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외국인 통장인 오오시마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첫 외국인 통장 오오시마 씨
20년 전 결혼해 회현동에 정착
꾸준한 봉사활동 덕 주변 인정


"주말에 동상동 외국인거리에 갔습니다. 저도 모르게 '와, 정말 외국인이 많네'라는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저도 외국인인데…(웃음). 이제는 정말 '한국 아줌마'가 다 됐나 봅니다. 부족한 게 많지만 '한국 아줌마'의 힘으로 15통에 도움이 되는 통장이 되겠습니다."
 
경남에서 외국인 주민이 가장 많은 김해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에 사상 처음 외국인 통장이 탄생했다. 일본 출신인 오오시마 기요미(51·여) 씨는 지난 23일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회현동의 15통 통장으로 선출돼 김해시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지난 7월 현재 김해의 외국인 수는 1만 8000여 명으로 경남 각 시군 중에서 가장 많다. 회현동은 방값이 싸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산다.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이 참여하는 아시아문화축제 등 각종 외국인 관련 행사도 매년 열린다. 오오시마 씨가 통장을 맡은 회현동 15통은 150여 가구에 240여 명이 사는 작은 동네다.
 
오오시마 씨는 1996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회현동에서 살게 됐다. 낯선 땅에 건너 온 그는 참가정실천운동본부, 세계평화여성연합, 김해시통역봉사단 등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참여한 봉사활동만 250차례를 넘는다. 주로 동참했던 봉사활동은 회현동·동상동·서상동 등의 경로당에서 청소를 하거나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돼 주는 것이었다. 해반천이나 시장골목 등에서 매달 열리는 환경정비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처음부터 봉사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사람들을 사귀게 됐고, 자연스레 봉사활동에 따라가게 됐다"면서 "경로당에 가면 별로 하는 일이 없어도 젊은 사람이 왔다며 어르신들이 좋아한다. 어르신들이 겪었던 어려운 일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많고 힘이 돼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오시마 씨는 '일제 강점기'라는 아픈 역사 때문에 난감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일부 어르신들로부터 "과거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했는지 아느냐. 일본이 정말 싫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그럴 때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경청만 했다. 그러면 그 어르신은 "일본은 싫지만 내 앞에 있는 오오시마는 좋다"며 웃었다고 한다.
 
오오시마 씨는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그는 "독도는 우리나라 땅"이라고 대답한다. "저에게 우리나라는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남편도, 딸도 한국인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살다가 죽어서도 한국에 묻힐 겁니다."
 
오오시마 씨가 통장이 된 것은 40년 동안 회현동 15통 통장이었던 박학봉 씨가 지난 7월 세상을 떠나면서다. 그는 박 씨 집에서 전세로 살고 있었다. 박 씨의 빈자리가 컸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오오시마 씨도 통장을 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통장 자리가 계속 비게 되자 주변 사람들이 평소 봉사활동을 많이 하던 오오시마 씨를 추천했다. 그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주변의 연이은 설득에 용기를 냈다. 회현동주민센터에 일본인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확인을 받은 뒤 통장직에 지원했다.
 
오오시마 씨는 "사실 회현동 15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통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자세히 모른다. 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도와줄 테니 해 보라고 했다. 이웃을 살펴보고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봉사라는 생각에 통장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오오시마 씨는 기왕에 통장직을 맡은 만큼 마을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통장으로서 회현동에서 흔히 만나는 외국인들과 김해시 사이에서 연결다리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통장은 주민들의 사정을 잘 알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최대한 마을을 많이 돌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겠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라서 친근감을 갖는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외국인 통장의 장점을 살려 외국인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통장이 되겠습니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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