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석장 때문에 흉하게 절개된 상동면 매리의 산 앞에 공장이 들어서 있다. 산 절개면에는 방재시설이 부족해 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낙동강 하류 산자락 소감·포산마을
1980년대 석산 개발 이후 환경 악화

레미콘에 조선부품·금속·화학 공장까지
10~20명 근무 소형업체 수백 곳 난립

오염·소음·오물투척 위험에 늘 시달려
시 무관심에 주민들 삶의 터전 망가져




'고속도로 교각 아래에 왜 저렇게 많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을까.'
 
평소 차창 밖 풍경을 유심히 살피는 사람들은 대구부산고속도로 상동면 구간을 지날 때마다 한번쯤 갖게 되는 생각이다. 차들이 질주하는 교각 아래 공장지대에 자연마을이 있을 거라곤 상상하긴 힘들다. 하지만 이곳에는 소감마을과 포산마을이 있다.
 
대구부산고속도로 상동1터널과 이어진 고가도로 양 옆에는 상동면 매리의 두 마을이 있다, 신어산 방향이 소감마을, 낙동강 방면이 포산마을이다. 포산마을의 경우 상동1터널 너머의 모산, 새들안까지 포함된다. 소감마을 원주민들은 주로 산딸기 농사를, 포산마을의 경우 논 농사를 많이 짓는다.
 
김해시에 따르면 매리에는 공장 195개 곳이 입주해 있다. 하지만 미등록 영세공장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자료는 없다. 신어산에서 발원한 소감천 양쪽으로 제조업체와 레미콘 공장들의 밀집도가 높다. 소감천 왼쪽 산기슭에도 공장들이 있고, 그 안쪽에는 경부공영이 개발 중인 채석단지가 있다.
 
소감마을은 원래 낙동강 하류 산자락에 형성된 자연마을이다. 이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옛 자료에는 '1944년 소감마을 안골에 저수지를 팠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저수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거 마을 뒷산에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의 명당이 있어 3대 후에 현인과 장수가 나온다고 했지만, 현재 그곳에는 채석장 부지 위에 들어선 공장과 다시 채석을 시작하는 채석단지가 들어섰을 뿐이다.
 

▲ 공장들이 소감·포산마을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300명 수준이던 소감마을 주민은 현재 101가구 192명으로 줄었다. 환경이 나빠진 탓에 고향을 떠난 주민이 많은데다 홀로 어르신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소감마을 염복선 이장은 "주소지만 이 곳으로 해놓은 사람들이 많다. 이전부터 살던 원주민은 50가구 정도다. 예전엔 벼농사도 지었지만 공장이 들어오면서 소감천 수량이 줄어 이젠 산딸기 농사만 짓는다. 나이 든 어르신을 제외하고 25가구가 100여 평씩 산딸기를 재배한다"고 말했다.
 
아래 쪽 포산마을의 경우 주민 수(175명)는 소감마을과 비슷하지만 나름대로 번화한 편이다. 매리에 입주한 공장들을 목표로 주유소, 은행, 식당, 하나로마트 등이 들어와 형성된 작은 상권도 있다. 2010년대 초반 이곳에 들어왔다는 한 상점 주인은 "영세공장이 밀집한 위쪽 신촌이나 소감마을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 비중도 적다. 출·퇴근하는 한국인 직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환경, 교통 문제에 시달리기는 이 곳도 마찬가지다. 포산마을의 한 주민은 "석산 때문에 덤프트럭이 지나다니는데다 공장을 오가는 레미콘 트럭도 많아 항상 분진이 심하다"고 말했다. 가끔 이곳을 찾는다는 한 택시기사는 "갓길이나 인도가 없어 트럭들과 겹칠 때면 사고가 날까 겁난다. 수시로 지나다니는 화학물 운반차와 마주칠 때면 아찔한 생각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두 마을이 옛 모습을 잃게 된 것은 채석장이 들어오면서부터다. 1978년 석산개발 허가를 받은 원동개발이 1981년부터 18년 간 채석장을 운영했다. 원동개발이 부도를 낸 후 마리나개발이 채석장 부지를 사들여 공장 부지로 팔았다. 2009년부터는 경부공영이 옛 채석장 인근 부지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2014년 산림청의 채석단지 심의를 통과한 후 옛 채석장 자리 안쪽에서 채석을 진행하고 있다.
 
원동개발이 채석장을 운영하자 골재를 조달하려는 레미콘업체들이 소감마을과 포산마을로 들어왔다. 1980년대 중반 동양레미콘이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분진, 소음을 유발하는 레미콘업체들이 잇따라 자리를 잡았다. '2009년 경남 레미콘 업체현황'에 따르면 매리에는 레미콘업체 다섯 곳이 있었다. 이 중 대동레미콘이 성신양회 부산공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상동산업이 문을 닫아 다른 업체가 운영하고 있을 뿐, 지금도 레미콘 공장들은 가동되고 있다.

▲ 대구부산고속도로 아래에 빼곡하게 들어선 공장들.

레미콘업체들이 자리를 잡은 뒤 주변에 가구, 조선부품, 금속, 화학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공장과 창고 등이 들어왔다. 대륙프린지공업·진영금속 등 중견업체와 대신택배 부산물류센터도 있지만, 제조업체 대부분은 10~20명이 일하는 소규모 공장들이다.
 
이렇게 3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된 난개발은 결국 매리의 모습을 180도 바꿔 놓았다. 포산마을에는 새들안부락과 모산 부락 사이에 논 두 블럭이, 소감마을에는 산비탈의 산딸기 밭 일부만 남았다. 여기에 2006년 개통한 대구부산고속도로가 두 마을 위를 지나게 돼 포산마을과 소감마을은 땅뿐만 아니라 공중으로부터도 소음, 안전사고, 오물 투척 등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공장의 인·허가권자이자 채석장의 관리감독을 맡은 김해시의 무관심과 방치 탓에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30년 동안 서서히 망가졌다. 이렇게 속앓이를 하는 동안 체념이 몸에 밴 마을 주민들의 아주 작은 민원 하나도 외면하는 게 현재 김해시의 모습이다.
 
소감마을의 한 원주민은 "농사 짓는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었겠나. 이미 시에서 허가를 다 내 줘서 공장과 석산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다시 좋아지겠나"라고 개탄했다. 소감마을 염복선 이장은 "1998년에 신촌마을로 향하는 우회도로가 생긴 뒤 버스정류장이 그 앞으로 이전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마을 어르신들은 버스를 이용하는 일을 힘들어한다. 상동면주민센터에 가서 여러 번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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