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상동전통시장에서 상인들이 부채질을 하며 평상에 모여 앉아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국이 설설 끓고 있다. 김해에서는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폭염경보가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35~36도를 웃도는 무더위. 직격탄을 맞은 곳 가운데 하나가 냉방시설이 미흡한 전통시장들이다. 김해의 동상·장유·외동 전통시장 상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무더위 탓에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석 달째 적자라는 상인, 가게 자릿세도 못 낸다는 상인, 혹시라도 손님이 올까 싶어 구슬땀을 흘리며 가게를 지키는 상인들, 그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들어봤다.
 

무더위에 동상·장유·외동시장 한산
상인들, 부채나 선풍기로 더위만 식혀
혹시라도 고객 올까 가게도 못 떠나

지나가는 행인조차 찾기 힘든 폭염
“여름은 비수기… 장사 접은 사람 태반”
시장 찾는 젊은 ‘새댁’도 크게 줄어


 

▲ 손님이 한 명도 없는 텅 빈 동상동전통시장.

■ 동상동전통시장
오전 11시, 평소 같으면 한창 바쁠 시간인데 동상동전통시장 내부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짐을 옮기는 상인들의 발걸음에도 힘이 없었다. 부채를 들고, 선풍기를 켜고 더위를 쫓아보려는 상인들의 모습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동상동전통시장이지만,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이번 여름 무더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34년째 생선 장사를 하고 있다는 최 모(73) 씨는 가게 안에서 TV를 켠 채 선풍기 바람만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는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안 보인다. 가게를 비워둘 수도 없어 이렇게 자리만 지키고 있다. 최근 2~3개월은 적자다. 손님들이 와야 물건이라도 쫌 뺄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갈수록 힘들다. 대기업의 대형매장들 때문에 재래시장은 죽기 일보 직전이다"라고 토로했다.
 
채소가게 주인 우 모(57) 씨는 "손님이 평소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사람이 아예 안 오는데 어떻게 장사를 할 수 있겠나. 원래 더울 때는 손님이 적은데, 신세계·이마트 김해점이 생기고 나서는 더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상동전통시장은 외국인거리가 있어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상인들은 외국인 손님들의 수도 준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손님이 안 와서 며칠 쉬다가 다시 나왔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요즘 같아선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동상동전통시장번영회 관계자는 "올해 여름은 특히 덥고 무더위의 기간도 길어 피해가 크다. 예전에 대형매장이 없을 때는 더워도 손님들이 왔는데, 이제는 다들 대형매장처럼 상대적으로 시원하고 서늘한 곳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시장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해시는 '대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민들의 편의성을 높인다'고 자랑하지만, 길게 봤을 때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 장유전통시장의 한 상인이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장유전통시장
오후 2시, 연일 계속되는 폭염 탓에 장유전통시장에서 문을 열어놓은 상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좌판을 연 몇몇 상인들은 선풍기 한 대로 더위를 쫓고 있었는데, 목줄기에서는 비 오듯 땀이 쏟아졌다. 장유전통시장 거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 폭염 탓에 문을 닫은 가게가 많은 장유전통시장.

채소가게를 하는 김 모(69·여) 씨는 "가게 월 임대료가 200만 원이다. 요즘 같은 상황에는 임대료 맞추는 것도 빠듯하다.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음식점들이 줄줄이 폐업하는 바람에 채소 배달이 줄었다. 거기다 폭염으로 시장을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지난 석 달 동안 매출이 50% 이상 감소했다. 그래도 놀 수는 없으니 할 수 없이 나와서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상인 박 모(70·여) 씨는 "10여 년 동안 분식업을 했다. 상인들이 가게 문을 열어놔야 그나마 손님이 찾아올 텐데, 너무 덥다 보니 장사를 접은 사람이 태반이다. 이래저래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음식점을 하는 김 모(57) 씨는 "냉방시설이라고는 선풍기밖에 없다. 뜨거운 국물을 먹으러 오는 손님도 없을 뿐더러 이 더운 날 손님이 와도 음식을 내놓기가 민망하다. 전통시장의 여름은 비수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 푼이라도 벌려고 가게 문을 연다"고 말했다.
 
장유전통시장번영회 관계자는 "장유전통시장은 3, 8일에 장이 서는 오일장이다. 상설시장 전환을 꿈꾸고 있지만 인근에 불법시장이 판을 치는데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상설시장으로 바꾸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 외동전통시장
외동전통시장은 상가 사이에 자리 잡은 전통시장이어서 일부 가게들은 에어컨을 갖추고 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지난 6월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이마트 김해점과 불과 1㎞거리여서 더위를 피해 백화점으로 '피서'를 간 손님들 때문에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오후 1~4시 햇볕이 강한 시간에는 지나가는 행인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김 모(50) 씨는 "여름 들어 손님이 많이 줄었다. 경기 침체와 대형매장 개장에다 더운 날씨의 영향이 뒤섞여서 그런 것 같다. 현상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다. 가게 안쪽에는 에어컨을 켜는 가게가 있지만 손님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에는 냉방시설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옷가게를 하는 이강숙(56) 씨는 "뉴스에서 폭염특보라며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보도를 할 때마다 화가 난다. 날씨가 너무 더워 오후 1~4시 사이에는 손님이 없다. 그나마 해가 지고 나면 인근 가족 단위 손님들이 산책을 겸해서 시장에 오곤 한다. 매출이 3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외동전통시장은 인근에 신세계백화점·이마트 김해점이 생기면서 시장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우선 시장을 찾는 고객들 중 '새댁'이 크게 줄어들었다. 상인 박 모(57) 씨는 "요즘은 새댁들이 잘 안 보인다. 아무래도 시원한 백화점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것 같다"며 입맛을 다셨다. 
 
김해뉴스 /김예린·조나리·배미진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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