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대장항문전문의원을 개원한 지도 어느 듯 십년이 다 되어 갑니다.

10년 동안 한 우물을 팠으면 도가 트일 법도 하건만 아직도 환자를 대하고 수술을 하는 일에 부족함을 느낍니다. 질환의 특성상 의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참 발길 하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산부인과보다 더 오기 힘드네요"하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그런 불안한 마음과 창피한 마음을 가지고 힘든 걸음을 하는 분들을 진심으로 살갑고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는가, 하고 자주 저 자신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매일매일 하는 일이 수술이라고는 하지만 수술은 할 때마다 긴장되는 일입니다. 항문은 특성상 변을 보는 부위이기 때문에 수술이 잘못되면 고생을 심하게 하게 됩니다. 또한 치질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형태는 아닙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듯이 항문의 형태나 치질의 형태 또한 차이가 있으므로 맞춤식 수술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찢어져서 통증이 심하고, 어떤 사람은 많이 밀려 나오는 바람에 길을 가다가도 서서 밀어 넣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피를 많이 흘려서 얼굴이 백지장같이 하얗게 되어 병원을 찾기도 합니다.

몇해 전 한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습니다. 얼굴이 만성질환 환자처럼 거무튀튀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있었습니다. 급히 채혈을 해 보니 빈혈 수치가 3.5였습니다. 아! 맙소사. 보통 사람은 수치가 12 이상인데…. 생각조차 하기 힘든 수치였습니다. 환자의 이야기는 외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하혈을 심하게 하였고 여러 가지 증상으로 힘들었지만 참으면서 귀국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급히 수혈을 해서 빈혈수치를 어느 정도 정상화한 다음 수술을 했고, 환자는 다시 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치질도 심해지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하도 암같은 나쁜 병들이 많기 때문에 출혈이 있을 경우 "혹시나"하는 공포에 많이 시달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검사를 해 보면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정을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불행히도 실제로 암으로 진단받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치질이려니 생각하고 수술 준비 다하고 왔다가 수술 전 내시경검사를 받고 암으로 진단받는 경우들이 아주 드문 건 아닙니다. 그래서 40세 이상으로서, 출혈이 있는 분들은 반드시 내시경 검사를 받아 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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