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가즈백작의매장
한 성냥 공장 사장이 기소되었다. 성냥갑에 고야의 '벌거벗은 마야' 그림을 인쇄, 판매한 음란물 유포죄. 사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작품을 두고 음란물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고 기소를 한 검사는 아무리 예술작품이라하더라도 알몸의 여자 그림을 시중에 유포 시킨 것은 당연히 불법이라 했다.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 했고, 덕분에 전 국민적 미술 공부가 되었다. '고야하면 누구나 마야' 하게 되었다. 대법원에서는 '명화라도 불순한 목적으로 사용하면 음란물이 될 수 있다'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팔각 '유엔성냥'이 다방 탁자마다 놓여있던 '그때 그 시절' 이야기다.
 
스페인. 버스로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로 가는 길이다.

어제는 마드리드 시내 서점에 들러 스페인 여행에 필요한 지도와 책 몇 권을 산 것 외는 프라도미술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마하'(지금은 마야를 마하로 고쳐 쓴다) 그림을 보았다. '벌거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 두 점이 전혀 '불순하지 않은 목적으로' 한 방에 나란히 걸려있었다. 함께 간 아이들은 교과서나 책에서 본 고야에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현실적인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을 재미있어 한다. 아내는 벨라스케스 앞에서 떠날 줄 모른다. 좋아하는 게 서로 다르다. 나는 엘 그레코가 좋아졌다.

톨레도에 가기로 했다. 톨레도는 엘 그레코가 40년간 살았던 곳이다. 그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다. 시외버스. 여행 중 이동하는 시간이 그나마 쉬는 시간이다. 피곤하니 자자고 했는데 버스가 큰길을 벗어나 마
▲ 산토토메교회
을로 들어가더니 덜컹 정차를 한다. 직행버스가 아니고 완행버스를 탄 것이다.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차에 오른다. 완행버스를 탄 동양인 가족이 궁금한지 처음엔 몇 번 힐끗거리더니 그러나 이내 저희끼리 떠들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마드리드 교외 라만차의 아이들. 가만히 보니 그들 얼굴형과 피부색이 저마다 제각각이다. 재밌다. 하지만 잠시 버스는 얼마 못가 또 다시 작은 마을 앞에 멈춰 섰고 아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아 시차. 잠이 몰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인 듯 덜컹 톨레도에 도착했다.
 
김해가 그렇고, 경주, 부여가 그렇다. 고도. 톨레도 또한 역사 도시다. 17세기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기 전까지 천년 이상 스페인의 중심이었다. 스페인은 8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오랜 기간 무어인(아랍)의 지배를 받았다. 톨레도 역시 400년 가까이 무어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 때는 오늘날 볼 수 있는 기독교인
▲ 성 바르톨로메오
과 이슬람교인, 이슬람교인과 유대인의 갈등이 없었다. 당시 스페인은 세 문화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특히 톨레도는 이방 종교와 문화에 대해 관용이 넘치는 도시였다. 13세기에 이미 통역자 학교가 있었고 아랍어로 된 많은 문서들이 스페인어와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다원화를 통한 학문과 문화의 부흥이었다. 지금도 톨레도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아랍인이 세웠던 성과 그들의 집들, 기독교 성당과 유대교 회당이 함께 어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엘 그레코가 톨레도에 도착 했을 때는 피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순혈주의와 정통 기독교 사상이 지배적 이념으로 등장하던 종교재판과 이단 심문관의 시기였다.
400 여 년 전. 미술사학자들은 1577년경으로 추정한다. 30대 중반. 엘 그레코라 부르는 크레타 출신의 한 그리스 사내가 톨레도에 도착했다. 물론 여행 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스페인은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 최강이었지만 실력 있는 미술가가 부족했다. 반면 이탈리아는 당시 최고의 문화 선진국이었다.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와 라파엘로가 현역이던 시절이었다. 로마와 피렌체 등 이탈리아 곳곳에 거장들이 넘쳐났다. 물론 몇몇 거장들이 일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해 다른 예술가들은 밥벌이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신대륙으로부터 가져온 금으로 온갖 치장을 한 부자 나라 스페인. 이탈리아 예술가들에게 스페인 땅은 요즘말로 블루오션, 기회의 땅이었다.

▲ 톨레도 전경
톨레도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그를 엘 그레코라 불렀다. 그 스스로는 도미니코 그레코 즉 그리스인 도미니코로 불리길 원했지만 사람들은 그냥 '그리스 사람' 엘 그레코라고만 불렀다. 우리가 이웃에 사는 외국인을 그 사람의 이름 대신 무심코 '베트남 사람' '중국 사람' '일본 사람'이라고만 부르듯. 그는 그렇게 남은 평생을 '그리스 사람'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모든 작품에 빠짐없이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라는 그의 본명을 그리스 문자로 새겨 넣었다고 한다.
 
