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여성복지회관 김은아 관장이 양념장어구이 한 점을 들고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다.

40년 전 영업 시작한 지역 ‘최고령’ 식당
 통영서 가져온 귀한 상에 앉아 기분 최고

“가장 비싸고·좋고·맛있는 고기만 사용”
 비린 맛 하나도 없어 먹기에 정말 편리
 특제 소스 발라 만든 양념구이도 특미

‘불암동 장어마을 이야기’ 프로젝트 진행
 지역 애환 담은 음식문화 널리 소개하고파


올 여름은 무척 더웠고, 유난히 길었다. 여름과 어울리는 음식은 뭘까. 물론 시원한 냉면과 삼계탕, 영양탕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김해에는 특별한 보양식이 있다. 김해의 아홉가지 맛 '김해 9미(味)' 중 하나인 '불암장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김해여성복지회관 김은아 관장과 불암동 장어마을에서도 가장 오래 됐다는 '향옥정'으로 향했다.
 

▲ 오창원 사장이 연탄불에 장어를 굽고 있다.

부원동에서 부산김해경전철을 타고 향옥정으로 향하면서 김 관장은 불암장어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김해의 남동쪽, 서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부산과 맞닿아 있는 불암동은 예전부터 장어로 유명했다. 낙동강 최하류 지역에 자리 잡은 불암동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형적 특성 덕에 질 좋은 장어가 많이 잡혔고, 선암다리 부근에는 빨간 고무대야를 인 아낙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장어구이 가게들이 생겨났고 장어마을까지 형성됐다. 김 관장은 "외가가 김해라 어릴 때 불암동에 자주 왔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옛 김해교 근처를 지나가면서 낙동강을 오가던 고기잡이배들과 잡은 고기를 팔기 위해 호객을 하던 상인들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한편, 10여 년 전부터는 인근 분도마을에 강변장어타운이 형성되면서 일부 가게들이 옮겨갔고, 그래서 장어마을을 지금은 편의상 '윗장어마을'과 '아래장어마을'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향옥정은 처음 문을 열었던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경우다. 향옥정은 공순자(77) 사장이 1977년에 개업한 곳으로, 올해로 40년 된 김해에서는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기도 하다.
 
불암역에서 내려 대동면 방면으로 5분 정도 걸어가니 향옥정이 나왔다. 가게 앞에는 '김해시 모범음식점', '김해관광추천음식점', '2016김해맛집향토음식경연대회 수상집' 등 향옥정의 명성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가득했다.
 
향옥정에서 가장 명당으로 치는 공간은 방으로 되어 있는 안쪽 자리다. 2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오창원(54) 사장의 안내를 받아 명당으로 갔다. 방 문을 열자 널찍한 둥근 자개상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상이었다. 검은 자개상의 모서리는 조금씩 닳은 탓에 나무가 드러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세월의 흔적이어서 멋스러웠다. 정말 예쁘다며 탄성을 지르자 오 사장은 "자개상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통영에 직접 가서 가져 왔다. 이제는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며 웃었다. 귀한 상 앞에 앉으니 귀한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두툼한 장어소금구이, 40년 전통의 향옥정 전경(사진 위에서부터).

이내 감자샐러드, 케일장아찌, 멸치볶음, 숙주나물, 가지나물, 버섯볶음, 물김치 등 밑반찬이 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커 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자개상이 밑반찬들로만 가득 찼다. 어림잡아 20첩은 돼 보이는 상차림에 입이 떡 벌어졌다. 오 사장은 "우리 집 음식에는 조미료를 하나도 안 쓴다. 모두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 어머니(공순자 사장)가 지금도 매일 새벽시장에 가 장을 본다"고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오 사장이 가장 자신 있어 한 것은 주 메뉴인 장어구이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장어는 1㎏에 4마리면 4미, 5마리면 5미로 등급을 나누는데 향옥정은 그중에서 가장 큰 4미짜리 국산 민물장어를 사용한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향옥정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고기만 연구하러 다녔다. 가장 비싸고, 좋고, 맛있는 고기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김 관장은 "나는 비린 맛 때문에 장어를 안 먹었다. 그런데 향옥정의 장어를 먹어보니 비린 맛이 하나도 없이 고소하고 담백해 장어를 먹게 됐다"고 거들었다.
 
