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방청석에서 일부 공무원들이 제196회 김해시의회 2차 본회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예산 확보’ 대전 출장 간 허 시장 불참
공무원뿐인 방청석에 시민은 볼 수 없어

엄정·김형수의원 ‘허공에 외친’ 시정질문
태풍 탓 연속 정전 회의 분위기도 산만

‘일사천리’ 조례안, 착오로 두 차례 표결
신세계특위 놓고 발끈하며 서로 티격태격



엄청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차에서 내려 불과 10여 초를 걸었을 뿐인데 바지와 셔츠가 흠뻑 젖고 말았다. 비를 막아 주리라 기대했던 커다란 골프 우산은 '주인의 뜻'을 완전히 저버리고 말았다. 제법 비싼 돈을 주고 산 우산이었지만 기세등등한 태풍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런 우산을 믿고 어떻게 빗길을 걷나, 싶었다. 태풍 '차바'가 경남, 부산 일대를 강타한 지난 5일의 일이었다.
 
오전 10시 김해시의회에서 제196회 임시회 2차 본회의가 열렸다. 바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불편해 하면서 회의 시작 10분 전에 시회의 3층 본회의장에 자리를 잡았다.
 
■ '그들만의 리그' 개장
윤성혜 부시장과 여러 국장들은 본회의장 입구에 나란히 서서 하나 둘씩 들어오는 시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과거 일부 시의원들이 김맹곤 전 시장에게 했던 것처럼 공무원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시의원은 없었다. 당시에는 일부 시의원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 김 전 시장은 자리에 앉아 악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가 먼저 일어서서 인사를 나누는 시의원도 물론 있었다. 바로 시의회 의장이었다.
 
허성곤 시장과 농업진흥센터 소장, 문화사업소장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회의 중에 나온 이야기로는 가야사 2단계 사업의 예산 확보를 위해 정부 부처로 출장을 갔다고 했다.
 
의장석에는 조성윤(더불어민주당) 부의장이 앉아 있었다.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명식 의장의 권한대행 자격이었다. 기자석 바로 앞에 마련된 김 의장의 의원석은 물론 그와 함께 기소된 A의원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A의원의 자리에는 회의 자료가 놓여 있었지만 김 의장의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지난 7월 4일 의장으로 당선돼 7월 15~21일 열린 제195회 임시회에서만 의사봉을 잡은 뒤 구속됐다.
 
방청석에는 공무원들만 앉아 있었다. 다들 무릎에 수첩과 각종 자료를 얹어 놓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시민으로 보이는 방청객은 한 명도 없었다. 시의회 방청석에 시민들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안건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람들이나 일부 시민단체들이 가끔 자리를 지킬 뿐이다. 시의원들이 회의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시는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조 부의장은 개회를 선언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체 의원 22명 중 19명이 참석했고, 5분 자유발언으로 시작됐다. 류명열(새누리당) 의원이 가장 먼저 연단에 올랐다. 이어 김종근(더불어민주당), 김재금(국민의당) 의원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다.
 
시의원들의 자유발언을 기사로 옮길 때는 가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원고 원문의 표현을 상당 부분 수정해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세 의원의 자유발언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문장과 표현이 거칠었다.

▲ 토론을 진행하는 박민정 의원.
▲ 이영철 의원이 조성윤 부의장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

■ 답변 없는 시정 질문
공무원들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시정 질문 차례가 돌아왔다. '삼계석산 특위' 위원장이었던 엄정(새누리당) 의원이 첫 주자였다. 태광실업이 추진하는 삼계나전지구 도시개발사업의 특혜 의혹을 지적했다. 연단에 선 그의 표정은 불편해 보였다. 시장이 참석하지 않은 게 언짢은 듯했다. 그는 "시장이 답변할 게 있고 국장이 답변할 게 있다. 시장도 오지 않았으니 답변은 듣지 않고 질문만 하겠다"고 했다. 조 부의장은 두세 차례에 걸쳐 질문을 서둘러 마치라고 독촉했다. 엄 의원은 웃으면서 연단에서 내려왔다.
 
김맹곤 전 시장은 의원들의 개별적인 시정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답변을 하지 않았다. 본회의 말미에 총괄 답변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일부 의원들이 국장들의 답변에는 책임성이 없다며 시장이 꼭 답변해야 한다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과거 의장단은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에게 개별 답변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해 주었다.
 
