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맞게 중고 물건들로 가득찬 우리집 
허접해 보이지만 구석구석 제 몫 다해
이상하리 만큼 쓰던 물건이 편하고 좋아

사명산 고갯마루에 버려진 흔들의자
튼튼하고 맵시 있는 자태에 바로 매료
포기 못해 창작스튜디오 식구로 ‘입양’
단원과의 기억 하나둘 추억으로 쌓여


우체국 가는 길에 흔들의자 하나를 발견했다. 근래 들어 부쩍 나빠지기는 했지만 근시에다 노안이어서 먼 거리를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시력 덕분, 혹은 때문이었다. 그것은 도요마을에서 안양마을로 넘어가는 사명산 고갯마루 오른쪽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 노인처럼 의뭉스럽게 앉아 있었다. 차를 세웠고, 뒷걸음질을 해서 가까이 갔다. 비가 내린 뒤여서 흠뻑 젖어 있었으나, 앉음자리와 등받이를 감싼 가죽이 말끔했다. 가죽과 나무의 이음새 처리가 좋아서 뒤틀리거나 불어터진 흔적이 없어 썩 '흔한' 것은 아니었다.
 
더럭 욕심이 동했다. 마른 수건을 찾아 요기조기 닦으면서 살피니 다리 부분에 약간의 흠집만 있을 뿐 튼튼하고 맵시가 있었다. 이런 걸 누가 버렸을까. 멀쩡하고 멋진데. 물심에 눈을 빛내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타박을 주었다. 누가 그늘 좋은 나무 아래 앉으려고 가져다 놓은 것일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들고 가련다는 둥,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둥.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동해 버린 욕심에 사로잡힌 나는 누가 일부러 갖다 놓은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부터 내리고 있었다. 그곳이 사명산에서 무척산으로 오르는 길목인 만큼 등산객이나 근처 묘지에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해도, 혹 오며가며 앉으려고 갖다 두었다 해도 왜 하필 실내용 흔들의자이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거기다 솔직히 우리집에는 당장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짓기 보다는 그것이 들어가 앉을 공간이 없었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커다란 흔들의자가 놓여 있을 상황을 상상해 보고서 나는 짧은 순간 동안 심각하게 갈등했다.
 
그렇지만 단박에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흔들의자는 탐이 났다. 어제 그제만 해도 안 보이던 것이 그날 따라 눈에  띈 것을 보면 딱 하루 쯤 비를 맞았을 테고, 그래서 아직 상태가 양호한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둬서 장마철 비를 몇 번 더 맞고 나면 고갯마루를 지나갈 때마다 흉물스럽게 얼마나 오래 방치될 것인가 말이다. 나처럼 눈독 들이는 이가 또 있어 냉큼 가져가 주면 좋겠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어쩌냐고.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궁리만큼은 오만가지를 다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머릿속이었다. 급기야 에휴 하고 군시렁거리면서 나는 의자의 내력을 더듬어갔다. 그럴듯한 집 거실의 한 쪽을 차지하고서 집주인의 몸을 꽤 잘 받쳐주었을 것인데 어쩌다 이렇게 버려지게 되었을까. 하긴 물건을 함부로 쓰는 사람들이 좀 있긴 하지. 새 아파트 입주할 때 멀쩡한 벽 뜯어내고 황토며 대리석을 바르지 않나, 유행 좀 지났다고 옷이며 가전제품을 내버리기도 하던 걸. 쯧쯧 혀를 차면서 또 정반대의 생각도 해 보았다. 어쩌면 이것은 누군가 애지중지하던 것이었고, 계속해서 애지중지하다가 대를 물려 쓸 작정이었으나 그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이곳까지 데려와서 새 주인을 만나기를 바라며 살그머니 내려놓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법이라서, 갖가지 기억이 의자에 차곡차곡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궁상스러운 사정으로 인해 내 집에는 중고 물건이 참 많다. 널찍해서 쓰기 좋은 내 책상은 남편 친구가 사무실 이전하면서 새 가구를 사고, 버리기 아깝게 좋은 것이라며 준 탁자에 긴 다리를 달아서 만든 것이다. 버리기 아깝다면 그냥 두고 쓰면 될 것이라고 말하지 마시길. 버리는 사람은 버릴 만한 이유가 있고, 다시 쓰는 사람은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중고 나라의 법칙이다. 아무튼 책상 외에도 텔레비전 받침대와 문갑으로 쓰이는 서랍장은 부산 수영에 살 때 놓을 자리에 맞춤한 것을 중고점에서 구입해 쓰다가 싫증이 나고 여러 군데 흠이 생긴 것을 한지를 발라 마감재를 칠해서 세상에서 하나 뿐인 것으로 둔갑한 상태다. 도요로 이사올 때 어머님이 20년을 쓰고 물려주신 장롱을 내가 또 20년을 쓰고 나서 버리고 왔지만 언니가 가져다 준 서랍장은 파스텔톤의 새옷을 입고 바느질감을 넣어두는 용도로 쓰고 있다. 황토방에는 내가 쓴 동화 <아기뱀 꼬물이>의 모티브가 된(된 줄도 모르는) 시인 부부가 준 태광에로이카 앰프 세트가 있는데, 지금도 씨디를 넣으면 맑고 고운 소리를 낸다.
 
