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헌관을 맡은 허성곤(가운데) 김해시장이 대성전 공자의 신위에 술을 올리고 있다.

행사 하루 전 ‘제수진설’로 대제 준비
생명 존엄 기리는 의식 뒤 돼지 도축
‘우팔두 좌팔변’ 원칙 제물 구분 배치

제관 임명 창방으로 행사 본격 시작
초헌관·아헌관·종헌관 차례로 향과 술
전통문화·예법 진수 향유하는 시간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김해향교의 정문인 홍살문(붉은 칠을 한 나무문) 앞에 돼지 한 마리가 다리가 묶인 채 누워 있었다. 돼지는 몸을 비틀면서 "꾸웨에엑~" 굉음을 내뱉거나 가쁜 숨을 몰아쉬기를 반복했다.
 
돼지의 몸부림 뒤로 예화를 신고 제례복을 차려 입은 유림들이 하나 둘 홍살문을 지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돼지를 쳐다보며 "오늘 잘 부탁한다", "생각보다 크네"라며 한 마디씩 던졌다. 유림들의 말을 들은 돼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목소리를 줄이며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 돼지 성생례 장면.

유림들은 다음날인 27일 공자탄신일을 맞아 열리는 '추계석전대제(秋季釋奠大際)'에 앞서 제물을 제사상에 놓는 제수진설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석전대제는 성균관이나 향교의 대성전에서 공자 등 25명의 선성선현(先聖先賢)의 위패를 모셔놓고 지내는 제사 의식이다. 선성선현 25명은 5성위, 동방(문묘) 18현, 송나라 2현으로 구성된다. 5성위는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다. 문묘 18현은 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이황, 이이, 송시열 등이다.
 
석전대제는 해마다 봄, 가을에 봉행한다. 석전대제의 '석(釋)'은 차려놓는다는 뜻이고, '전(奠)'은 술의 형상인 '추(酋)'와 받침대의 모습인 '대(大)'가 합쳐진 글자다. 석전은 '정성스레 빚어서 잘 익은 술을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제수를 차리는 유림들, 대성전 앞에서 유림들이 사배를 드리고 있다(사진 위에서부터).

유림들은 풍화루를 건너 김해향교의 중앙에 있는 명륜당 안에 모여 앉았다. 제례복의 옷고름을 다시 묶고, 머리를 정갈하게 가다듬기도 했다. "성생례(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의례)를 먼저 치르고 점심을 간단히 드신 후 제수진설을 시작합시다." 집례자가 일정을 설명했다.
 
다시 향교 앞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돼지를 홍살문 오른편에 있는 성생대에 올리려 하자 돼지가 아우성을 친 것이었다. 조희욱 수석장의는 "제사에 올리는 제물은 아무 곳에서나 도축해서는 안 된다. 대리석으로 만든 성생대에 올린 뒤 제관이 직접 제물의 신선도와 질을 살피고, 생명의 존엄을 기리는 의식을 치른 후 제단에 올린다"고 설명한 뒤 성생대 옆에 섰다. 집례가 향례의 순서가 적힌 홀기(笏記)를 읽자, 아헌관 노구현 유림과 종헌관 이병태 자문위원이 차례로 돼지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제물이 깨끗한지, 상처는 없는지, 병은 없는지 등을 살폈다. 이어 유림들이 모두 성생대 주변에 둘러서서 제물에게 조의를 나타내며 엄숙하게 두 손을 모았다.
 
성생례가 끝나자 돼지는 동재(東齋·학문을 닦는 선비가 기거하는 기숙사) 옆으로 옮겨졌다. 도축자는 돼지를 단단히 밧줄로 묶고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돌을 괸 뒤 도끼를 치켜들었다. "휭~" 하는 바람소리를 내며 도끼날의 뒷면으로 돼지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쳤다. 돼지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선홍빛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오후 1시, 식사를 마친 유림들이 다시 향교로 모여들었다. "여기를 잘 보세요. 포와 대추는 오른쪽, 무는 왼쪽입니다." 집례자와 찬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 이제 쌀을 한 되씩 나눠 담아 오성제단에 올리세요. 수수는 쌀 왼쪽에 놓으면 됩니다."
 
대성전은 분주한 움직임으로 바빴다. 한 편에는 쌀, 수수, 차조 등 곡물 자루가 놓여 있었다. 대추, 호두, 밤 등 견과류는 소쿠리에 담겨 있었다. 오성제단의 제수를 먼저 차린 후 송나라 2현의 제수와 우리나라 학자 '18현'의 제수를 챙겼다. 진설을 할 때는 '우팔두 좌팔변'의 원칙에 따라 마른 제물과 젖은 제물을 구분해 배치했다.
 