김형수(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는 시의회 연단의 단골손님이다.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역대 시의원들 중에서 5분 자유발언, 시정 질문을 가장 많이 한 의원이 아닐까 할 정도다. 그는 부산김해경전철 문제를 지적했다. 따끔한 지적, 뼈아픈 이야기들이 그의 입에서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는 먼저 MRG(최소수익보장) 문제를 거론한 뒤 경전철 역사 이름 문제를 지적했다. 2011년 지명위원회에서 역사 이름을 고치기로 결정했지만 5년이 지나도록 실행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 의원이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태풍 때문인지 시의회 건물의 전기가 나가 버렸다. 하필이면 왜 그의 연설 때였을까. 모든 전등이 꺼지고 마이크도 꺼졌다. 비상전력 덕분에 전등과 마이크는 다시 들어왔지만 법적으로 꼭 하게 돼 있는 녹화 기능이 마비돼 버렸다. 조 부의장은 정회를 선언했다. 정회 상태에서 시간은 30분 가까이 흘러갔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폐회하고 다음날 다시 하자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어차피 시장이 안 왔으니, 다음에 시장이 올 수 있는 날에 다시 하자며 껄껄 웃는 시의원도 있었다. 의회 사무국에서는 시의회 개회 일수 제한 때문에 법적으로 이날 의회를 마쳐야 한다면서 난색을 표시했다. 김해시 측에서는 이날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조례가 있다며 시의원들의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공무원들끼리, 의원들은 의원들끼리 갑론을박을 하는 동안 회의는 재개되지 못하고 다시 시간만 흘러갔다. 조 부의장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윤성혜 부시장이 조 부의장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건넸다. 두 사람은 김 의원에게 와 달라고 했다. 태풍 피해 현장에 부시장이 가봐야 하니 시정 질문에 답변할 수가 없다, 김 의원이 양해해 달라,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김 의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소 기분이 나쁜 듯했다. 시장, 부시장이 모두 없는 가운데 본회의가 진행되는 보기 드문 일이 발생했다.
 
마지막 시정 질문자는 이영철(무소속) 의원이었다. 그는 김해시외버스터미널 기부채납과 신세계백화점·이마트 김해점 임시사용승인처분 및 준공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그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한 채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 허성곤 시장과 윤성혜 부시장 자리가 텅 비어 있다.

■ 일사천리 조례안 통과
김해시 측이 기다리던 순서가 돌아왔다. 바로 조례안 심의였다. 이날 처리할 조례안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및 보존·관리에 관한 조례제정안' 등 무려 24개였다.
 
김해시가 시의회를 무시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행정사무감사 그리고 조례 및 예산안 심의다. 의원들이 조례안과 예산안 심의를 거부해 버리면 김해시가 여러 가지 행정, 사업을 진행할 때 매우 불편해 진다. 시장이 하고 싶은 역점사업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날 본회의에 오른 조례 제·개정안 중 김해시가 발의한 것은 모두 23건이었다. 의원 발의 조례 제·개정안은 송영환(무소속) 의원이 내놓은 '김해시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유일했다.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제7대 김해시의회가 2014년 7월 개원한 이래 다룬 조례 제·개정안 및 폐지안은 모두 170건이었다. 이 가운데 의원들이 발의한 조례안은 단 24건이었다. 이중에 시의회 운영규정 관련 15건을 빼면 실제 의원 발의 조례안은 9건에 불과했다. 이는 역대 시의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해시가 내놓은 조례안은 먼저 각 상임위원회에서 심의한다. 이 과정에서 원안대로 통과될 수도 있고, 일부 내용을 고칠 수도 있다. 상임위원장이 본회의에서 조례안의 내용을 설명한 뒤 질의응답과 토론을 거치면 대부분 원안대로 심의, 의결된다. 조례안 내용에 대해 물어보거나 표결하자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장이 "원안대로 통과하는 데 이견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의원들은 대답을 않거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조례안은 확정된다.
 
