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만 갈대 군락은 철새들에게는 훌륭한 서식처이자 은신처다. 사진은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 전경.


 

여수·고흥반도 에워싼 항아리 모양
개펄 형성과정 볼 수 있는 유일 연안습지

2003년 보호구역 지정 후 복원 시작돼
주민·행정·시민단체 뜻모아 문제 해결

방문객 1400만 명에 경제효과 1700억
관광객 원도심 이끌기 위한 방안도 추진



김해에서 자동차로 남해고속도로를 2시간 정도 달리면 우리나라의 대표 연안습지인 순천만이 나온다.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다. 순천만 일대의 대대들판에서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새들이 흰 날개를 퍼덕이며 논두렁을 어슬렁거렸다. 마치 순천만 방문을 환영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우리나라 남해안의 중앙에 위치한 순천만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에워싼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다. 순천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상사면에서부터 흘러 온 이사천이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하구까지 약 3㎞ 길이의 강을 따라 5.6㎢(170만 평)의 갈대와 22.6㎢(690만평)의 개펄이 형성돼 잇다.
 

▲ 방문객들이 순천만 갈대밭 탐방로를 걷고 있다.

순천만은 개펄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연안습지다.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쌓인 퇴적층에 염습지가 생기고, 이 위로 갈대, 함초 같은 습지식물들이 영양분을 받아 쑥쑥 자라고 있다. 갈대와 함초 군락 너머로 개펄이 생기고 이는 다시 모래밭으로 바뀐다. 둥근 원을 그리는 갈대 군락은 순천만을 찾아온 새들의 은신처가 돼 주고 새들은 대대들판을 비롯한 인근의 친환경 논에서 먹이를 구한다. 그 덕분에 순천만은 겨울이 되면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를 비롯해 검은머리갈매기,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검은머리물떼새 등 희귀 철새들의 낙원이 된다. 순천만에서 찾을 수 있는 철새만 총 230여 종으로, 이는 우리나라 전체 382종 조류 수의 절반이나 된다.
 
순천시는 전담부서인 순천만보전과를 두고 순천만을 관리한다. 올해 순천만 보전 등에 드는 사업비만 100억 원에 이른다. 순천만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장어탕과 짱뚱어탕 등을 판매하는 여행명소에 불과했다. 이후 1996년 순천 시내를 거쳐 순천만으로 흘러가는 동천 하도정비 및 골재 채취사업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1998년 골재 채취사업 허가는 취소됐고, 순천만은 2003년 해양수산부로부터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2008년에는 순천만 습지보호지역 인근을 생태보전지구로 지정하고 순천만 인근의 음식점과 매점, 주거시설 등을 순천만 외곽으로 이전시켰다. 이 뿐 아니라 동천 일대 농경지 104㏊, 순천만 인근 나대지 13.7㏊를 매입해 습지로 복원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순천만을 찾아오는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순천만 인근의 전신주 282개를 철거하고 지중화 공사를 했다. 지난 4월부터는 순천만 보호를 위해 순천만습지 주차장을 이용하는 차량을  3시간 당 500대로 한정하는 주차장 예약제를 운영하고 있다.

▲ 순천만에 설치된 데크형 산책 탐방로.

순천만보전과의 황선미 연구사는 "순천만을 복원하고 보호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이 정말 심했다. 일부 주민들은 갈대밭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습지보전조례를 제정하고, 민관협의체 '순천만습지위원회', 순천만 주민 참여형 포럼인 '순천만 에코톡' 등이 활성화하면서 주민, 시민단체, 행정이 소통하고 함께 문제점을 해결했다. 행정에서 꾸준히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고 그러면서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금의 순천만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순천시와 주민, 시민단체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순천만을 찾은 관광객은 순천시 인구 28만 명의 약 50배인 1432만 명에 이르렀다. 순천만으로 인해 약 1700억 원의 경제적 효과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이는 여수시와 광양시가 산업단지, 대형 건설회사 등을 유치해 약 600~700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누리는 데 비하면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자연생태관에는 어린이집에서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이 일렬로 앉아 순천만 갈대의 성장과정을 담은 영상을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었다. 순천만은 자연생태관, 자연의 소리 체험관, 순천만역사관, 흑두루미 소망터널 등 다양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자연생태관은 순천만이 만들어지는 과정, 순천만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는 생물들의 가치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자연생태관 입구에서는 순천만의 상징인 흑두루미를 5배 확대해 놓은 모형이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 순천만을 찾은 철새들.

순천만 박영례 자연생태해설사는 "매년 10월이 되면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흑두루미가 겨울을 나기 위해 순천만을 찾는다. 순천만이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의 낙원이 된 것은 개펄의 게, 갯지렁이, 조개 등 다양한 먹이 자원 덕분이었다. 1997년 70마리에 불과했던 흑두루미 개체 수는 지난해 1500마리로 늘어났다. 자연생태관에서는 흑두루미를 비롯해 순천만의 다양한 생태계 구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 방문객이 순천만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자연생태관 뒤로 난 탐방로를 따라 푸른 갈대가 춤을 추는 갈대밭으로 향했다. 30도가 넘는 날씨 때문에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에 금세 땀이 식었다. 갈대밭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갈대는 해풍을 따라 누웠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바람을 따라 서걱이는 갈대 소리는 방문객을 위해 부르는 갈대의 노래 같았다. 갈대밭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새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방문객들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며 데크 길을 따라 순천만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로 향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김정희(58·여) 씨는 "날씨는 덥지만 갈대가 부딪치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덕에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이곳에서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리고 간다"며 즐거워했다.

▲ 자연생태해설사가 순천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순천시는 생태관광의 범위 확장 차원에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순천만 뿐 아니라 시의 원도심까지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황 연구사는 "순천만은 매년 5월과 10월, 11월에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농사를 짓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가 많이 막힌다. 관광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순천시민들의 삶을 지켜주는 것이다. 시는 논을 매입해 습지를 복원하고,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순천만관광협의회'는 관광객의 동선을 도심지로 유도하기 위해 먹거리, 잠자리 등 직접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도심 주민들의 경제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연구사는 "순천만이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단체와 국내외 NGO단체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용했기 때문이다. 행정력만으로는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는 환경 관련 시민단체가 이끄는 영국 런던습지센터, 독일 뤼슈테트 황새마을과 달리 행정의 주도 하에 습지복원, 센터 운영 등이 이뤄진다. 이 때문에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 마다 습지복원 등의 사업이 표류하거나 다시 시작됐다.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용과 수용이다. 행정이 지역 시민단체들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생태도시를 만드는 건 어렵다. 장기적인 계획과 철학을 가져야만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해뉴스 /순천=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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