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대구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동안, 누가 시를 더 많이 외나 친구와 내기를 했던 여군장교가 예순이 넘어 시인이 되었다. 폴 베를렌느, 서정주, 이영도의 시를 외우는 동안 기차는 어느새 종착역에 도착했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기찻길은 짧았고, 시의 길은 끝이 없었다. 올해 일흔을 맞은 이현주 시인이 등단한 것은 지난 2005년이었다. 늦깎이 시인이지만, 그 기다림과 열정은 문학청년 부럽지 않다.

▲ 분성산과 해반천을 좋아하는 이현주 시인은 김해의 길들을 천천히 걸으며 시를 쓰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1941년 경기도 이천에서 8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시인은 자연을 만끽하며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나무를 올려다보고 꽃을 바라보며 걷느라 귀가 시간이 자꾸만 늦어졌다. 키 큰 미루나무 그림자를 밞으며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 부모님께 야단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넓은 이천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앉아 있는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저 들판도, 아스라한 들판 끝과 이어져 펼쳐지는 하늘도 모두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늘 가슴이 설레었다. "이 다음에 트렁크 가득 원고지를 넣고, 세상의 길을 혼자 걸어 가야지"라고 결심도 했다.
 
학교를 졸업할 즈음 현역 대위였던 친척 아저씨의 입대 권유를 받았다. 이 씨는 여군병과에 지원하여, 1965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1971년부터 1972년까지 월남사령부, 경북 병무청,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등지에서 근무했다. 그 시절의 사진 속에서 여군장교 이순남(이 씨는 등단과 함께 이현주란 필명을 사용함)은 군복이 잘 어울리는 멋진 모습이다. 군 생활을 열심히 한 이 씨는 1982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여하고, 1984년 1월 예편했다. "군복 입고 지프 타고 부대로 들어설 때, 위병소 초병이 '충성'하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어요." 잠시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충성' 부분에서 오른손을 모자 끝에 붙였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여군장교의 카리스마가 멋진 포스가 느껴졌다.
 
이 씨의 남편 안상주(78) 씨는 해병 대령 출신이다. 남편과의 인연은 사촌동생 덕분으로 맺어졌다. 해병대에 입대한 사촌동생이 집으로 연락을 안 하고 있어, 군 생활을 잘 하고 있나 친척들의 걱정이 많았단다. 이 씨가 부대에 편지로 문의를 했는데, 답장을 보내 준 이가 남편이다. 펜팔 아닌 펜팔을 한 해병대령과 여군장교의 만남이 부부의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소녀 시절의 감상이 그대로 살아있어 시인이 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이천 양정여고시절 학교 백일장에서 장원한 거 말고는, 시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이 씨는 인터뷰 내내 시를 좋아하지만 어려운 세계이다, 지금도 배우고 있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친구와 시를 외는 내기를 했던 그 기억은 그의 마음 갈피 어딘가에 새겨진 듯 했다. 기억이 안 난다며 쑥스러워 하다가도, "아, 생각났어요" 하면서 신석정, 서정주, 고은의 시 구절이 연이어 나왔다.
 
"낭산(狼山)밑 세말 사람 백결(百結)이는 가난해 주렁주렁 옷을 기워 입은 게 메추라기 꿰미를 매단 것 같대서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지어 불렀다." 미당의 시 '백결가'를 순식간에 읊어버리는 시인. 그러면서도 "세월이 가면서, 외웠던 시들이 잊혀져 가요. 내가 외운 시들이 바람처럼 어디론가 다 날아가 버린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얼마나 많은 시를 외웠던 것일까. 젊은 시절 읽었던 그 모든 시들이 바람에 날려 우주를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시인의 마음에 돌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씨가 김해에 온 것은 지난 1994년이다. 김해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고, 시인이 되었다. 그가 걸어가는 시의 길에는 이병관 시인(전 김해문인협회 회장)이 있었다. 칠암도서관과 장유도서관 원장을 역임한 공무원이자 시인이다. 이병관 시인은 지금도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시공부 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 씨는 이병관 시인의 시가 좋아 시공부 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많은 자극과 도움을 받는다고 말한다.
 