남들 눈에는 허접해 보이는 이러한 중고들이 구석구석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집이니 집 또한 새것이 아니라는 짐작은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 양정동에 살 때 이층을 증축해서 딱 한 번 살아본 뒤로 여태 새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수영동 집은 이사하던 날부터 고치기 시작해서 팔기 전까지 고쳐가며 살았던 것 같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초장부터 고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여기저기를 손보고 있다. 집 뿐이 아니라 남들은 3년이나 5년이면 착실히 바꿔가며 탄다는 차도 처음 타고 다녔던 티코 디럭스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중고차여서, 새 차 자랑을 한 번 못해 봤다. 가방이나 선글라스는 딸아이가 쓰다 준 것이고 태블릿은 아들녀석이 친구를 통해 매장 진열품을 싸게 구입해 준 것이고, 내가 유일하게 애착하는 장신구인 인도산 호박팔찌는 인사동 골목에서 중고를 산 것이고, 걸핏하면 탈이 나는 내 몸도 이제 중고를 지나 고물이 되어가는 중이니 꼭 중고 나라의 주인인 것만 같다.
 
이 나이에 뭔가 그럴 듯한 명함은 고사하고 이상한 중고 나라의 주인이라니. 한심하고 침울해지기는커녕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나도 창작스튜디오 식구가 되어 가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내 중고들은 도요창작스튜디오와 밀양연극촌에 모여 있는 중고들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한 달을 두고도 몇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다 보니 무대 소품으로 쓰이는 많은 가구들이 대부분 중고일 수밖에 없고, 근 30년 동안 연희단거리패가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사용한 각종 소품이며 소도구들은 밀양연극촌 한켠에 가히 박물관 수준으로 보관 관리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신참 중고와 고참 중고가 꽉 들어차 있는 그 박물관 아닌 박물관에서 언제 어느 때든 쓰일 날을 기다리고 있는 물건들 중에서 눈에 익은 것이 무대에 올라 떡하니 미장센의 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신기하기만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으니 만큼 더욱더 그 흔들의자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 트렁크와 뒷자리에 실어 보려고 끙끙거렸는데, 사방으로 뻣뻣하게 뻗친 의자의 몸은 내 것이 되지 않으려고 버티기라도 하는 듯이 도저히 실어지지 않았다. 안 되겠다. 포기해야겠어. 트럭이 오든지 해야지 원 이래서야. 아무리 탐이 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트렁크에 걸쳐지기라도 하면 붙잡아 매든가 어쩌든가 해 보련만. 아까운 물건을 두고 가려니 속이 울울하던 차에 소연 씨 차가 밴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전화해서 사정을 말하니 마침 창작스튜디오에 있던 소연 씨가 차를 끌고 부랴부랴 고갯마루로 달려왔다. 그리고 의기양양 흔들의자를 가리키는 나를 보고 소연 씨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가져온 흔들의자는 창작스튜디오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맨처음 대장님이 거기 앉아 흔들흔들, 어, 좋구만! 하고 입주 허가를 내주었다. 단원들도 번갈아 흔들흔들, 어, 재밌네! 하고 논다. 온갖 사무기기와 사람으로 좁아터진 사무실에 커다란 것이 밀고 들어왔는데도 저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아무도 지청구를 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그 이상할 수도 있는 중고 나라가 나는 편안하고 좋다.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아무리 새것이라도 '새것'인 찰나가 지나면 시간의 풍화가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 시간의 풍화는 물건에 대한 기억이 쌓이는 것이고, 흔들의자에는 오늘도 새로운 기억들이 하나 둘 내려앉고 있는 것이다.
 





>>조명숙/김해 생림에서 태어남. 김해여고 졸업.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조금씩 도둑><댄싱맘> 등 다수. mbc창작동화대상, 향파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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