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림면 신천리 망천1구마을 뒤편 산자락에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천연기념물 이팝나무 700년 뿌리내려
주민들, 자연 벗삼아 한 세기 살아와

90년대 가구업체 몰려오며 퇴락 시작
공장입지유도지역 지정 이후 기업 증가
지난해 신천산단 개발 때 ‘고소’ 홍역

자식 모두 도시 나가고 외국인에 방 임대
“자연마을 사라지고 개별공장만 남을 것”




한림면의 신천리란 지명은 신천초등학교 아래 맑고 물맛이 좋은 '참 샘'이란 우물에서 비롯됐다. 신천리의 자연마을 주민들은 자연을 벗 삼아 신천리에서 100여 년 넘게 터를 잡고 살아왔다. 이팝나무는 물이 있는 곳에 심으면 좋다고 해 고려시대 때 이곳에 심어졌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700년 동안 신천리에 뿌리 내리고 있다. 한림면 주민센터에 따르면, 신천리에는 431가구가 있다. 이는 개별공장들의 전입신고 때문에 숫자가 부풀려진 것이다.
 
신천리에는 망천1·2·3구, 신천마을 등 4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매년 4월 쌀밥 같은 꽃들이 피어나는 망천1구는 20여 년 전부터 옛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신천리에는 유독 가구점이 많다. 이는 1990년대 후반 김해시내 중심지에 산재해 있던 가구판매업체들이 택지개발의 여파로 국도 14호선 인근인 신천리로 옮겨온 탓이다. 이곳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330~495㎡ 규모의 가구업체 100여 곳이 성업했다. 2001년에는 6611㎡ 규모의 대형 가구유통전시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한 가구유통전시장 관계자는 "15년 째 가구유통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김해시내의 택지개발로 인해 지가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천리 일대로 옮겨왔다. 당시 이 일대에는 가구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유통마진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백화점 형태의 대형 가구유통전시장도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 망천1구마을에서는 빈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산비탈 아래 공장이 들어선 망천2구마을.

망천1구는 국도 14호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이점 때문에 마을 곳곳에 공장이 하나 둘 씩 생기기 시작했다. 망천1구 주민 김 모(75·여) 씨는 "70년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이 마을로 이사 왔다. 물 좋고 교통이 편리해서 망천1구가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모른다. 상두산에서 내려온 물로 빨래터에서 빨래하던 게 엊그제 같다. 국도 14호선이 들어서면서 하천은 복개됐고 이팝나무 앞으로 흐르던 물의 양도 예전 같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OK가구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마을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마을에는 형무소 담벼락보다 높은 공장 옹벽들이 들어서 있다. 이제 망천1구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개탄했다.
 
2009년에는 김해시가 공장들을 체계적으로 정비한다는 이유로 신천리 일대를 공장입지유도지역으로 지정고시했다. 당시에는 공장입지유도지역으로 지정되면 개정된 산업입지 및 개발에 따른 법률에 따라 기반시설 사업비 50%를 전액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또 공장신축 시 연접거리 제한이 없어져 이 정책은 공장업주들로부터 환영받았다.
 
하지만 공장이 하나 둘 자리 잡으면서 마을에는 빈 집이 늘어만 갔다. 기자가 둘러본 날에도 자물쇠로 굳게 문이 닫힌 채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는 빈집만 6곳이었다.
 
게다가 망천1구는 지난해에 신천산단개발사업을 반대하다 마을주민들이 사업시행자 측으로부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등 홍역을 앓았다. 이 과정에서 울창했던 나무와 300년 넘은 은행나무가 무자비하게 뽑혀나갔다. 허연 속살을 드러낸 산등성이 위에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자리 잡았다. 주민 이 모 (67·여) 씨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잔치도 열고 음식도 나눠먹었다. 하지만 산단 공사가 시작되면서 추억이 돼 버렸다. 수령 300년이 된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도 14호선을 사이에 두고 망천1구와 마주보고 있는 망천2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망천2구는 36년 전 한림면 근교에 있던 주민들이 새 집을 짓고 살면서 자연마을이 이뤄졌다. 그래서 망천2구는 신천리 주민들에게는 '새동네'라 불린다. 하지만 새동네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마을회관을 조금만 벗어나면 산비탈 아래에서 공장들이 기계음을 내뿜고 있다. 조명, 금형, 기계 등을 다루는 입주기업들의 덩치는 꽤 크다. 대부분 옹벽을 세우고 그 위에 자리 잡았다. 망천2구 주민 박 모(79·여) 씨는 "논밖에 없던 땅에 20년 전부터 마을 안으로 공장이 들어오더니 점점 늘어만 가더라. 자기 땅에 공장을 짓는데 주민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마을 앞으로 공장을 오가는 대형트럭들이 다닌다. 도로가에 있는 집들은 대형트럭이 오가면 집이 흔들린다. 이제 늙은이들이 죽고 나면 마을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보증금 100만 원, 월세 15만 원.' 마을에는 집집마다 전·월세를 알리는 종이들이 문 앞에 붙어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공장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주민 이 모(80·여) 씨는 "자식들은 도시로 다 나가고 남은 방은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근로자에게 세를 놓고 있다. 나처럼 월세 놓는 집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천마을은 신천리 중 유일하게 바람에 넘실대는 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신천마을은 조선시대부터 노 씨의 집성촌이었다고 한다. 아직 노 씨 후손들이 남아 논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나 조용하던 마을에도 기계, 조선기자재 등 공장이 지어지면서 대형트럭으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가 높아졌다. 주민들은 2014년 폭이 4m 되는 농로로 오가는 대형트럭을 막기 위해 집회를 열었다. 신천마을 위에는 국도 14호선을 사이에 두고 한통레미콘 공장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아스콘, 골재 등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10여 년 사이 한통레미콘, 샘솟는가구백화점, 오리온제과 김해영업소 등 각종 공장들이 자리 잡았다.
 
신천마을 주민 박 모(76) 씨는 "이 일대 공장 임대료는 평당 2만 5000원 정도다. 저렴한 지가 덕에 공장이 자꾸 들어선다. 개별공장보다 정화시설 등을 갖춘 산업단지가 조성돼야 난개발을 방지할 수 있다"면서 "이제 20년 내외로 농사지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점차 자연마을은 없어지고 그 빈자리는 개별공장이 채우지 않겠느냐"며 씁쓸해 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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