그런데, 이날 본회의에서 두 차례나 조례안이 표결에 부쳐지는 특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송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대해 류명열(새누리당) 의원이 "민원을 대거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조 부의장이 23번째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대해 "이견 있습니까"라고 묻자 류 의원이 "이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23번 조례안을 놓고 표결을 하게 됐다. 조 부의장은 찬성하는 의원, 반대하는 의원에게 각각 손을 들라고 했다. 투표가 끝난 직후 시의회 사무국 직원이 뜻밖의 말을 했다. "류 의원님, 23번 조례안은 아까 지적하신 조례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24번 조례안입니다. 두 조례안은 이름만 같고 내용은 다른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시의회에는 혼란이 일었다. 다들 착각해서 투표를 했으니 무효로 해야 할지, 아니면 이유야 어떻든 간에 유효한지의 여부를 놓고 말들이 오갔다. 시의회 사무국에서 표결 결과를 내놓았다. 결과는 다행히(?) 찬성표가 많아 통과였다. 이렇게 해서 오해가 빚은 표결은 마무리됐다.
 
이어 문제의 24번 순서가 돌아왔다. 류 의원은 다시 "이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진짜' 표결이 진행됐다. 이 조례안 역시 찬성표가 과반이어서 통과로 확정됐다.

▲ 한 시의원이 회의 도중 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신세계특위 활동 기간 연장과 의장 사퇴 건
이영철 의원이 다시 연단에 올랐다. 처음에는 의원 자격으로 마이크를 잡았지만, 이번에는 '신세계·이마트 특위' 위원장 자격으로 앞에 나선 것이었다. 그는 "행정의 시계는 신세계·이마트에 맞춰져 있다.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면서 "시의 시외버스터미널 기부채납 타당성 용역 지연 등으로 해소되지 않은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 4개월, 최대 1년의 특위 활동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 의원이 설명을 마치자 4선으로 시의회 최다선인 박민정(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박을 시작했다. 그가 한 말의 요지는 이렇다. "시의회에서 오래 일하면서 여러 차례 특위 활동을 했다. 대개 40일 정도면 충분했다. 신세계·이마트 특위가 5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결과 보고서도 제대로 못 냈다. 위원장이 책임져야 한다." 한마디로 특위 활동을 더 해 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에 활동기간을 늘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재금 의원도 공격의 화살을 날렸다. 그는 "이마트는 시외버스터미널을 기부채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특위는 마치 시가 안 받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운영비에서 적자를 보는데 굳이 받을 필요가 있느냐"라고 공박했다.
 
발끈한 이 의원이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가 여러 가지 말들을 쏟아내자 김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말을 도중에 끊으려고 했다. 조 부의장이 말을 끝까지 듣고 질의하라고 김 의원을 제지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이정화(새누리당) 의원이 마이크를 가져갔다. 그는 "집행부가 처음부터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시민들이 똑똑히 보고 있다. 어떤 시의원들이 신세계·이마트 편을 들었는지를 알려 시민들이 다음 선거에서 표를 안 주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의 말이 길어졌다. 그러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김종근 의원이 발언권을 얻지 않은 상태에서 비꼬듯 한마디를 던졌다. "좀 빨리 하세요. 점심시간이 지났잖아요." 이 말에 화가 난 이 의원은 "밥은 집에서 먹으면 된다"고 질타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일 조짐을 보이자 다른 의원들이 그만하라고 말렸다. 이 의원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마이크를 놓았다.
 
조 부의장은 신세계·이마트 특위 활동기간 연장의 건을 표결에 부쳤다. 뜻밖에 찬성이 14명이나 나와 통과됐다. 이 의원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김명식 의장이 지난달 말 제출한 의장직, 의원직 사퇴 안 처리의 건이 마지막 안건이었다. 조 부의장은 잠시 정회를 선언했다. 다시 재개된 회의에서 의원직 사퇴 안을 먼저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10-7. 사퇴 안이 처리됐다. 의원직에서 물러났으니 의장직 사퇴 안은 표결할 필요가 없었다.
 
시장 불참, 정전, 뜻하지 않은 조례안 표결, 연이은 말다툼으로 점철된 제196회 임시회는 이렇게 해서 막을 내렸다. 회의 시간은 3시간이 넘었다. 서둘러 시의회 밖으로 나와 보니 태풍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김해뉴스 /남태우 기자 le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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