'최상급' 장어는 스토브에서 70~80% 초벌구이를 한 뒤, 연탄불 위에서 양념을 발라가며 굽는다. 장어에 연기가 배이지 않게 하면서, 향긋한 불 맛이 잘 스며들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구우면 양념이 타는 걸 막을 수 있다. 연탄불에 장어를 굽는 건 기술에 해당하는 것이라서 오 사장의 동생이 20년째 '구이 분야'를 맡고 있다.
 
장어 이야기로 한창 식욕을 돋우는 사이, 주인공인 장어구이가 나왔다. 먼저 나온 것은 소금구이였다. 한 눈에 봐도 두께가 상당했다. 흔히 봐 온 얇고 평평한 장어와 달리 울퉁불퉁 곡선 모양으로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었다. 장어 본연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 참기름장만 찍어 한 입에 넣어보았다. 장어구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양념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비린 맛이 전혀 없었고 장어 고유의 기름기 때문에 고소하면서도 담백했다. 김 관장은 "비린 맛이 하나도 안 난다. 정말 바삭하고 부드럽다"며 감탄했다.
 
그 다음에는 쌈을 싸서 먹어보았다. 깻잎 한 장, 상추 한 장, 쌈무 한 장에 장어 한 점, 생강 편채, 마늘, 땡초 장아찌를 넣었다. 장어는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자칫 물릴 수도 있는데 생강과 마늘, 매운 고추가 그런 점을 깔끔하게 잡아줬다. 참고로 생강은 소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장어와 같이 먹으면 좋다고 한다.
 
이어 양념장어구이가 나왔다. 소금구이와 마찬가지로 살이 통통했다. 지금까지 경험한 장어구이는 얇은 철판에 빨간 양념이 잔뜩 발린 채 나왔는데 향옥정의 장어구이는 따뜻한 그릇에 장어살이 보일 정도로만 양념이 발려서 나왔다. 대신 양념이 부족할 경우 양념장을 더 찍어먹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양념장을 더 찍지 않아도 간이 잘 맞았다. 오 사장은 "보통 장어구이에는 일본의 데리야끼 양념을 기본으로 쓰는데 우리는 직접 담은 태양초 고추장을 기본으로 쓴다. 거기에 특제 소스를 발라서 굽는다"고 설명했다.
 
향옥정의 장어는 크기가 커서 한 점씩 먹을 때마다 배가 금세 불렀다. 그런데도 은은한 불향기가 계속 유혹했다. 김 관장과 함께 장어 4인분을 깨끗이 비우고 나서 놋그릇에 정성스레 담겨 나온 밥 한 공기와 된장찌개까지 먹어치웠다.
 
그제서야 김 관장은 향옥정에서 밥을 먹자고 한 이유를 설명했다. 향옥정이 워낙 유명한 음식점이기도 하지만, 최근 김 관장이 '불암동 장어마을 이야기'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김해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문화기획사업으로, 김해를 대표하는 음식인 불암장어를 홍보하고 잊혀져가는 마을의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한 취지이다. 이번 8월부터 사업을 시작했는데,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김 관장은 김해의 명물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불암장어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김해뒷고기, 대동국수 등 김해를 대표하는 음식들이 여럿 있지만 사실 김해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음식은 불암장어예요. 30~40년 전 이 곳에서 장어를 잡아 팔아서 자식들을 길러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있는데, 장차 불암장어가 김해는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길 기대합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향옥정 / 김해대로 2765-19. 055-336-6283. 민물장어 1인분 2만 3000~2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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