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과 배신, 유감, 중립적 결정 수용, 안도의 한숨.'
 
지난달 21일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측이 최적 신공항 후보지는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용역결과를 발표한 직후 대구·밀양권, 부산권, 정치권, 청와대의 대체적인 표정들이다.
 
5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박근혜 대권주자는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면 우리나라가 예측 가능한 국가가 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신공항 갈등은 대표적인 '죄수의 딜레마’ 현상에 해당한다. 1950년대 미국 랜드연구소의 두 연구원이 처음 제안한 이후 프린스턴대학교의 수학자 앨버트 터커 교수가 정형화한 이론이다.
 
두 명의 공범자가 체포돼 용의자 신분으로 각각 독방에 수감된다. 수사관은 명확한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용의자들에게 동일한 제안으로 회유를 한다. 만약 범죄사실을 한 공범자만 자백하면 그는 석방되고 나머지 공범자는 징역 3년을 선고받게 된다. 두 공범자가 범죄 사실을 동시에 자백하면 징역 2년을, 서로 신뢰하고 묵비권을 행사하면 징역 1년을 각각 선고받게 된다. 결국 두 공범자는 상대 공범자가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란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탓에 모두 자백을 하고, 각각 징역 2년을 선고받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는 두 당사자가 협력하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을 불신하고 자신의 이익만 끝까지 고집하면 차선의 선택으로 서로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이다. 물론 김해공항 확장이 국가 전체적으로는 최선이 될 수도 있지만, 가덕도와 밀양을 주장하는 측 입장에서는 최선책이 되지는 못한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나쁜 결과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두 공범자가 전적으로 지게 되지만, 신공항 후보지 결정과 같은 현실에서는 당사자뿐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책임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번 신공항 후보지 선정에서 파리공항공단 측은 "법적·정치적 후폭풍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스스로 밝힘으로써 경제적 요인 외에 정치적 판단도 상당 부분 개입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과거 대선을 치를 때마다 적자운영 공항이 하나씩 생겨났다. 노태우 정부의 청주공항, 김영삼 정부의 양양공항, 김대중 정부의 울진·무안공항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역시 다르지 않아 대선공약으로 영남권 신공항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셀로드는 저서 <협력의 진화>에서 '이기적인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도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발적으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기적 사회에서 개인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경우 초기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협력적인 전략을 선택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협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협력을 위해 가장 요구되는 덕목을 '신뢰'라고 보고 이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했다. 연구에 의하면 한국 사회는 신뢰도가 가족, 친족 등 특수집단 내에서는 매우 높은 반면 여타 영역에서는 매우 낮다고 한다. 우리 사회 신뢰 기준의 이중성이 공과 사를 모호하게 만들고 개인 및 집단 간에 상호 신뢰보다는 의심이 우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해공항은 소음 문제로 24시간 공항이 될 수 없다. 최근 착공 중인 에코델타시티까지 들어서면 소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김해공항 확장이 신공항이라면서 대선 공약 파기가 결코 아니라고 하는 청와대의 발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게임 이론에서 문제가 됐던 두 공범자 간의 불신에 앞서 현실의 아웃사이더 공범자인 정부·정치권과 국민 간의 불신이 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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