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을 앞둔 지난 8일 진영 구시가지 도로가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외버스정류장~옛 진영역 구간 1㎞
1990년대 후반까지 지역 중심지 자처

신시가지에 새 상권 개발되자 침체일로
파는 물건보다 버리는 게 더 많기도
점포 300여 곳 중 40여 곳 문 닫아

2011년 개설 진영전통시장 ‘개점휴업’
전기료 아끼려고 형광등 끄고 영업
가게 세입자 못 구해 건물주도 속태워



추석을 앞둔 지난 8일 진영읍 여래로사거리. 명절 대목 앞인데도 구시가지 일대 상가에는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었다. 도로 갓길에서는 좌판에 호박, 고사리 등을 펼쳐놓은 할머니들이 손님을 찾느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진영 구시가지 일대를 둘러봤다.
 
진영시외버스정류장에서 옛 진영역까지 약 1㎞에 이르는 진영 구시가지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진영의 중심지를 자처했다. 그러나 1999년부터 김해대로 건너편에 진영1·2택지지구 즉, 신시가지가 개발되고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구시가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동안 진영시외버스정류장~옛 진영역 사이에 있던 점포 300여 곳 중 40여 곳이 문을 닫았다.
 

▲ 옛 진영역 인근 상가의 셔터가 굳게 닫혀 있다.

오후 5시. 김해의 다른 지역이라면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주부들이 대거 거리로 나설 시간이다. 그러나 진영시외버스정류장 일대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말고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상인들은 자포자기 한 듯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서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일부 상인들은 가게 앞에 나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30년 째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신 모(61) 씨는 "장사하는 재미가 없다. 5년 사이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 준비물을 문구류 납품업체에 단체로 주문한다. 대형매장에 가도 문구용품이 넘쳐난다. 이런 구멍가게에 누가 오겠는가. 겨우 혼자 먹고 살만큼만 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래로사거리 일대에서 10년 째 화장품가게를 운영해 왔다는 김 모(48·여) 씨는 "3~4년 전만 해도 오후 10시까지 가게 문을 열었다. 요즘은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다. 택지개발로 신도시가 생긴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매출이 50% 이상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반찬가게 주인 김 모(58·여) 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매출이 형편없다. 파는 것보다 버리는 반찬이 더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채소를 파는 노점상들의 한숨소리는 더 깊었다. 30년 째 노점상을 했다는 박 모(86·여) 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인도에 앉아 채소를 판다. 모두 직접 농사지은 것들이다. 채소가 안 팔려 손녀 용돈 줄 돈도 못 번다"고 아쉬워했다.

▲ 진영시외버스터미널 전경.

진영 구시가지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북적였던 진영전통시장의 오일장도 지난 6월 진영신도시에 약 3000㎡ 규모의 대형매장이 들어선 이후로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30여 개의 점포가 입점한 시장에서 문을 연 가게는 단 4곳밖에 되지 않았다. 상인들 중 일부는 장기만 두고 있었다. 멀뚱멀뚱 TV를 쳐다보던 신발가게 주인 강 모(76·여) 씨는 불평을 쏟아냈다. 그는 "50년 동안 신발을 팔았다. 김해시가 대형매장 허가를 내준 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예산을 들인다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문을 열긴 했지만, 실상은 앉아서 놀고 있다"고 토로했다.

▲ 오지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진영전통시장 상인들.

진영전통시장 끝 지점. 2011년에 점포 33곳이 들어올 수 있도록 지은 진영상설시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현재 19곳만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장사가 되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였다. 2013년 상인대학을 열었던 공간(<김해뉴스> 2013년 5월 15일 8면 보도)에는 녹슨 의자와 먼지 쌓인 짐들만 놓여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상인들은 잠에 빠지거나 그나마 가끔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야채를 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상인 김 모(60·여) 씨는 "진영신도시에 대형매장이 들어선 뒤 진영상설시장에서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어패류를 팔던 상인들은 버리는 게 더 많다며 아예 장사를 접었다. 손님이 없으니 오후 7시만 되면 문을 닫는다. 이대로 계속 가면 장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상인 안 모(44) 씨는 "이곳 장사를 포기하고 신도시에 가게를 열고 싶다. 하지만 가게 임대료만 한 달에 100만 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문을 굳게 닫은 가게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옛 진영역 일대는 인근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기계 소리만 시끄러웠다. 인근 점포 곳곳은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거나 텅 빈 채 방치돼 있었다.
 
상인 김 모(55) 씨는 "옛 진영역 일대의 상권은 완전히 죽었다. 약국, 음식점 등은 오랜 단골만 보고 장사를 한다. 4~5년 전부터 문을 닫은 상가가 한둘이 아니다. 임대를 내놔도 찾는 사람이 없다. 상인들 입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정 모(72·여) 씨는 "인근에 새 도로가 생겨나면서 진영 구시가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줄어들었다. 전기세를 아끼려고 형광등도 켜지 않은 채 장사한다. 구시가지는 죽은 거리"라고 자조했다.

▲ 거리의 노점상.

참조은부동산 관계자는 "진영시외버스정류장, 여래로사거리 인근을 제외하고는 장사가 거의 안 된다. 구시가 내의 도로가 좁은데다 주차공간도 부족해 노년층을 제외하고는 찾는 사람이 없다.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상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빈 가게가 있어도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건물주도 속만 타들어간다"고 전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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