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영근 김해청년회의소 회장이 잘 구운 갈매기살을 들어 보이고 있다.

1990년 개업, 소금·양념 메뉴만 취급
집에서 담근 장아찌·백김치 인상적

주문 직후 바로 만드는 양념장 특징
4시간 우린 육수로 끓인 우거지된장국

부단한 노력으로 어려운 시절 극복해
김해JC 사회공헌사업 활성화 위해 노력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습한 공기가 피부에 쩍쩍 들러붙었고, 시나브로 불쾌지수가 올라갔다. 그런데 말끔한 정장차림의 김해청년회의소(JC) 손영근(39) 회장의 상쾌한 미소를 보는 순간, 불쾌지수는 급속도로 낮아졌다. 기자는 그날 손 회장과 부원동에 위치한 '언양숯불구이'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한 터였다. 손 회장은 "가게 대표가 김해청년회의소 회원"이라며 식당 안으로 안내했다.
 
식당 내부는 여느 고깃집과 다를 바 없는 소박하고 푸근한 느낌이었다. 자리에 앉은 뒤 벽면에 부착돼 있을 법한 메뉴판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메뉴판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언양숯불구이 조민우(26) 대표는 "우리 집 메뉴는 소금과 양념으로 된 갈매기살뿐이라 메뉴판이 없다"고 말했다.
 
언양숯불구이는 조 대표의 아버지인 조명주 씨가 1990년 처음 문을 열었다. 한우등심과 갈비살, 언양불고기, 돼지 갈매기살 등이 주 메뉴였다. 고기 맛에 단골이 꽤 늘었고 한우 맛집으로 이름이 났다. 조 대표가 가업을 물려받은 건 4년 전부터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대표를 맡게 됐다. 메뉴가 단출한 이유는 가장 자신 있는 돼지 갈매기살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식당 앞에는 이를 증명하듯 '갈매기살 전문점'이라 새겨진 나무현판이 보란 듯 걸려있었다.
 

▲ 불판 위에서 익고 있는 갈매기살과 새송이버섯. 양념 갈매기살. 묵은지김치찌개와 우거지된장국(위에서부터).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 후 손 회장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서상동에서 의류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동시에 김해JC 업무까지 보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국청년회의소는 1952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을 JC운동으로 재건하자'는 이념 아래 창립된 국제민간단체다. 손 회장이 활동하고 있는 경남·울산지구 김해JC는 1968년에 만들어졌다. 그는 올 들어 김해JC 49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가 지난 행사 이야기로 차츰 풀리자 손 회장은 녹록지 않았던 유년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스배달, 섬유공장 일, 식당 서빙 등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죠.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여러 일을 하던 중 의류업에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 서울과 구미를 오가며 일을 배우다 15년 전 김해로 오게 됐습니다."
 
손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인수한 의류 도·소매업체가 자리를 잡아가자  2010년 4월 김해JC에 입회했다.
 
"성격이 소심했는데 JC활동 덕분에 개선됐어요. 처음엔 입도 뻥긋 못할 만큼 위축돼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사소한 문제도 회의를 거치기 때문에 말을 할 기회가 많았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성격이 360도 바뀌었습니다."
 
손 회장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밑반찬이 상에 올랐다. 고추, 깻잎장아찌와 상추부추무침, 백김치 등 고기와 잘 어울리는 반찬이었다. 고추장아찌를 깨물자 짭짤한 간장이 입안에 스며들었다. 백김치는 슴슴하면서도 적당히 익어 자꾸만 손이 갔다. 모두 조 대표 어머니의 솜씨라고 했다.
 
손 회장은 "갈매기살은 독특한 이름 때문에 조류인 갈매기 고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은 돼지의 횡경막과 간 사이에 있는 근육질의 힘살 부분으로, 매우 적은 양이 나오기 때문에 귀한 부위로 친다"고 설명했다.
 
'고기 굽기'의 초보자들이 갈매기살을 구워 먹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쉽게 타버리고 너무 익히면 고무줄같이 질겨지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갈매기살은 센 불에 익혀야 하는데 쉽게 타기 때문에 여러 명이 구워야한다. 다른 소고기는 자주 뒤집으면 육즙이 빠져나가지만 갈매기살은 반대로 육즙이 고기 속에 갇힌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상 위에는 여러 명이 구울 수 있도록 2~3개의 집게가 준비돼 있었다.
 

▲ '언양숯불구이' 전경.

은은한 열기를 내뿜는 참숯이 준비되고 불판이 적당히 달궈지자 갈매기살을 올렸다. 뽀얀 새송이 버섯과 마늘도 통째로 눕혔다. 조 대표의 조언대로 쉴 새 없이 고기를 못살게 굴자 3~4분 이내에 노릇하게 구워졌다. 육즙을 가득 품어 한껏 부푼 갈매기살 한 점을 아무 양념도 묻히지 않은 채 먹어봤다. 육질이 보들보들한데 육즙까지 쫙 퍼져 나와 미소 짓게 만드는 맛이었다. 참숯 연기를 머금은 불 맛도 제대로였다. 통통한 갈매기살을 골라 집에서 직접 담았다는 멸치액젓에 콕 찍어 먹어봤다. 간이 잘 맞춰졌고 감칠맛까지 더해졌다. 묵묵히 홀로 익고 있던 새송이 버섯도 고기처럼 숭덩숭덩 잘라 먹어보니 고기 못지않은 식감을 뽐냈다.
 
손 회장은 "상추에 고기와 마늘, 버섯, 장아찌를 넣어 쌈을 싸 먹으면 더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갈매기살 소금구이를 먹어치운 뒤 불판 위에 양념갈매기살을 올렸다. 양념은 첨가된 설탕 탓에 쉽게 타기 때문에 눈을 떼선 안 된다. 3~4분이 지나고 칼집 사이로 콕콕 박힌 지방이 녹아 기름기가 흐르면 먹어도 된다는 신호다. 조 대표가 추천하는 어머니표 백김치와 함께 먹으니 질리지 않고 개운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양념은 상추로 싸 먹어도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조 대표는 "우리 집의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한 고기 맛 비결은 촘촘히 낸 칼집 덕분이다. 양념은 간장, 다진 마늘, 설탕 등 최소한의 재료만 넣어 버무린다. 숙성기간을 두지 않고 주문 시 바로 양념해 손님상에 나가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 집에 왔다면 마무리 입가심으로 우거지된장국이나 묵은지김치찌개를 먹어줘야 한다. 된장과 멸치, 무, 대파, 소 비계 등을 넣어 4시간 동안 우려낸 육수로 우거지된장국을 만드는데, 구수하고도 깊은 맛에 자꾸 숟가락이 갔다. 짠맛은 풍성한 우거지 덕분에 중화된 것 같았다.
 
새콤한 묵은지찌개도 이 집의 자랑이었다. 직접 담아 숙성시킨 묵은지를 따로 먹어보니 새콤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국물은 진정한 밥도둑이었다. 단품메뉴로 팔아도 될 만큼 빈틈없는 맛이었다. 조 대표는 "두 가지 찌개의 반응이 다 좋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점심특선메뉴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얼추 식사가 마무리 된 시점에 손 회장에게 남은 임기 4개월여 간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임기 동안 회원을 확충할 생각이다. 김해JC의 내실을 강화하고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김해JC 입회원서 쓰고 가라"는 농담을 던지고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김해뉴스 /배미진 기자 bmj@gimhaenews.co.kr


▶언양숯불구이/부원동 620-21번지, 055-336-1218. 갈매기살(소금·양념 130g) 9000원, 묵은지찌개·우거지된장찌개 2000원, 공기밥 별도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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