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김해박물관은 현대건축의 거장 김수근과 부산 출신 건축가 장세양의 미적감각이 어우러진 절묘하고 고마운 공간이다.

현대 건축 거장 김수근 공간 건축
부산출신 장세양 신관과 어우러져
가야 우수한 철기문화·토기 상징

우리 김해는 전국에서 11개뿐인 지역 국립박물관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광역지자체를 제외하고 전국 시·군 중 4위의 경제력과 50만 주민의 제법 큰 도시가 되었지만, 1991년 건립계획 당시는 물론 1998년 7월 29일 개관 때까지도 시의 규모로만 본다면 국립박물관이란 문화적 혜택을 누릴만한 위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신라의 국립경주박물관과 백제의 국립공주부여박물관이 있으니까, 가야의 옛 서울에도 국립박물관이 있어야겠다는 역사적 전통이 설립의 당위성을 보장해 주었던 것 같고, 그래서 먼저 있었던 국립진주박물관에서 가야전문박물관의 이름표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웃 부산광역시에도 없는 국립박물관을 가지고 있는 김해시민은 수로왕 이래 조상님들 덕을 단단히 보고 있는 셈이지만, 생활편의지수는 전국 24위를 기록하면서 창조지역지수는 5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는 오늘의 뉴스는 지역문화 창조의 용광로 국립김해박물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지난주에 올랐던 구지봉에서 국립김해박물관을 내려다보면서 느끼는 자랑스러움의 끝자락에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 국립김해박물관본관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개관 후 12년 동안 심고 가꿔왔던 꽃과 유실수들이 철따라 저마다의 얼굴을 내민다. 산수유와 매화가 봄의 창문을 열고,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벚꽃은 맑은 신록의 계절을 안내하며, 매미소리에 묻힌 짙푸른 녹음 뒤에 단풍나무와 모과는 가을을 단장한다. 오늘 내려가는 길에는 아래쪽에 심어진 국화 몇 그루터기가 겨울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구지봉에서 흘러 내렸을 법한 여러 종류의 토기 파편들이 발길에 채이며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군데군데 녹이 슨 것 같은 철판 색조의 네모난 본관 건물이 진회색 벽돌의 둥근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박물관홈페이지는 철광석과 숯을 이미지화한 검은색 벽돌로 철의 왕국 가야를 표현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철판의 색조는 철의 왕국을, 진회색 벽돌은 가야토기를 각각 상징한다는 게 제멋대로 해오던 필자의 안내멘트였다. 이제부터라도 박물관 측의 공식설명에 조금은 충실해야겠다. 더군다나 현대 건축의 대명사 김수근의 공간(空間)사옥에 유리 상자 같은 신사옥을 지어 연결했던 부산 출신 건축가 장세양(1947~1996)의 유작이라 하니 차분하고 꼼꼼하게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관 당시의 출구가 10주년 기념 리모델링을 통해 입구로 바뀌었다. 원래의 출구가 입구로, 입구가 출구로 바뀌었으니, 동선 역시 정반대로 되었다.
 
처음에는 높은 상징탑 쪽 슬로프를 따라 올라가 2층 전시실을 보고 1층으로 내려왔으나, 이젠 거꾸로 가게 되었다. 불편해졌다는 이들도 있지만, 예전에는 주차장 쪽 광장에서 출구가 곧바로 보이던 탓에 이리로 들어가려는 입장객들이 적지 않았고,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입구로 안내해야 했던 번거로움도 해결해야 했고, 예전 입구 쪽에 사회교육관 가야누리가 증축되어 본관을 보고 나온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야누리로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데 입장료가 없단다. 지난해 한국박물관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받지 않던 것이었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에도 계속하는 것이란다. 기대에 없던 공짜라 기분이 좋아질 법도 하지만, 입장료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물관 운영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 입장료를 내고 그렇지 않고에 따라 전시유물과 설명을 주목하는 정도는 많은 차이가 있다.
 
▲ 차륜형토기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을 테지만, 입장료를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박물관에 머무는 시간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입장료 면제로 입장자가 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유물이 전하는 가야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야 말로 창조도시 김해의 미래와 문화대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안내데스크에서 박물관 소개 리플렛을 받아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7천 년 전의 멧돼지와 통나무배가 우리를 맞는다.
 
근년에 김해박물관이 발굴했던 창녕 비봉리패총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박물관의 새내기들이란다. 경남의
▲ 새달린 주술철기
신석기사람이 사냥했던 멧돼지는 토기에 그림으로 새겨졌고, 뻘에서 건져 올린 통나무배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같이 전시되어 있는 신석기유물에는 장유면 수가리와 강서구 범방 패총의 출토품처럼 '최초의 김해인'을 보여주는 것들도 있다.
 
수로왕의 등장을 기원했던 아홉 촌장의 고인돌과 청동기의 마을을 지나면, 해상교역으로 열리는 가야의 여명이 '국제무역항' 사천의 늑도유적으로 시작된다.

