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림면 어병마을 주민 김종성 씨가 최근 발간한 김관 관련 서적을 설명하고 있다.

김종성 씨 <문정공 김관 적록> 발간
공무원 퇴직 이후 선조 연구 시작
“김해김씨 후손들 자긍심 주고파”


임금으로부터 병풍을 하사받아 '어병(御屛)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제공했던 고려시대 학자 문정공 김관의 후손이 10여 년 동안 연구 끝에 조상의 행적을 기록한 책을 발간했다.
 
한림면 병동리 어병마을에서 4대째 살고 있는 김종성(68) 씨는 최근 김수로왕 49세 후손 김관과 김해의 역사를 담은 <김해와 문정공 김관선생 적록>을 펴냈다. 이 책은 '김해와 김관이 후대에 미친 영향 등 연구결과', '김해에서 김관의 존재적 의미와 향후 과제'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김 씨는 김해에서 초·중·고교를 마치고 경북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뒤 경북도에서 30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가락국 김수로왕릉 숭안전 참봉, 가락중앙종친회 집행이사, 김해김씨 삼현파 중앙회 집행이사 등을 역임했다.
 
김 씨는 2007년 정년퇴직한 이후 본격적으로 김관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조상이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족보, 신도비(神道碑), 재실 등을 제외하고는 조상인 김관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을 찾아볼 수 없었다. 후손들에게 김관의 행적을 좀 더 많이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어병마을에서 태어난 김관(1250~1345)은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왕의 49세손이다. 김수로왕의 13세손인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 사군파, 삼현파 중 삼현파에 속한다. 그는 고려시대 고종 37년(1250년)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던 중 충렬왕으로부터 병풍을 하사 받았다. 이후 사람들은 김관의 고향을 어병마을이라고 부르게 됐다.
 
김 씨는 "이번 학술연구는 김관이 어병마을과 고려 조정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를 위해 창원 유등리 저산재와 저산서원 등에 수록된 김관의 행장을 살펴 봤다. 고려 말 불교정책을 타파하기 위해 김관이 은둔생활을 했던 무릉산과 저복산에서의 활동을 구체화했다"고 밝혔다.
 
김 씨가 책에 서술한 내용에 따르면 김관은 충렬왕 당시 문란했던 불교 개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왕에게 불교 배척을 건의했다. 충렬왕이 이를 듣지 않자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 내용은 지금까지 다른 문서에 수록되지 않았다. 김관은 또 고려 후기의 문신 안향(1243∼1306)과 함께 유학 숭상에 앞장섰다. 1289년 10월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과 함께 중국 연경에서 <주자전서>를 읽고 이를 손으로 베껴오는 등 학문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김관은 원종 10년(1269년) 임연, 임유무 부자가 원나라와의 강화에 반대하면서 왕을 폐위하려 하자 송송례, 홍문계 등과 더불어 임유무 일당을 제거하는 데 힘을 보탰다. 1306년 안향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충숙왕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유학진흥 정책을 건의하기도 했다.
 
김 씨는 "조상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김해김씨 후손들이 자긍심을 느끼길 바란다. 앞으로 김해김씨 종친회 등에서 김관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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