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했던 백인 여자, 중동 남자 부부
 먹을거리 둘러싸고 갈등 빚다 결국 헤어져
 음식 결핍이 남자에게는 삶 전체의 결핍

 통도사 산책하다 발견한 뜻밖의 단풍콩잎
 재미삼아 몽땅 구매 집에서 삭혀 먹기로

‘TV 먹방’ 영향 지역 특색 의미 사라져
 매생이·붕어조림 전국 어디서나 즐겨 먹어
 입맛 변화 어쩔 수 없지만 ‘쓰레기 음식’만은

배경은 독일의 소도시다. 혼자된 백인 중년 부인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중동인 불법이민자 청년을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둘은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주변의 눈길은 곱지 않다. 사정을 모르는 이웃 사람들은 두 사람을 각각 성과 합법적 정착을 동기로 만난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지만(짐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자에 대한 이웃 여자들의 비난이 심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와 남자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다. 그렇게 한동안 평범하고 평탄한 삶을 이어간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 어느덧 남자도 나이가 들었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부산국제영화제 초기 남포동 시절에 본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중이다. 제목도 감독도 배우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줄거리조차 군데군데 흐릿하다.
 
알고 있겠지만 삶도 영화도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순탄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기는 힘들다. 변곡점이 있게 마련이다. 소설과 희곡에서 갈등이라고 부르는 지점이다. 마침내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 속 남녀의 경우 음식이 원인이다. 남자는 고향의 음식을 먹고 싶다. 영화 속 남자는 긴 타향살이에 지쳤다. 결핍은 환상을 만들기도 한다. 남자는 어린 시절의 음식에 집착한다. 그런데 여자는 아니다. 이해 할 수는 있지만 입과 몸은 아니다. 남자가 원하는 요리를 해줄 수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다. 먹어보기는커녕 보지도 못한 음식이다. 게다가 여자도 차츰 나이를 먹으며 이젠 남자가 좋아하는 그런 음식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남자가 재료를 사와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보지만 아무래도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아니다. 화가 난다. 음식을 못 먹어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한번 분노의 방아쇠가 당겨졌으니 삶 전체가 다 짜증나기 시작한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이젠 남자가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게 보기 싫다. 그가 먹는 음식의 냄새도 싫고 그런 음식을 끈덕지게 찾아대는 남자도 싫다. 이제 절정이다. 여자는 좁은 아파트에서 풍겨 나오는 이상한 음식 냄새를 맡으며 이국의 남자와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음식의 차이로 시작해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침내 파국을 맞는다(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할 것은 내용이 전혀 엉뚱하게 각색 됐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 기억을 나도 믿을 수 없다).
 
오래 전 고향을 떠난 남자가 원한 것은 <미식 예찬>의 저자 브리야 사바랭의 허세 가득한 음식도, <바베트의 만찬>에 나오는 바베트의 호화스런 왕실 요리도 아니다. 그저 어릴 때 먹었던 소박한 한 끼의 음식이었다. 여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얼핏 작아 보이는 음식의 결핍이 남자에겐 삶 전체의 결핍이었던 것이다.
 
지역마다 먹을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해 어릴 때 맛보았던 음식에 관해서는 저마다 나름 탄탄한 서사를 가지고 그리하여 몇 시간이고 혼자서도 어릴 때 먹었던 음식에 대해 떠들 수 있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이 '어떤 영화'는 쉽게 공감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몇 년 째 주말이면 통도사를 걷는다. 통도사 밖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근처 암자를 돌아오면 2시간 정도의 적당한 산책길이 된다. 매번 같은 길이지만 갈 때마다 조금씩 풍경이 변해서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재미있고 심지어 때론 시간의 변화(계절의 변화가 아니다)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걷다보면 통도사의 넓은 경내에는 산나물을 뜯어 파는 할머니들이 있다. 봄에 죽순을 팔던 할머니가 지난해 가을엔 단풍콩잎을 가지고 나왔다. 마트에서 가끔 사 먹으면서도 늘 '이게 아닌데' 했는데 이건 콩잎이 제대로다. 할머니 말씀도 그렇다.
 
"요즘 사람들이 모르고 아무거나 막 먹는데 아니지요. 수입산 콩 이파리 그런 건 먹는 게 아니지요" 말씀처럼 할머니의 콩잎은 작고 예쁘다. 책갈피에 꽂아 두고 보고 싶을 정도다. 조선 메주콩 이파리다.
 
