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회 봉하음악회 막바지 무대화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이 떠오른 가운데 이승환이 노래를 부르자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칠순 맞아 봉하마을 북적
포장마차에선 열띤 ‘길거리 정치 포럼’
생전 녹음 육성 노래에 관람객 눈가 촉촉

노뺀 밴드 ‘고래사냥’ 열광 무대 막 열어
화면에 케이크 등장 다함께 “생일 축하♬”

사진 찍는 가족과 잠든 아기… 다양한 표정
귀갓길 밝은 뒷모습 내년 음악회 기대감



지난 27일 오후 3시. 해가 서쪽으로 서서히 기울어갔다. 너른 봉하 뜰의 벼들은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었다. 길가의 노란 바람개비들이 바람을 맞아 팽그르르 돌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뜀박질하는 어린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 길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제7회 봉하음악회'가 열리는 진영 봉하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나라는 미국 대사관이 대통령이여", "정부가 국민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거리 옆 포장마차에서는 낮부터 막걸리를 들이켠 사람들이 정치 토론을 벌였다.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포장마차 뒤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토리묵 무침과 막걸리 한 사발로 웃음꽃을 피웠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다시 한 번 더 서명해 주세요." 노란 리본을 단 세월호유가족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펜을 들었다.
 
"엄마, 여기가 대통령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앞에서 여자아이가 물었다. 어머니인 듯한 여성은 대답 대신 생가터 설명이 적힌 표지판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꺼내들고 기념촬영하기 바빴다. 생가 인근 기념관 앞에서는 <대통령의 말하기>의 저자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인회가 한창이었다. 책을 산 뒤 사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껏 들떠 있었다.
 

▲ 봉하먹거리장터를 가득 메운 방문객들. 판화 체험행사 장면.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사인회(사진 위쪽부터).

추모의집 앞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얼굴 판화찍기'가 한창이었다. 판화 체험을 진행한 김준권 씨는 어린이들이 판화 찍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줬다. 고사리 손으로 판화를 찍어낸 어린이는 기념사진을 남겼다. 추모의집 방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을 담은 사진과 옷, 자전거 등을 둘러봤다. "엄마가 기억하는 노 전 대통령은 참 용기있고 용감한 사람이었어." 어린 아들의 손을 잡은 여성이 아들에게 설명했다. 영상관에서는 가요 '작은 연인들'을 부르는 노 전 대통령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방문객들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졌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그리움은 봉화산 아래 노 전 대통령 묘역까지 이어졌다. 하얀 국화 한 송이를 든 한 중년여성이 꽃을 놓고 향을 집어 분향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여성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오후 5시. '친환경 봉하먹거리장터' 노란 천막 아래는 허기를 채우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길게 쭉 뻗은 탁자에 서로 마주보고 앉은 사람들은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수를 먹고 있었다. 홀로 자리에 앉은 여성은 면발을 돌돌 말아 한 입 넘긴 뒤 다른 한 손에 쥔 책을 읽고 있었다.
 
시작은 1시간이나 남았지만 의자 3000개는 모두 꽉 차 있었다. 의자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준비해 온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가족과 함께 인천에서 왔다는 구 모(37·여) 씨는 "봉하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다. 날씨도 좋고 자연 속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 기대가 크다"며 웃었다. 부산에서 온 김진화(32·여) 씨는 "매년 봉하음악회를 찾는다. 풀벌레소리와 상쾌한 공기가 음악회의 분위기를 더욱 깊게 만든다.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 노사모 밴드 '노뺀'의 열창.

오후 6시 30분, 노사모(노무현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밴드 '노뺀'이 봉하음악회의 문을 열었다. 흥겨운 음악에 관객석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는 뜨겁다 못해 펄펄 끓었다.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드는 젊은 엄마도 있었고, 딸아이를 무동 태운 아빠도 있었다.
 
공연장 무대에 불이 꺼졌다. 대형화면에 노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화면 속의 그는 밝게 웃으며 소리쳤다.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야~ 기분 좋다!" 관객들은 그 말에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야~ 기분 좋다"라고 따라 외쳤다.
 
김해 청소년들로 구성된 금관 5중주팀 '5피스'가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은 트럼펫, 호른, 트롬본, 튜바의 앙상블에 흠뻑 취해 어깨를 들썩였다. '부산종교평화회의' 공동대표 방영식 목사는 장엄하고 묵직한 성악을 선보였다. 애잔한 선율을 배경으로 대형화면에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띄워져 아련한 울림을 선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가 대형화면에 나타났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노짱~ 생일 축하합니다." 관객들은 함께 노래를 부른 뒤 "후~"하며 초를 껐다. 사회를 맡은 배우 윤희석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생일선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관객들은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창에 '노무현'을 입력했다. '노무현'이 검색어 1위에 오르자 관객들은 "우와~!"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 봉하음악회에 참석한 관객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하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근무하는 의경부대원들의 축하무대가 이어졌다. 제복을 입은 의경들이 가수 울랄라세션의 '아름다운 밤'을 노래하며 익살스러운 동작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고음 부분에서 음이 이탈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고 대열을 맞춰 열심히 춤을 췄다. 공연을 끝낸 이들은 "대장님! 휴가 주십시오"를 외친 후 재빨리 퇴장해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토크콘서트도 마련됐다. 무대에 유시민 작가와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가 등장했다. 이들은 '노무현의 가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천 전 대표가 '노 전 대통령과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물었다. 유 작가는 "인천월드컵경기장 준공 문제로 저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국가가 나서서 돈을 써야 한다고 했더니 노 대통령이 머뭇거리며 '큰일이네, 오전에 기자들한테 지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라고 했다. 내일 아침 다시 바꿔 말하면 된다고 했더니 '그럼 되겠네'라고 답하더라. 정치판에서 노 대통령처럼 단순한 사람은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천 전 대표는 "생일을 맞은 노 대통령에게 무슨 선물을 주고 싶은가"라고 다시 물었다. 이 이사장은 "통 크게 내년 정권교체를 선물하겠다"고 대답했다. 유 작가는 "노 대통령은 책을 좋아했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스 윌슨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 한 남성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봉하음악회는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희망을 노래하는 가수' 안치환이 무대에 올랐다.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 살다보니 외롭더라/ 니가 있어 웃을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우리 너무 취하진 말자/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구나"(오늘이 좋다 중에서)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가사에서는 삶의 애환이 묻어 나왔다. 정장 차림으로 먼지 날리는 바닥에 쪼그려 앉은 중년남성의 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는 듯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를 감상하는 사람들과 엄마 품에 안겨 잠이 든 아이들, 사진을 찍어 추억을 남기는 가족,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지인을 찾아다니는 사람들까지 음악회 속 풍경은 다양했다.
 
대구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는 이호영(36) 씨는 "올해는 사람들이 더 많이 온 것 같아 뿌듯하다. 이 순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짙은 어둠이 봉하마을을 감쌌다. 귀뚜라미가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며 작별 노래를 불렀다. 길어진 그림자를 밟으며 귀가하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 속에서 내년 봉하음악회의 기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김해뉴스 /김예린·배미진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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