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김해민속소싸움대회 삼정동서 진행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관객 몰려

주인 독촉에 뿔 맞댄 소들의 혈전 이어져
살은 찢어지고 뿔은 갈라지고 괴로운 싸움
소들의 울부짖음에 관중들은 되려 환호만

트로피 받고 기뻐하는 ‘우주’ 환호성 뒤로
지친 소의 무덤덤한 표정은 쓸쓸해 보일 뿐


지난 1~5일 삼정동 JW웨딩홀 뒤편 주차장.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떠다녔다. 기대감에 부푼 사람들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아끄는 주부에서부터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40~50대 남성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성격은 다양했다. 한쪽 구석에서는 소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반대편에서는 시뻘건 소고기국이 펄펄 끓고 있었다. 주차장 부지에는 임시 관객석이 마련됐고, 가운데에는 투우장이 세워졌다. '제23회 김해전국민속 소싸움 대회' 현장이었다.
 
"옳지~ '대타'야 머리로 밀어붙여!"
 
"으랏차! '으뜸'아 뿔걸이 공격 한 번 해 보자!"
 

▲ 소 두 마리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투우장에서는 1000㎏급 싸움소 '대타'와 '으뜸'이 대결을 벌였다. 우주(소 주인)들은 소와 1m 거리를 유지한 채 큰 목소리로 공격을 지시했다. 상대방의 뿔을 걸어 머리를 맞댄 대타와 으뜸은 온 힘을 다해 서로를 밀어붙였다. 상대를 노려보느라 벌겋게 충혈이 된 큰 눈은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부릅뜨고 있었다. 우주들은 큰 소리로 소들을 다그쳤다. 한바탕 폭우가 지나간 뒤라 투우장이 뻘밭으로 변한 탓에 소들의 체력소모는 더 커 보였다.
 
"소들은 상대방의 약점, 전술을 알고 기술을 구사합니다. 나이가 많은 소들이 기 싸움을 즐겨하는데요. 양 선수 서로 약점을 찾아보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활기찬 경기중계는 음식에 조미료를 뿌린 듯 관전의 맛을 더했다. 대타와 으뜸이의 혈투로 관중석의 열기도 더해갔다. 뿔을 걸며 기술을 시도하는 대타의 공격에 으뜸이는 경기시작 19분 만에 등을 보이며 줄행랑을 쳤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뒤섞여 나왔다. 소들의 싸움이 치열할수록 그에 따른 관중들의 반응은 더 뜨거워졌다.
 

▲ 싸움을 마친 뒤 고통스러워하는 소.

"아이고 많이도 찍혔네…. 괜찮다. 살이 질겨서 안 곪고 금방 낫는다. 약 발라주꾸마."
 
우주 우경일(35·경북 청도) 씨는 경기 중 뿔에 받혀 살이 벌어진 소를 살펴본 뒤 소독약과 연고를 뿔과 상처 부위에 꼼꼼히 발랐다. "음머어어." 소는 패배의 서러움인지, 상처의 고통인지 모를 울부짖음을 연신 질러댔다. 핏발이 선 눈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경기에서 이긴 소의 주인 최인규(58·경남 의령) 씨는 소의 등에 시원한 물을 뿌려주며 미소를 지었다. 최 씨는 "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3일 전에 와서 준비했다. 평소 타이어 끌기와 모래밭 달리기, 산 오르기 등 훈련도 철저히 했다"고 말했다.
 
경기장 주변에는 격렬한 소들의 움직임을 담아내려는 아마추어 사진사들이 대거 모였다. 촬영 장비를 꺼내 셔터를 눌러대는 손길이 분주했다. 이들은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초호화 카메라에 대항하듯 휴대폰을 찰칵거리는 관중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안 보입니다! 좀 비켜 주이소!" 관객석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발끝을 든 채 경기를 구경하다 다른 관객들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했다.
 

▲ 관객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소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소싸움장에서 소고기국을 파는 장터(사진 위에서부터).

소싸움은 이어졌다. 소는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우어어엉~" 하며 높은 소리를 냈다. 장내 아나운서는 "이걸 '고래 소리'라고 부른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소들의 혈전에 관객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우주는 지친 기색을 보이는 소에게 "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불호령을 내리기도 했다. 애타는 주인의 마음을 읽은 소는 울부짖으며 다시 뒷다리에 힘을 줬다. 소의 이마에는 빨간 핏빛이 돌았다. 그 모습을 본 한 관중이 웃으며 떠들었다. "저 소가 어제 뿔로 상대 소의 목을 콱 찔렀다 아이가. 그래서 피가 나고 수의사가 와서 꼬맸다 아이가."
 
경기 시작도 하기 전에 등을 보이며 냅다 도망가는 소에서부터 20분간 신경전을 펼치는 소들까지 개성도 다양했다. 단단한 뿔로 상대 소의 옆구리를 공격하는 소에서부터 체중을 활용해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소에 이르기까지 다들 제각각 독특한 기술로 상대방을 위협했다.
 
5일 오후 태백급 결승전에는 '깡패'와 '만득'이가 출전했다. 둘은 라이벌이었다. 앞선 두 차례 경기에서는 만득이가 모두 이겼다. 깡패가 만득이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만득이가 뿔걸이에서 빠져나와 거꾸로 깡패를 밀어붙였다. "우와~~~." 관중들은 넘치는 긴장감에 앉아서는 볼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만득이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깡패의 승리였다. 깡패의 주인은 소에게 큰 절을 올렸다. 깡패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관중들은 환호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닷새간의 경쟁에서 소 3마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대회는 끝났다. 우주들은 소 모양의 트로피를 받고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장내 아나운서는 "전통스포츠인 소싸움이 더 발전하길 바란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기뻐하며 어쩔 줄 모르는 주인을 쳐다보는 소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들에게 우승, 상금, 트로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지 어서 경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주인이 썰어주는 짚풀을 배불리 먹고 긴 잠을 자는 게 그들의 행복이 아닐까. 트럭에 실려 돌아가는 소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김해뉴스 /조나리·배미진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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