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 그룹사운드 '키보이스'의 노래 가사처럼 누구에게나 즐겁고 아름다운 여름의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연의 등장인물은 가족·연인·친구끼리일 수도 있고, 장소는 국내나 해외일 수도 있다. 잊지 못할 휴가를 보낸 다양한 사람들의 추억을 들어본다.

 

▲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하호용 씨 일행.

■ 동료교사 '아빠 캠핑' / 하호용 김해활천초 교사

물고기 통발 냇가 띄워 놓고 다슬기 잡이
아이에게 선물한 추억 지금 살게 하는 힘


교직의 첫 출발지였던 청주를 뒤로 하고 김해에서 지내온 시간이 벌써 8년이 다 돼 간다. 처음에는 말투나 정서가 많이 달라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이 깊은 사람들과 착한 아이들 덕분에 김해는 마음 속에 또 다른 고향으로 자리 잡게 됐다.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지만 김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진짜 고향이다.
 
잘 몰라서 아이에게 많은 경험의 기회를 주지 못할까 봐 정성을 들여 김해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밟았다. 그러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동료교사 2명과 함께 '아빠 캠핑'을 시작했다. 바쁜 일상이지만 짬을 내 아빠와의 추억을 만들어 주자고 의기투합했다. 더운 여름을 맞아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밀양에서 캠핑을 했다. 금세 친해진 아이들은 마치 자주 본 친구마냥 장난을 치며 잘 어울렸다.
 
캠핑장 바로 앞에 흐르는 얕은 계곡물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아이들은 물안경을 쓰고 물속을 들여다 보면서 연신 "조개껍데기가 있어요", "아빠, 물고기가 다리를 건드렸어요"라며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했다. 인공 놀이기구나 장치가 없어도 잘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들도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아빠, 우리 물고기 잡아요"라는 한 아이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족대와 통발을 들었다. 마치 어부가 된 것처럼 신중하게 물길을 보고 떡밥을 뭉쳐 통발을 설치했다. 아이들은 "여긴 어떤 물고기가 잡혀요", "지금쯤 잡혔을까? 우리 보러 가요"라며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물고기 통발을 냇가에 띄워 놓고 밤에는 다슬기를 잡기로 했다. 바비큐로 든든히 배를 채운 뒤 어둠을 헤치고 다시 냇가로 향했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물 속의 작은 흔적들을 좇아 더듬어 본 바위틈새에 다슬기가 있었다. 다슬기를 잡을 때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서로의 다슬기를 비교하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뿌듯해 하기도 했다.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냇가는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듯 했다. 밤이 깊어졌지만 누구도 시간을 묻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행복해 했다.
 
하루 종일 물놀이와 물고기 잡이, 다슬기 줍기를 하며 자연 속에서 뛰어 논 아이들은 순식간에 곯아 떨어졌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을 뒤로 하고 아빠들은 피워둔 장작불 앞에 보여 학교에서 못다한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를 깊이 나누었다.
 
다음날 눈을 뜬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통발로 달려갔다. 수면 위로 통발이 떠오르는 순간 알 수 없는 퍼덕임에 모두 소리를 질렀다. 통발 안에는 아이들 손보다 큰 꺽지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직접 물고기를 잡은 게 처음인 아이들은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만지면 물어요"라고 질문하며 물고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매운탕을 끓이자는 누군가의 의견은 물고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애처로운 눈빛에 반성하는 목소리로 변해 버렸다.
 
아빠 캠핑의 의도는 아이들에게 추억과 자연을 선물하려는 것이었지만, 현실의 압박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아빠들에게 되려 선물이 되었다. "아빠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놀았어요"라고 묻는 아이들의 눈 속에서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닿아 있는 공명을 느낀다. 아이와 만든 추억의 울림이 지금을 살아가는 힘이 되고 있다.