창원 다호리유적에서 철기를 바탕으로 나라 만들기를 시작했던 가야 여러 나라의 발전이 그려지고, 김해의 금관가야(가락국), 함안의 아라가야(아라국), 고령의 대가야(가라국), 창녕의 비화가야(비사벌국), 고성의 소가야(고자국) 등의 서로 다른 특색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 나라들마다 조금씩 다른 토기패션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면, 김해박물관은 물론 이미 가야사를 즐기기 시작한 수준이라 보아 좋을 것이다. 박물관 주최 어린이 문화재그리기 입상작들을 보면서 계단을 돌아 오르는데, 가야의 갑옷전사와 안장 얹은 말 앞에서 아이나 친구와 사진 찍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2층 전시실에 오르면 가야의 창고와 토기생산, 농사와 요리, 문자와 기호 등을 소재로 가야인의 생활을 들여다보게 하는데, 그 끝에 마련된 일명 '주얼리숍(보석가게?)'에서는 금은 보다 옥구슬을 좋아했다는 가
▲ 청동기시대 홍도
야인의 멋부림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철로 만든 무기, 갑옷과 투구들은 철의 왕국 가야의 위용과 함께, 고구려 백제 신라를 상대로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가야기마전사의 모습을 그려준다. 나란히 진열된 3개의 철제갑옷 중에 왼쪽 것은 반드시 뒤로 돌아가 찬찬히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 갑옷의 뒷목에서 등을 마주대고 있는 두 마리의 예쁜 오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박물관이 로고로 사용하는 황금빛 오리는 여기서 디자인 된 것이다. 아무리 살벌한 전쟁도구라도 장식을 즐기던 가야인의 여유로 생각할 수도 있고, 천신의 메신저인 '영혼의 새'에게 의지해 전장의 위험을 피해보려던 믿음의 흔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 장면이다.

가야의 대외교류를 전시하는 공간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와 '메이드 인 제팬'이 즐비하고, 북방유목민 계통의 유물도 있다. 금관가야의 왕릉인 대성동고분군과 양동리고분군에서 나온 중국제 청동거울과 청동솥, 일본제 폭넓은 청동창(廣形銅?)과 석제장신구 등이 있고, 귀 모양 손잡이 2개가 달린 청동솥은 유목민
▲ 주얼리숍
들의 심볼로, 가야문화 속에 흐르는 기마민족의 갈래를 짐작케 하는 유물이다. 북쪽의 대가야문화권에서는 오키나와 조개로 만든 국자, 일본제로 생각되는 챙 달린 투구와 삼각판 갑옷, 서역의 로만글래스 등이 전시되어, 479년에 대가야왕이 무려 2800㎞의 여정을 거쳐 중국 양자강 하구의 남제(南齊)까지 사신보내던 저력을 증명해 주고 있다.
 
숫돌, 물고기 모양 장식, 향통 같은 여러 물건이 주렁주렁 매달린 은제 허리띠가 보이면 "아, 국립김해박물관의 가야사여행도 종착역에 도달했구나" 고 생각하면 된다. 6세기 이후의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신라물품을 모아 놓은 코너는 신라에 통합되 가던 가야 여러 나라의 슬픈 운명을 전하고 있다.

해상왕국 가야의 면모를 되새겨 주면서, 당시에는 죽은 자를 저 세상으로 운반해 주던 배 모양 토기의 진행방향을 따라 발길을 옮기면, 국립김해박물관의 탐험도 우선 일단락되지만, 박물관이란 한번 보고 마는 곳도 아니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전시되는 모든 유물들은 과거에서 온 '타임캡슐'이다. 저마다 헤아릴 수없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터이지만, 보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자기록이 없는 고고학 자료를 '침묵하는 증거' 라 하는 모양이다. 말을 걸고 얘기시키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이다. 연인과의 데이트로, 결혼해서는 아이들과, 다른 고장과 나라 친구들 안내로도 좋다. 축제라 들르고, 동호회로 기웃거리며, 더운 여름 시원한 냉방이 아쉬워 들려도 좋다. 혼자도 좋겠지만, 적당한 이야기꾼과 함께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은 더욱 좋다.
 그래서 박물관에서는 시간제 투어도 준비하고, 자원봉사자의 안내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이웃집 아저씨나 아줌마, 삼촌이나 조카가 안내하는 박물관 여행이 지겨울 리 없다. 전시실 문을 나서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기념품코너에 이른다. 예전에 비해 많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김해에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여행은 구입한 기념품으로 되새김되고, 관광홍보는 친구의 기념품을 통해서도 전파되기 때문이다. 박물관 문을 나서는데 문화의 거리에 쏟아지는 겨울 햇빛이 아직도 눈부시다.



어린이 박물관, 가야누리
가야시대 경험 할 체험 학습 연중 개최

2006년 12월 15일 사회교육관으로 개관, '가야누리'란 이름을 얻었다. 본관과는 대조적으로 가야전사의 갑옷과 가야의 수정구슬을 상징하듯 은백색 광채에 휩싸인 건물이다. 1층은 가야를 체험하는 어린이박물관이다. 정글짐 같은 가야인 집을 오르내리며, 갑옷을 입어보고, 가야토기를 만져보며, 모래를 뒤져 유물을 찾아내고, 탁본도 하고 본도 뜬다. 개관 이래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단골 견학코스로 인기가 보통이 아니란다. 가야무늬 책 만들기, 가야문화탐험출발, 엄마와 함께 하는
▲ 가야누리 내 계단
박물관 등과 같은 체험학습프로그램이 연중 실 시되고 있어, 가야학아카데미 같은 각종 성인강좌를 포함하면 박물관의 중심이 유물전시에서 사회교육으로 옮겨가는 것 같은 느낌조차 있다.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여러 특별전도 챙겨보는 이에게만 복이 있을 지어다.

 

 





이영식_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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