"근데 어떻게 삭히면 됩니까? 담글 줄 몰라서"하며 콩잎을 못 먹는 아내 들으라고 슬쩍 물었다. 사실 콩잎을 먹는 지역은 많지 않다. 경상도에서도 일부 지역이다. 낙동강 동쪽의 울산 사람들은 먹지만 진주만 가도 먹지 않는다. 음식의 문화권은 생각보다 좁다. 지난 봄 구례 오일장에 갔다가 전라도 땅이니 있겠지 싶어서 보리순(싹)을 찾으니 광주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왜냐니까 구례 사람들은 보리순 된장국을 먹지 않는단다. 생각해보니 보리순 된장국은 광주에서 먹었다.
 
"물에 넣고 무거운 돌 같은 걸로 며칠 꾹 눌러 놓으면 지가 지질로 삭지요. 콩 이파리 이거 담기 쉬워요"
 
"다른 건 안 넣어도 되나요? 소금 같은 거"
 
"날이 좀 안 좋다 싶으면 소금 쪼매 넣어야지 안 그러면 상하지요"
 
"날씨가 안 좋다니 어떤 때 말입니까?"
 
"날씨 보고 상하겠다 싶으면 아니면 그냥 물에 담가 놓으면 되고"
 
"보고 상할 것 같다 싶으면 소금 조금 넣고, 근데 며칠이나 두면 삭나요?"
 
"딱 며칠이 있나요 그냥 보고 됐다 싶을 때 꺼내 씻으면 되지"
 
"그러니까 그게 대충 며칠쯤이죠? 소금은 얼마나 넣고요?"
 
아무튼 이렇게 재미삼아 산중 콩잎 문답을 해가며 할머니가 뜯어온 콩잎을 다 샀다. 욕심을 부린 탓에 삭히고 보니 너무 많아서 서울 사는 동생에게도 좀 보냈다. 당연히 좋아했다. 그쪽은 부부 모두 단풍콩잎 문화권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떤 음식은 어느 지역 음식이다 하는 것이 많이 없어졌다. 텔레비전만 틀면 먹방이고 여행도 볼거리 중심이 아니라 먹을거리가 먼저다. 그러다 보니 서울 사람들도 밀면을 좋아하고 경상도 사람들도 전라도 남쪽 바닷가 일부 지역 사람들이나 먹던 매생이를 즐겨 먹는다. 물론 본토에서 조차 먹기 힘들어진 음식도 있다. 아마 붕어조림은 낙동강을 끼고 있는 김해 지역의 특별한 음식이었을 거다(이야기기가 좀 옆길로 샌다. 짧게 하겠다. 붕어조림 최고의 '맛 철'은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붕어는 살이 오르고 함께 넣어야 할 무도 이때 단맛이 든다. 손바닥 보다 더 큰 붕어를 오래 고와 한 솥 식혀두면 며칠을 먹었다. 불 위의 긴 시간에 붕어의 살과 무는 물기를 잃으며 졸아들어 약간 쫀득해진다. 등뼈에 지느러미까지 함께 뭉그러져 솥에 들어 있는 무엇 하나 버릴 게 없어진다. 심지어 어쩌다 들어간 비늘도 사각거리며 맛을 더했다. 붕어조림은 데워 먹는 게 아니다. 차갑게 먹으면 더 맛있다. 비리지 않아서 밑반찬처럼 두고두고 먹었다). 하.
 
앞으로 우리 아이들 입에, 그리하여 아이들의 영혼에, 새겨지는 음식은 우리 세대와 조금 다를 것이다. 어쩌면 피자가 어쩌면 베트남 쌀국수가 그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엄마의 손맛이 아니라 식당 주방의 손맛을 기억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차피 어릴 때 새겨진 맛의 우위는 없으니 크게 아쉬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일부 텔레비전 먹방에 나오는 쓰레기 같은 음식들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은 가지고 있다.
 
지난해 담근 단풍콩잎이 다 떨어졌다. 통도사를 걸으며 다시 가을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아참. 예전엔 '단풍콩잎'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냥 '콩 이파리 담은 거'라고 불렀다. 혹시 낯설까 싶어 단풍콩잎이라 굳이 썼다. 물론 쓰는 내내 영 어색했다. 그래서 제목이나마 저렇게 바꿔 달았다.

 

 

>>윤봉한/시인. 김해 윤봉한치과의원 원장.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붉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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