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영 김해시여성센터·동부여성새일센터장.

여성새로일하기센터의 직원 한명이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면담을 좀 하자고 하였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왜? 설마 그만둔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라고 내뱉고 말았다. 오전에 입사 7개월 만에 그만둔 직원의 후임 채용면접을 본 터라 그런 말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직원들은 입사 후 6개월 정도 열심히 업무를 익힌 뒤 2년 계약직이라는 자신들의 고용형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면 허탈해 한다. 이 경력으로 향후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진로 고민과 고용 불안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계약직의 서러움은 아이러니하게도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원인이 있다. 법 제4조 '기간제근로자의 사용'에는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명시되어 있다.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만든 법이 오히려 기간제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악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계약직으로 고용되어 2년 이상 계속 근로하게 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게 한 규정 때문에 사용자는 2년이 넘지 않도록 계약기간을 정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이후에 떠안게 될 해고의 어려움, 급여 인상, 각종 수당, 복지 혜택 등의 부담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국비사업이다. 사업 지침에는 직원을 계약직으로 채용하게 되어 있다. 언제 이 사업이 중단될지 모르는데다, 매년 평가를 통해 실적이 저조한 센터는 지정을 취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경쟁과 능력만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국가의 이념을 드러낸 사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무한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자를 보호하겠다면 계속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회는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할 수 있는 기한을 2년으로 정해 업무의 연속성은 떨어뜨리면서 매년 평가를 한다는 것은 무슨 모순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여성의 경제참여율이 하위권에 속하는 우리나라 실정을 감안해 볼 때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여성새로일하기센터가 순식간에 없어질 사업인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비지원을 받는 복지사업의 대부분 직원들이 계약직이다. 그나마 민간 법인이 수탁운영하는 경우에는 법인의 재량에 따라 무기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지만, 지자체에서 직영하거나 산하기관에서 수탁운영할 경우에는 '기간제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뉴스를 살펴 보면 서울대학교에서 '비정규직 조교'를 대량해고하려는 의혹이 있어 조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학업을 병행하지 않고 행정업무만 하는 비학생 조교는 254명이며, 이 가운데 110명이 2년 이상 근무하였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감사원이 실태조사에 착수하자, 학교 측에서는 내년 3월부터 신규채용하는 조교는 임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업무에 따라 5~7년 기한으로 임용하겠다는 개정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처럼 정부 기관이 앞장서서 계약직을 양산하고 기간제보호법을 악용하고 있다. 결국 2년 이상 근무하고도 해고된 자들은 비참하고 소모적이지만 법에 호소하여 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2년 만에 해고된 자들은 어디로 가서 생계를 유지해야하는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규직이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도 낮은 임금의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근로자가 원치 않음에도 자유로운 해고를 일삼으며 축적되는 부는 누구의 몫인가.
 
각설하고….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그만둔다는 직원의 말을 들어보니 자녀가 중학교 3학년이어서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김해로 이사하겠지만, 안 된다면 계속 부산에서 출·퇴근하는 피곤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녀의 학군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서 여러 업무를 맡아 보고 경력을 쌓아서 계약 만료 후의 일자리를 준비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당장 그만둔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하지만, 미안하고 참으로 가슴이 답답한 노릇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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