▲ 엘그레코의 집과 미술관
엘 그레코의 집과 미술관을 찾아가는 길. 유대인 지구의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골목 골목 좁은 고샅길. 길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스페인의 여름은 무시무시하다. '드라이. 메마른'이란 뜻의 라만차란 의미를 반시간이 가기 전에 온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미리 지도를 준비하고 굳게 마음을 먹고 시작하지 않으면 중간에 길을 잃고 더위에 지쳐 구경이고 뭐고, 아이스크림 가게나 빵가게 안에서 음료수를 입에 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십상이다. 유대인 지구 좁은 골목 안쪽에 엘 그레코의 집과 미술관이 있다. 엘 그레코가 살았던 집은 아니고 20세기 들어 관광국에서 근처의 폐가를 사서 꾸민 것이다. (엘 그레코는 한동안 잊혀 지내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며 새롭게 주목 받았다. 따라서 많은 자료들이 유실되고 없다)
 
1층에는 당시의 생활상이 재현되어 있고 2층에는 몇 점의 유화가 전시되어 있다. 그중 '성 바르톨로메오' 초상화는 말년의 작품이다. 사실적 묘사에서 멀어지면서 길고 어두운 얼굴로 내면적 표현에 충실했던 본격적 시기의 엘 그레코의 전형적 인물 묘사를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엘 그레코 그림의 길고 어두운 피부색의 얼굴들은 언뜻언뜻 유대인 혹은 아랍인의 얼굴과 닮아 있다. 그리고 톨레도를 오면서 시외버스에서 만났던 아이들과도 어딘지 닮아 있다. 모를 일이다. 그들의 아버지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거나 아랍인이었거나 혹은 기독교인이었을지도. 근데 그게 무슨 대순가. 가도 가도 끝없이 올리브 나무만 보이는 라만차 메마른 땅에서 아이들은 낄낄낄 재잘거리며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데.

▲ 톨레도 전경
1614 년 73세의 나이로 영면하기까지 40년 이상을 살아온 톨레도 곳곳에 엘 그레코의 작품들이 보석처럼 자리하고 있다. 엘 그레코 집과 미술관 뿐 아니라 톨레도 대성당과 산타 크루즈 미술관 그리고 산토 토메 교회. 특히 산토 토메 교회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4.8×3.6m 크기의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이 소장되어 있다. 그 그림을 보러 전 세계에서 해마다 수 만 명의 사람이 톨레도를 찾고 있다.


■ 엘 그레코(El Greco) ─────

그리스 출신의 스페인 화가.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크레타에서 태어나 이콘 화가로 일하다 세리 일을 하는 형을 따라 베네치아로 건너갔다. 엘 그레코란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그리스 사람이란 뜻이다. 1577년에 스페인 톨레도로 이주한 후 종교적인 주제의 그림 속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남겼다. 선명한 색과 그늘진 배경의 대조, 긴 얼굴 표현 등 개성 넘치는 작품은 훗날 20세기 표현주의 작가들과 추상파 작가들로부터 높은 찬사를 받는다. 그의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3대 종교화로 꼽힌다.


■ 톨레도 - 엘 그레코 미술관 ─────

엘 그레코 미술관
·주소 = Calle Samuel Levi 3, 45002 Toledo
·전화번호 = +34 925 224046
·개관시간 = 화~토 10:00~14:00, 16:00~18:00, 일 10:00~14:00 
산토 토메 교회
·주소 = Plaza del Conde 4, 45002 Toledo
·전화 = +34 925 256098
·개관시간 = 4월 21일~9월 20일  10:00~18:45, 9월 21일~4월 20일 10:00~17:45
http://www.santotome.org

■ 여행팁 ─────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67km. 버스로 1시간 남짓 걸린다. 교통 편이 좋아 마드리드에 숙소를 정하고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는 게 편하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유명 관광지로 중세의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아랍식 건물과 기독교식 건물이 뒤섞인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더불어 유대 지구 특유의 어디로 가는 길인지 어디로 휘어지는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 아름다운 도시다.

톨레도 시내는 크지 않아 반나절 정도 걸어 다니면 다 구경할 수 있다.
아랍의 영향으로 달콤한 과자나 빵 종류가 맛있고, 톨레도 검이라 부르는 중세 기사들이 들고 다녔음직한 칼이 유명하다.
 http://www.ayto-toledo.org

 





윤봉한_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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