▲ 박옥순 씨 일행이 제주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사돈끼리 2박3일 / 박옥순(여·내동·자영업) 씨

자식 결혼 인연 맺은 친구같은 두 사돈
우여곡절·웃음만발 즐거운 ‘삼다도 휴가’


슬하에 1남 3녀의 자식을 두고 있다. 9년 전 둘째 딸이 결혼했다. 사돈 댁과 우리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다. 가까운 데 살다 보니 서로 왕래가 잦았다. 5~6년 전부터 사돈과 3개월에 한 번씩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의 쉼표가 됐다.
 
"만나서 밥만 먹지 말고 함께 여행을 떠납시다. 우리가 남입니까?", "아이고, 좋죠!"
 
사돈과 만남을 이어가던 중 사돈의 제안으로 지난해 우리는 함께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는 사돈의 첫째, 셋째 아들의 사돈 내외도 함께 탑승했다. 이렇게 해서 일행은 모두 8명이었다. 한마디로 '사돈의 사돈'과 함께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관계만 사돈일 뿐 50~60대로 나이가 비슷한데다 다들 이해심이 깊어 오래된 친구와 여행하듯 편한 일정이었다. 성산일출봉, 천지연폭포 등 제주도 유명관광지를 돌아보며 웃고 떠드는 사이 사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마지막 날 김해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도착했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제주공항에서 기념품 매장을 둘러보던 중 문제가 생겼다.
 
정신없이 구경하던 사이 김해공항으로 돌아오는 오후 8시 비행기를 놓친 것이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 비행기 표를 다시 발권했다. 탑승시간은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는 선물용으로 샀던 제주밀감 상자를 양 손에 든 채 탑승 게이트로 냅다 뛰었다. 열심히 뜀박질하던 중 한 명이 발이 꼬이는 바람에 큰 대자로 넘어져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박3일의 제주 여행은 끝이 났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은 자식들이 만들어 준 앨범 덕분에 추억이 됐다.
 
제주도 여행 후 사돈들과 '우리가 남이가'라는 계모임을 만들었다. 지난해부터는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매달 10만 원씩 돈을 모으고 있다. 내년에 중국으로 갈 생각이다. 자식들 덕분에 얻은 인연이 즐거운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친구로 돌아왔다. 정말 인생 살 맛이 난다.



▲ 김해 연지공원 전경.

■ 연지공원 / 박민정(더불어민주당) 김해시의원

김해 토박이라면 신못 추억 하나쯤 간직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놀던 그때 그리워


옛날에는 연지공원을 '신(新)못'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여름에 한발이 심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김해평야에 물을 대기 위해서 조성한 저수지였다.
 
저수지 둑에는 벚꽃나무가 많았다.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초봄에는 어머니들이 이곳에서 나들이를 즐기기도 했다. 연료가 부족하던 때라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이 벚꽃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땔감으로 쓰기도 했다.
 
초등학교~고등학교 때까지 여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늘 신못으로 놀러 다녔다. 신못 한가운데에는 섬이 하나 있었다. 섬에는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숙제를 많이 내 줬다. 우리는 숙제를 할 책을 비닐봉지에 넣어 꽁꽁 묶은 다음 옷을 훌러덩 벗고 신못의 섬으로 헤엄쳐 건너갔다. 그곳에서 숙제를 하거나 잠을 자기도 하면서 하루종일 놀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다시 건너와 집으로 가곤 했다.
 
당시 김해에 공병학교가 있었다. 무더위를 이기지 못한 군인들이 신못에 가서 물놀이를 하다 가끔 익사하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면 물속에 들어가 시체 건지는 일을 돕거나 구경하기도 했다.
 
모내기를 끝내고 물이 조금 빠지면 신못에서 대합, 장어, 잉어, 붕어가 넘쳐났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재첩도 있었다. 재첩을 건져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인근에 아파트가 연이어 생기면서 오·폐수가 신못으로 유입됐다. 파리, 모기가 들끓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이 때문에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신못을 메워 버렸다. 신못에서의 여름 휴가는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라진 추억'이 돼 버렸다. 50대 이상 된 김해 토박이들이라면 다들 신못에 얽힌 여름 추억을 하나 둘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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