 빼내어 독자들에게 공개하는 귀한 '권장도서목록'이다. 끊임없이 읽혀지고 있는, 주인을 잘 만나 행복한 책들이다.
 
'지식인의 서재'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는 지금 어떤 책으로 나를 만들어가는가'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도 그랬단다.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설 때마다 미치게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고.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행성:B잎새/431p/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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