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식 단장이 소머리수육 한 점을 들어 송기철 고문 입에 넣어주고 있다.

 큼지막한 도자기 그릇에 두껍게 썬 수육
 맑은 육수에 몸 담근 채 동동주와 ‘흥얼’
 양파·와사비·마늘 얹은 푸짐한 장 눈길

 육개장 같은 소고기해장국에 땀 뻘뻘
 인공조미료 사용 않고 고향서 야채 공수

 황새 ‘봉순이’에 반해 자연 지킴이 변신
“밀양신공항 맞서 한림 수호에 헌신” 다짐


한림면은 상대적으로 개발 속도가 더딘 지역이다. 고층아파트나 대형 상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키 큰 산봉우리들 사이에 논들이 누워 있어서 운치가 있다. 한림을 적시며 흐르는 낙동강은 노을이 질 때면 별을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거린다. 화포천에서는 오리 한 쌍이 마실을 즐기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림은 상대적으로 더 큰 마음의 풍요를 선사하는 곳이다.
 
한림의 자연을 자연답게 지키려는 자생 환경단체 '에코한림'의 정진식(54) 단장, 송기철(61) 고문 등과 식사를 같이 했다. 이들이 안내한 곳은  한림면 장방리에 위치한 '경주본가해장국'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투박한 질감의 목재식탁과 의자가 보였다. 벽면 곳곳에는 동양화들이 걸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향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와서, 정서적으로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나그네들이 모여드는 '주막'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경주본가해장국 전경, 식당 내부(사진 위로부터).
이 식당의 소고기해장국과 소머리국밥은 '에코한림' 단원들의 영양식이라고 했다. 송 고문은 무언가 뿌듯한 일을 하나 해결하고 났을 때 단원들끼리 구수한 소머리수육과 시원한 동동주를 즐기며 소소한 기쁨을 나눈다고 했다.
 
정 단장 등은 먼저 소머리 수육을 시켰다. 동동주도 함께 주문했다. 고기와 술은 떼려야 떼기 힘든 '짝꿍' 같은 것인가? 정 단장과 송 고문의 사이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나이는 다르지만 친한 동료이자 벗이다. 두 사람 다 한림에서 나고 자랐는데, 의용소방대 생활을 하면서 의기투합했고 정을 굳건히 쌓았다. 두 사람은 한림의 나은 미래를 위해 한림번영회 활동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송 고문은 한림번영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2014년에 발족한 '에코한림'도 한림번영회가 모태가 됐다.
 
'에코한림'은 화포천의 새 가족인 황새 봉순이가 물어다 준 선물이기도 하다. 정 단장은 봉순이가 화포천에 처음 날아들던 날을 회상했다. "모두가 땀을 흘려서 죽은 화포천을 복원해 놓았더니 황새 한 마리가 날아옵디다. 그게 봉순이입니다. 일본 기자들이 화포천 너머에 텐트를 친 채 몇 달 동안 봉순이를 지켜보았고, 일본 도요오카 시 시장이 화포천을 방문하기도 했지요. 한림의 아름다운 자연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는 한림의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에코한림'에는 50여 명의 한림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단원들은 모두 새마을부녀회, 의용소방대, 방범대 등 한림의 여러 단체들에서도 일하고 있다. 송 고문은 "'에코한림'은 한림의 대표적인 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웃었다.
 
▲ 촉촉하고 고소한 소머리수육.
그때 등 뒤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소머리 수육 냄새였다. 큼지막한 도자기 그릇에 두껍게 썬 수육이 담겨 있었다. 고추튀김, 배추김치, 깍두기, 겉절이와 야채도 밑반찬으로 나왔다.
 
수육은 맑은 육수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동동주는 호리병에 담겨져 나왔는데, 흥을 돋워주었다.
 
수육을 찍어먹는 장에는 양파, 와사비, 다진 마늘 등이 푸짐하게 얹혀 있었다. 이것들을 휘휘 저은 뒤 수육을 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그저 그만이었다. 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정 단장은 수육을 한 점 들고 나더니 "수육은 장에 흠뻑 적셔서 먹어도 맛있고, 겉절이를 얹어서 먹어도 맛있다. 손이 하나면 박수가 안 되는데, 이처럼 고소함과 짭짤함이 어우러져야 제맛이 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수육에는 따로 간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가게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 '인공조미료 없고 나트륨을 줄인 건강한 음식'이라 적혀 있었다. 이 식당에서는 모든 재료가 국산이라고 했다. 소고기도 생고기를 쓴다고 했다. 김유경(50·여) 사장은 "손님들이 우리 음식을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소금·인공조미료는 일체 안 쓰고, 장도 직접 만든다. 소금도 직접 만든 죽염"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 땡초, 부추 등의 각종 야채와 쌀은 경북 경주의 고향집에서 가져온다고 덧붙였다. 수육의 누린내를 잡는 비결에 대해서는 "된장과 생강이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 식당 벽에 걸린 장식품.
식당 내부 분위기도 직접 연출한 것이다. 목재로 된 식탁과 의자를 김 사장의 남편이 만들었다고 한다. 식당 내부를 꾸미는 데에만 3개월이 넘게 걸렸다.
 
송 고문은 수육 한 점을 장에 찍어 입에 넣더니 사발에 담긴 하얀 동동주를 들이켰다. 송 고문은 시원한 한숨을 내뱉으며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린다"며 미소 지었다.
 
'에코한림' 단원들은 늘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산업폐기물, 오물 등이 불법 매립되거나 방류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폐 엔진 해체공장에서 기름이 유출돼 단원들이 출동하기도 했다. 한 공단에서 주물 찌꺼기를 매립하는 일이 발생해 현장에 달려가기도 했다. 단원들이 1년 동안 다룬 사안이 100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야기가 무르익는 사이에도 젓가락질은 쉴 틈이 없었다. 수육이 금세 동이 났다. 이어서 소고기해장국이 나왔다. 겉보기에는 육개장과 같았다. 함께 나온 밥 한 공기를 풀어 크게 한 입 먹었다. 살코기의 식감도 좋았지만 비계의 고소함도 일품이었다.
 
송 고문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해장국을 비웠다. 그는 "맛있고 든든한 식사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일주일치 뛰어다닐 기운을 빵빵하게 채운 것 같다"며 배를 두드렸다.
 
식당에서 나오니 사위가 어두웠다. 까만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정 단장과 송 고문의 활동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밀양신공항'이라는 커다란 벽을 만났다. 이들은 '밀양신공항'이 한림의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교란할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한림의 자연을 계속 지켜나가려 합니다. '밀양신공항'은 안 됩니다. 반대합니다."

김해뉴스 /어태희 기자 tto@gimhaenews.co.kr


▶경주본가해장국/한림면 한림로 442번길(장방리 1313-94). 055-343-9922. 소고기해장국 7천 원, 소머리국밥 8천 원, 소머리수육 3만~3만 5천 원, 촌국수 5천 원, 두부김치 7천 원, 해물파전 7천 원, 찹쌀동동주 6천 원, 시락국밥 5천 원, 김치찌개 6천 원, 두루치기 2만~2만 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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