▲ 행사에 앞서 손을 씻는 허 시장, 여성 유림들의 헌다례(사진 위에서부터).

이어 위패가 제자리를 잡았는지, 제수에 착오가 없는지, 초와 성냥이 빈 곳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유림들은 마지막으로 바닥에 떨어진 곡물을 빗자루로 쓸어 담고 대성전의 문을 걸어 잠갔다. 유림들은 "내일을 기약합시다."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만반의 준비를 마친 김해향교에서 '추계석전대제'가 거행됐다. 원로 유림과 지역 인사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두꺼운 도포를 입은 유림들과 금관제복을 입은 헌관들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유림들은 향교 문을 들어서기 전에 '시도소'라는 입구에서 명함을 내거나 이름을 적었다. 이를 '시도기'라 했다.
 
명륜당 한 쪽에서는 화려한 '당의(唐衣·조선시대 여성들의 예복)'를 갖춰 입은 여성 유림들이 옷과 머리를 매만졌다. 뽀글뽀글한 짧은 파마머리에 원통형의 전통 족두리를 얹은 모습이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모양새였다. 명륜당에는 일찌감치 헌관과 집사, 유림 들이 앉아 있었다. 서로 말을 섞지 않았고 눈빛 또한 미동이 없었다. 자기 자리를 찾는 한 여성 유림의 발걸음 탓에 삐걱대는 나무 바닥 소리가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돌돌 말린 긴 하얀 종이가 펼쳐지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례를 맡은 조희욱 수석장의가 빽빽하게 채워진 글자에 곡조를 섞어 '부르기' 시작했다. 석전의 소임을 임명하는 창방(唱榜)이 시작된 것이었다. 마치 출석을 부르듯 이름이 거명되면 다들 재빨리 "네"라고 대답했다.
 
이날 제례의 초헌관은 허성곤 김해시장, 아헌관은 노구현 유림, 종헌관은 이병태 자문위원이 맡았다. 대개 대표 제관인 초헌관은 고을의 '수령'이, 다른 제관은 원로 유림이 맡는다. 창방이 끝나자 헌관과 제사, 유림 들은 줄을 맞춰 대성전으로 향했다. "오늘 더워서 욕 보겄다." 한 유림이 이동하며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가지고 계신 휴대폰은 꺼 주시고 거동에 불편이 없으면 안경은 벗어 주시길 바랍니다." 유림들이 대성전 마당에 깔린 흰색 천을 따라 길게 늘어서자, 안내방송이 이어졌다. 집례는 홀기를 노래 부르듯 가락에 맞춰 읽었다. 절을 하고 손을 씻는 등 모든 행위는 집례의 창홀에 따라 시작되고 끝맺음됐다. 김경규 장의는 "대성전에 출입할 때에는 목례를 하고 오른 발을 먼저 넣어야 한다. 나갈 때는 왼발이 먼저다. 대성전 중앙계단 길은 신(神)이 다니는 길이므로 절대 다녀선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선성선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대성전에서는 은은한 나무 향과 날것으로 진설된 제수의 냄새가 뒤섞여 풍겨 나오고 있었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은 술잔을 올리기 위해 손을 씻었다. 종류가 다른 3개의 술 항아리가 술잔에 차례대로 올려졌다. 이들은 차례로 향을 피우고 경건히 술을 따라 오성(五聖)에게 올렸다.
 
이어 차를 올리는 헌다례(獻茶禮) 의식이 시작되자, 다소곳하게 있던 여성 유림들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차를 달이는 몸짓 하나하나가 단아했다. 헌다례에서도 차를 달이고 옮기고 올리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었다. 헌다례에 참가한 여성 유림들의 눈길은 모두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제관들이 대성전에서 제례를 모시는 동안 앞마당에서는 유림들이 절차에 따라 절을 했다. 모든 참석자들은 천천히 걸었고, 앉을 때는 무릎을 꿇었다.
 
추계석전대제은 전통문화와 예법의 진수를 향유하는 시간이었다. 김해향교 송우진 의전수석장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림의 존재가 잊혀지는 것 같아 아쉽다. 김해향교의 전통을 지켜 후세에도 길이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제례가 끝나갈 무렵 더위를 식혀주는 억수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법도와 절차를 지키며 전통을 고수해 오고 있는 이들에게 수고했다는 듯 내려주는 단비 같았다.

김해뉴스 /강보금·배미진 기자 amon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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