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등록 이주아동인 '우연이(가명)'가 한 복지시설에서 외롭게 그네를 타고 있다.

사회복지시설 거주 ‘우연이’ 사연
베트남 엄마 숨져 출생신고 못해
서류상 존재 없이 5년째 무등록
복지 혜택 못 받아 어려움 시달려


김해의 한 아동복지시설에 우연(가명)이라는 남자 아이가 있습니다. 다섯 살이지만 출생 신고조차 안 돼 있습니다. 이름도 진짜 이름이 아닙니다. 심지어 성조차 없습니다. 우연이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엄마·아빠는 베트남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국적도 없습니다. 도대체 우연이는 무슨 이유로 '국적 불명의 투명인간'이 되고 만 것일까요.
 
우연이는 2011년 7월 창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었습니다. 엄마는 2008년 4월 한국에 왔다가 같은 나라 출신인 아빠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우연이가 생겼습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유부남이었던 아빠는 엄마를 외면해버렸습니다.

엄마는 혼자 우연이를 낳았습니다. 엄마는 베트남대사관에 출생 신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미등록이주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엄마는 우연이를 낳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엄마는 뒤늦게 폐결핵과 늑막염에 걸린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 교회에서 알게 된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창원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폐결핵은 감염성이 높은 질병이어서 엄마는 우연이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우연이를 김해의 아동복지시설에 맡겨야 했습니다.
 
엄마는 2년 뒤인 2013년 8월 건강을 회복했고, 우연이를 데려갔습니다. 그러다 두 달 후 엄마는 다시 우연이를 아동복지시설로 돌려보냈습니다.  우연이를 기를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설상가상'이라고 하는 가 봅니다. 엄마는 미등록 이주민 신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베트남으로 강제 출국 당했습니다. 엄마는 출생신고가 안 된 '미등록 아동'이어서 우연이를 베트남에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반드시 우연이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약속은 유언이 돼 버렸습니다. 엄마는 어린 아들을 머나먼 한국 땅에 남겨둔 채 베트남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연이는 엄마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안은 채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대개 아동복지시설에 넘겨진 아이, 즉 '기아'는 출생신고도 하고 등록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연이는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국사람으로 출생신고를 하거나 등록할 수 없습니다.
 
우연이는 미등록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교육, 사회복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아동복지시설은 우연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애를 먹었습니다. 우연이가 미등록 상태여서 보험에 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안전사고가 날 경우 심각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우연이를 받아주길 꺼렸습니다. 다행히 우연이의 딱한 사정을 알고 입학을 허가해 준 어린이집이 나타났습니다. 그 덕분에 우연이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동복지시설은 우연이를 외국인으로 등록하기 위해 우연이의 상황을 주한베트남대사관에 알렸습니다. 베트남대사관은 병원 출생 확인증과 엄마의 여권이 있으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세상을 이미 떠났기 때문에 여권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우연이가 '투명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입양이라고 합니다. 국내에 입양된 뒤 특별귀화를 신청하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연이는 앞으로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합니다. 지금 같은 상태라면 우연이는 그 어떤 법적·행정적 활동도 할 수 없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초등학교·중학교에는 갈 수 있지만, 고등학교·대학교에는 진학할 수 없습니다. 아동복지시설의 다른 아이들은 후원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우연이는 미등록 상태여서 후원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우연이는 이렇게 평생 '투명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우연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2, 제3의 우연이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까요.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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