▲ 등단지 '문학시대'를 보며 시를 읊던 시절을 추억하는 이현주 시인.
한참 시 이야기를 하다가 이 씨는 "내가 정말 되고 싶었던 것은 스님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문단 데뷔작에서 불교적 세계관이 느껴졌다. 이 씨는 '문학시대'(2005년 여름호) 신인문학상에 '마애불' 외 9편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마애불'의 한 구절을 읽어보자. "숨 가쁘게 정상을 다 올라와서야/암벽면을 다듬어 선각된/연화자에 아미타부처/자태를 드러낸다//청태 낀 어깨 위에/커다랗게 늘어진 귀/세상 온갖 풍상 다 듣고자 함인가//바람을 끼고 흐르는 계곡물소리/나무와 숲이 하늘을 이고/억겁을 쌓아가는 듯 신비가 흐른다". 구산동 마애불에 관한 이 시가 이 씨의 문단 데뷔작이다. 이 시를 쓰기 위해 마애불을 수차례 찾았다고 한다.
 
이 씨가 평소에도 즐겨 찾는 곳은 분성산과 해반천이다. 그가 쓴 시 '해반천'을 읽어보면 해반천의 작은 풀잎과 물 속 작은 생명체에 세심하게 눈길을 주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오랜만에/이른 저녁을 하고/땅거미 지는 해반천 고수부지를 걷는다/망초 잎·쑥 이파리·쇠스랑이·쇠뜨기/초등생만큼이나 자랐고/청포 잎도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었다/겨우 내/빈 젖 빨던 물소리/넉넉한 소리로 흐른다/물속 수초(水草)사이/물방개·개아재비·소금쟁이·송사리 떼/흑 갈색 물오리 돌아오고/모처럼 해반천이 부산한 저녁을 맞는다/산다는 것은 이렇게 함께 한다는 것/해반천을 걷는다/물소리 따라 걷는다/모두가 모두를 따라 함께 걷는다."(시 '해반천' 전문). 일상에서 스쳐 지났던 해반천이 눈앞에 보일 듯하다.
 
시(詩)라는 한자를 파자로 풀면 심구사(心口寺), '마음을 입으로 옮겨 모시는 사원'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들이 있다. 하나의 주제를 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생각하다가 시로 쓴다는 의미이다. 이 씨는 지금 사람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다 받아들이자는 주제를 마음에 담고 있다. "고달플 때 시가 그리워지고, 힘들 때 시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시를 쓰는 일이나 마음을 닦는 일은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요." 눈앞에 글자가 보이는 순간까지 시를 쓸 수 있으니,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이 시 쓰는 일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저한테는 돌파구 같은, 행운이지요." 시는 시인을 늦게 찾아왔으나, 서로가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만났다. 행복한 일이고, 행운임이 분명하다.
 
70여 편의 시가 모아지면 시집도 내고 싶다는 이 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장교에서 당번사병이 됐어요"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부부가 함께 할 점심 준비하러 가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미루나루 그림자를 밟으며 들판과 하늘을 눈에 가득 담았던 소녀가 언뜻 보이는 듯했다. 트렁크 가득 원고지를 넣고 세상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던 그 소녀는 김해에 와서 시인이 되었다.


Tip >> 이현주 시인은

▲ 이현주 시인의 등단지와 여군 시절 모습.
이현주(본명 이순남) 시인은 1941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문학시대'(성춘복 시인 발행) 2005년 여름호에 '마애불' 외 9편이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마애불', '11월의 오후', '마음', '춘란', '진양호에서', '당신', '조각보', '길 위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 '자화상'이 데뷔 시편이다. 성춘복, 유금호, 황금찬 시인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다향한 체험의 넓은 영역을 보이는 시세계로 차분하기 이를 데 없다"는 평을 받았다. 시인은 당선 소감에서 "소녀 적부터 염원하던 꿈이 늦은 지금 이루어지고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라고 밝혔다. 등단지 동인활동을 계속 하고 있으며, 올해 초 김해문인협회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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